옮겨 적는 자와 전임자의 수
1997년 가을, 종합금융사 지하 자료실. 옛 장부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옮기던 기록 담당 김도경에게 폐업 출판사의 상자가 도착한다. 상자 속 전임자의 색인 카드를 뒤지던 도경은, 공식 장부보다 이미 컸던 그의 단기 외화 잔액 앞에서 멈춘다.
- 4,744자
- ~9분
본편
The Number Beneath the Ledger
1997년 가을, 한 종합금융사 자료실. 옛 장부를 옮겨 적던 기록 담당의 손에서, 숫자는 적을 때마다 자라고 부도는 아직 오지 않은 날짜로 먼저 도착한다.
장부 아래의 숫자
프나코틱 문고
1997년 가을, 종합금융사 지하 자료실. 옛 장부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옮기던 기록 담당 김도경에게 폐업 출판사의 상자가 도착한다. 상자 속 전임자의 색인 카드를 뒤지던 도경은, 공식 장부보다 이미 컸던 그의 단기 외화 잔액 앞에서 멈춘다.
도경은 통제된 실험으로 옮겨 적는 행위 자체가 수를 자라게 함을 확인한다. 측량기수의 일지에서 잴수록 깊어지는 갱을 읽고, 신용평가 단말 부팅 화면의 라틴어 사훈에서 —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같은 법칙의 이름을 처음 마주한다.
경고를 어기고 사서의 일지를 끝까지 읽은 도경에게 음절이 따로 도착하는 병이 건너온다. 분절된 눈으로 네 묶음을 교차해 읽자 네 기록자·하나의 법칙·같은 서명이 드러나고, 상자가 빈 책상을 거쳐 자신에게 왔음을 — 그녀가 다섯 번째 손임을 — 안다.
전임자가 끝까지 감지 못한 마지막 필름을 건 도경은, 반쯤 노출된 컷에서 자라던 잔액의 자릿수 사이에 자신의 면직 일자가 적혀 있음을 본다. 이윽고 본사는 그 필름이 멈춘 바로 그 장부 — 단기 외화 차입 원장 — 의 촬영을 그녀에게 배정한다.
살아 있는 외채 잔액은 죽은 잔액보다 빠르게 자란다. 도경은 외환보유고가 영에 닿을 날을 셈하고, 아무도 적지 않은 자신의 면직 일자만이 자라지 않는 수임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일 날짜로 출력된 시재표가 — 발행 단말은 그녀 자신의 것으로 — 결제 불능을 예고한다.
신용등급 강등 통지가 발표 전날 단말로 도착한다. 분절된 눈으로 읽자 등급 기호 아래로 등급이 아닌 것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칸이 보인다. 원/달러 고시를 옮겨 적을 때마다 환율은 등대수의 조수처럼 되풀이하며 차오르고, 도경은 두 고시 사이에서 열세 번의 들고남을 센다.
측량기수의 갱 일지에서 도경은 여섯 사람에 일곱 줄의 면직 기록을 보고, 비어 기다리는 일곱째 줄이 누구의 것인지 안다. 전신수의 금기 '응답하지 말 것'이 사서의 '끝까지 읽지 말 것'과 운을 이루고, 이미 첫 금기를 어긴 그녀에게 자금부 동료가 털어놓은 영업정지 소문은 아직 그어지지 않은 한 줄로 읽힌다.
거래처의 어음이 엿새 전 시재표의 날짜·금액과 자리까지 똑같이 부도난다. 법칙이 망상이 아님을 확인한 도경은 한 칸을 비워 보지만, 이튿날 다른 손으로 더 큰 값이 채워진다. 인출 사태가 정점에 이르러 위층은 아수라장이 되고, 도경은 지하 자료실이 바로 그 결과를 만든 기관실임을 안다.
청산 대비 전 계정을 촬영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도경이 한 계정을 찍을 때마다 위층에서 그 계정이 닫히고, 명단 맨 끝 줄은 그녀 자신의 것이다. 전임자의 마지막 릴을 건 순간, 고정 매체인 필름 위에서도 합계는 컷마다 자라며 — 릴의 마지막 컷에는 오늘 판독기 앞에 앉은 도경의 등이 찍혀 있다.
IMF 구제금융 신청과 함께 도경은 보유고 아래 거의 영인 가용고를 본다 — 법칙에는 규모가 없었다. 총괄 원장을 등불에 비춰 읽으며 그녀는 장부 아래에서 줄곧 자라 온 하나의 누계를 발견하고, 그 다음 빈 줄에 자신의 이름이 미리 적혀 있음을 안다. 도경은 전임자의 끊긴 문장을 마침표까지 잇고, 제 손으로 임프린트 서명을 남긴다.
아홉 종금사가 멈춘 날, 도경은 처음으로 작정하고 네 일지를 나란히 펼친다. 분절이 읽는 손에서 쓰는 손으로 건너오고, 등대수의 표 맨 아래엔 「다섯 번째 손에게」가 와 적힌다. 네 묶음을 순서대로 잇자 한 문장이 드러나고, 받는 이 빈칸에 제 성의 첫 글자가 온다.
도경은 네 일지를 하나씩 다시 읽는다. 들면 차는 조수와 잴수록 깊어지는 갱이 같은 법칙이고, 읽기 자체가 그 모두를 잇는 기관임을 본다. 재독이 끝나는 자리에서 단말에 내일 자 영업정지 명단이 뜨고, 수신자는 도경, 발신자 칸은 빈 채 깜빡인다.
네 묶음이 한 문장으로 닫힌다 — 재면 깊고, 들면 차고, 읽으면 번지고, 응답하면 보낸다. 분절이 종이를 떠나 입과 잠으로 번지고, 도경은 앞의 셋은 이미 했으나 아직 응답하지 않았음을 안다. 잠든 사이 제 손으로 적힌 한 줄이 내일 자를 달고 기다린다.
분절은 거울과 단말의 검은 화면에 도경의 목께 끊긴 한 줄로 나타나고, 다섯 번째 묶음 상자를 열면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의 일기가 제 글씨를 닮은 손으로 채워져 있다. 끝까지 읽은 자에게 남는 표 — 읽는 일이 곧 읽히는 일임을 안다. 상자 맨 아래, 강민석을 적은 한 줄.
영업정지는 등대 물때처럼 한 칸씩 정해진 간격으로 온다. 도경은 라디오보다 먼저 다음 칸을 짚고, 미리 읽기는 아침마다 더 긴 명단을 요구한다. 며칠 뒤 간조 칸에 강민석의 회사 이름이 빈 채 기다린다.
강민석의 회사가 명단에 오르고, 경고하려는 도경의 음절은 흩어지며 법칙이 경고조차 막는다. 영업정지 사람들이 책상을 비우는 풍경 속에서 그녀는 보존 지시를 받고, 이관 상자들이 지하 자료실로 내려온다. 보존하면 자란다 — 다른 회사 기록 담당의 노트에서도 끝까지 읽지 말라는 경고가 나온다.
이관 상자마다 다른 글씨체로 같은 경고가 나오고, 법칙이 한 자료실이 아니라 기록이 모이는 모든 자리에 있음을 안다. 공문이 생긴 순간 도경은 몰래 읽는 자에서 결재란 갖춘 허락받은 손이 된다. 분절된 명단 속 이름들이 자모로 갈라져 이름 없는 칸으로 미끄러지고, 강민석의 이름이 아직 온전히 남는다.
도경이 제 정리 노트를 다섯 번째 묶음으로 정식 편입하고, 받는 이 빈칸에 「다음 기록 담당」을 적는다. 넷이 하지 않은 일을 다섯 번째 손은 할 수 있다 — 구하려는 손과 보내려는 손이 같은 손임을 끝내 모른 채, 강민석 이름의 첫 글자를 발신칸에 누른다. 무언가가 보내지고, 읽는 자에서 옮기는 자를 거쳐 보내는 자가 된다.
강민석의 이름이 명단에서 지워진 다음 날, 바로 아래 줄이 닫힌 만큼 정확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살린다는 말이 손에서 빠지고 옮긴다는 말이 그 자리에 들어앉으며, 누구를 살렸는지 알 길은 하나 — 다시 한 번 응답해 보는 것. 펜을 내려놓아도 손은 이미 묻는다.
도경이 두 번째로 응답하고, 처음으로 그 일에 맛이 있음을 안다. 발신칸을 누를 때마다 명단이 손끝을 따라 움직이는 단맛은 매일 자 명단 여는 일을 일과로 바꾸고, 갈라지는 줄 없는 날에도 손은 발신칸을 공연히 찾는다. 전임자 릴을 다시 꺼내 보니 — 그도 같은 가속의 곡선을 따랐다.
부고 속 이름을 확인한 도경은 멈추기로 하나, 그녀가 누르지 않은 자리를 다음 손이 무심하게 대신 채운다. 멈춤은 면죄가 아니라 더 무심한 손에게 같은 죄를 넘기는 일 — 발신자가 된 손은 되돌릴 수 없다. 명단을 켜기 전 노트에 적은 내일의 줄이 단말에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뒤따라오고, 받아 적던 손은 먼저 적는 손이 된다.
옮긴 무게가 돌아온 자리에서 도경은 흩어진 자기 이름의 자모를 명부에서 발견한다. 단말의 수신칸과 발신칸 사이 선이 사라지고 — 읽은 것과 적은 것이 같은 활자, 받는 자도 보내는 자도 아닌 둘이 접힌 자리. 무섭지 않았다는 게 가장 무섭다.
살리려던 응답이 거래처를 도리어 끌어내리고, 매일 발신칸을 누르는 것이 자신인지 자신을 통해 누르는 무엇인지 모른다. 강민석이 두 번째 명단(개인 연체)에 뜨고 — 한 줄 닫으면 같은 사람의 다른 줄이 열린다. 점심에 찾아온 강민석이 이자가 올랐다 말하고, 발신칸은 한 뼘 옆에서 깜빡인다.
대가가 응답을 앞지른다 — 누르기도 전에 옆줄이 먼저 갈라지고, 수많은 이관 노트에서 같은 가속 곡선이 나타난다. 강민석의 마지막 줄(몸)을 살리는 누름 한 번으로 어딘가 마흔 명의 회사가 부도로 도착하고, 멈추어도 무심한 손이 대신 자리를 채운다. 두 길이 같은 방향으로 가팔라지는 자리에서, 닷새 만에 도경은 다시 발신칸에 손을 댄다.
읽는 자→옮기는 자→응답하는 자, 세 번의 비가역 변질을 도경은 수용한다. 명단 여는 일이 더는 무섭지 않은 익숙함 — 죄를 가볍게가 아니라 일과로 만드는 무게. 그 오후, 멀쩡한 회사들이 사람을 줄이기 시작하는 첫 줄이 명단에 뜬다. 자리바꿈이 회사에서 얼굴 있는 사람 단위로 내려온 자리에서, 두 경고를 다 어긴 손이 세 번째를 기다리지 않고 정리해고 첫 줄에 닿는다.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더 적고 있었다.」
명단의 단위가 회사에서 사람으로 내려온다. 부도 한 줄이 직원 한 행으로 분해되면서, 도경은 강민석의 이름을 부서 정원 감축 항목에서 발견한다. 발신자가 된 손이 처음으로 망설인다 — 회사 단위에서는 옆 행에 모르는 이름이 부풀었지만, 사람 단위에서는 옆자리의 얼굴이 닳는다. 끝 훅: 명단 마지막 페이지, 강민석의 사번과 두 자리 차이의 한 줄이 이미 '대상 확정'으로 표시되어 있다.
자료실에도 정원 감축 한 자리 통보. 산수만으로는 전임자의 빈 자리를 결원 확정 처리하면 끝 — 살아 있는 누구도 닳지 않는다. 도경은 인사 시스템 양식 이름란에 손을 멈춘다 — 발신칸 위의 망설임과 같은 손, 같은 결의 결과. 없는 사람을 다시 없애는 한 입력으로 자료실 넷이 살고, 자리바꿈의 도착지에 처음으로 자기 자리가 포함됨을 또렷이 본다. 끝 훅: 입력 직후 단말에 빈 발신칸의 전문 한 통 — 명단보다 먼저 와 있다.
이월 이십일. 회사 정원 감축 두 자리 통보 — 자료실 한 자리(어제 도경의 입력)와 자원개발부 측량기수 한 자리, 두 사번 끝 두 자리의 차가 정확히 한 단위. 일곱 부서 결원 사번이 같은 간격으로 한 줄을 이룬다. 한 단위 더 가면 도경의 사번과 같은 끝 두 자리의 한 사번 — 같은 자리줄, 다른 부서의 한 자리. 적지 않는다. 전임자 일지의 사번 메모와 도면 칸의 간격이 같은 단위였음이 오늘 잡힌다. 끝 훅: 단말 갱신 직후 본문칸이 스스로 자라기 시작, 첫 글자가 도경의 사번 첫 글자.
이월 이십일일 새벽. 단말 본문칸이 한 줄을 다 채웠다 — 어제 인지한 다음 한 자리 사번. 글씨체는 도경의 손글씨와 동일한 결(획 들림·압력 변화·간격 모두). 지움 시도 → 다시 적힘(본문은 단말 안이 아니라 어딘가의 받아쓰기). 발신칸 위 손의 위치가 본문 자라기를 결정 — 다만 본문이 한 호흡 먼저 적음(결과가 주체보다 앞). 응답하지 않는 행동 = 그 자체로 응답. 인사부 공지는 두 자리에서 한 자리로 줄어 그 한 자리가 누락 — 본문칸 안에만 있고 발신칸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결과 미발현. 모르는 사번 한 사람이 도경 손의 *멈춤* 위에 살아 있음. 끝 훅: 전임자가 자기 손의 행동을 사후에 인지하지 못한 이유 — 결과가 주체보다 앞에 있는 곳에서 주체는 자기 손의 행동을 알지 못한다.
이월 이십이일. 도경은 손을 발신칸에서 가장 먼 책상 끝에 붙여 본문칸의 멈춤을 한 시간 유지한다 — 모르는 사번 한 사람은 미발현으로 살아 있다. 그러나 그날 줄여야 하는 한 자리는 본문칸의 사번이 아니라, 여러 번 옮겨 적어 손에 익은 삼층 서무의 사번 —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닫혀야 하는 수는 같았다. 멈춤은 수를 줄인 것이 아니라 닫히는 자리를 모르는 사번에서 아는 얼굴로 옮겼고, 살림과 데려감이 한 손의 한 동작이 된다. 게다가 손이 한 시간 책상 끝을 떠났는지조차 단언할 수 없다 — 결과가 손보다 앞서는 자리에 도경이 들어선다. 끝 훅: 본문칸이 둘째 줄을 적기 시작하고, 그 첫 두 자리는 자금부의 코드 — 매일 같은 복도에서 마주치는 한 사람을 향해 줄이 올라온다.
이월 이십삼일. 본문칸 둘째 줄의 끝 두 자리가 발현된다 — 자금부 사번, 강민석의 사번에서 몇 단위 위. 두 줄의 간격은 어제 일곱 부서 등간격과 같고, 가로줄이 세로줄로 섰을 뿐 셈은 같다 — 한 단위씩 건너뛰는 자리 없이 내려와 며칠 뒤 강민석의 사번에 닿는다. 둘째 줄을 옮기면 자금부의 한 사람이, 옮기지 않으면 모르는 한 사람이 닫힌다 — 한 자리도 닫지 않는 손의 자리는 없다(멈춘 손은 없다, 멈춤도 들린다). 복도에서 강민석을 마주치나 그는 제 사번이 본문칸에서 기다리는 걸 모른다. 끝 훅: 강민석을 살리려 다른 한 줄을 먼저 골라 옮길 생각을 한 뒤 손을 보니, 손은 이미 발신칸 쪽으로 한 마디 옮겨 와 있다 — 언제 옮겼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이월 이십사일. 본문칸에 셋째 줄이 밤사이 적혀 세로줄이 강민석에게 한 단위 더 내려온다. 발신칸은 비어 있으나 밤사이 제 손이 무엇을 했는지 증명하지 못한다. 그날 줄여야 하는 한 자리는 세로줄 바깥의 자금부 한 자리 — 강민석의 옆자리 건너,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셋째 줄을 발신칸으로 옮기지 않은 만큼 닫혀야 하는 수가 강민석의 둘레에서 채워진다. 그의 줄을 막는 일이 그의 옆자리부터 하루 하나씩 닫는 일이었다 — 도경은 그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자리를 그의 대신 닫고 있다. 복도의 강민석은 옆자리가 빈 것이 제 자리가 남은 것과 한 셈인 줄 모른 채 '닳는다'는 말을 옮긴다. 끝 훅: 그를 둘러싼 자리의 수가 세로줄이 그에게 닿기까지 남은 단위보다 많지 않다 — 막는 일에는 끝이 있고, 그 끝은 그였다.
이월 이십오일. 넷째 줄이 발현되어 강민석까지 손가락 둘 거리. 도경은 멈춤이 줄을 결과로 만들지 않을 뿐 세로줄의 하강은 막지 못함을 깨닫는다 — 멈춰 있어도 그의 둘레는 하루 하나씩 닫히고, 셈은 같다. 셈을 늦추려면 능동으로 한 줄을 직접 발신칸으로 옮겨야 한다. 본문칸의 줄 가운데 강민석에게서 유일하게 먼 줄, 나흘간 멈춤 위에 살아 있던 모르는 사번(끝 두 자리가 제 것과 같은)을 제 손으로 옮긴다. 그 자리는 그날 닫히고, 강민석은 하루를 얻는다(그는 모른다). 모르고 고르던 일이 알면서 고르는 일로 넘어가고 — 멈춤(수동)에서 능동으로 건너간다. 끝 훅: 하루의 값은 한 자리이고 셈은 줄지 않는다. 얼굴을 모르는 자리로 그를 산 것은 오늘이 마지막 — 내일부터 고를 자리는 모두 강민석의 둘레, 그 자리들이 다 닫히는 끝에 그의 자리가 있다.
이월 이십육일. 본문칸 네 줄이 모두 자금부 — 강민석에게서 먼 줄은 어제로 끝났다. 하루를 주려면 그의 둘레를 직접 옮겨야 하고, 네 줄 가운데 가장 먼 줄(=하루를 가장 깨끗하게 버는 줄)이 강민석이 십 년을 마주 보고 앉은 동기의 자리다. 셈은 얼굴을 모른 채 답을 내고, 답을 낸 다음에야 얼굴이 따라온다. 도경은 그 동기를 제 손으로 닫는다 — 어제 옮긴 자리엔 얼굴이 없었고 오늘은 있었다. 강민석은 동기의 빈자리와 식은 커피잔을 보며 '왜 하필'이라 묻고, 왜 하필인지(가장 먼 줄이라)를 도경만 안다. 끝 훅: 그의 둘레가 손가락 하나만큼(세 자리, 사흘) 남았다 — 둘레를 다 비우면 본문칸엔 강민석의 줄 하나뿐. 옮겨도 그·안 옮겨도 그. 그를 살리는 일이 그를 혼자 남기는 일이었다.
이월 이십칠일~삼월 일일. 도경은 사흘에 걸쳐 강민석의 둘레(앞자리·같은 줄·뒷자리 신입)를 하루 하나씩 직접 옮겨 닫는다 — 매일 가장 먼 줄, 손이 더는 떨지 않는 아침의 일과로. 셋째 날 강민석은 처음으로 '내 주위만 자꾸 빈다'고 말하며, 빈 책상을 손가락으로 세다 자기 자리에 손가락을 멈춘다 — 가운데 남은 자리가 운 좋은 자리가 아니라 마지막 자리일 수 있음을 더듬는다. 삼월 이일 아침, 본문칸에 남은 줄은 한 줄, 강민석의 사번뿐이다. 더 옮길 둘레가 없어 가장 먼 줄을 고를 수 없다 — 옮기면 내 손이, 옮기지 않으면 셈이 닫는다. 자금부에 강민석만 남아 '다음은 나겠지'라 짐작하나, 도경은 본문칸으로 여지 없이 안다. 끝 훅: 미뤄 온 자리가 오늘 혼자 남아, 손은 처음으로 살릴 수 없는 손이 된다 — 살릴 수 없는 손에 남은 일은 닫는 일뿐, 그 자리에 강민석이 앉아 있다.
삼월 삼일. 도경은 강민석을 닫지 않고 셈도 못 닫게 하려고 두 시간 일찍 켜, 사흘간 둘레를 돌리던 방식대로 본문칸에 없는 모르는 사번을 발신칸에 적어 셈을 딴 데로 돌리려 한다. 그러나 발신칸=답, 본문칸=받아쓰기 — 답이 적히면 발신칸에 무엇을 적었든 본문칸의 줄이 결과가 된다. 그가 아닌 사번을 적은 일이 곧 강민석의 줄을 닫는다. 막으려는 손이 닫는 손이었다(가만뒀으면 9시 공지가, 막으려 하니 7시 손이 두 시간 앞당겨 닫음). 사흘간 자신이 살리고 닫을 자를 고른다 여긴 손은, 정해진 줄에 답할지 말지만 고르고 있었다. 자금부 전체가 비고 강민석 자리는 정리할 사람도 없다. 끝 훅: 강민석의 줄이 사라진 자리에 새 줄=자료실 코드, 끝 두 자리는 도경 자신의 사번 — 가운데 남은 사람은 둘레를 비우는 손이 선 자리였다. 옮겨도 나·안 옮겨도 나 — 자신도 명단의 한 줄임을 받아들이는 자리.
삼월 사일. 본문칸에 도경 자신의 줄(어제 강민석 자리). 옮겨도 나·안 옮겨도 나. 강민석을 사흘 미룬 것처럼 제 둘레(자료실장·두 보조)를 옮기면 사흘을 얻지만, 그 끝에 혼자 남는 자리가 어제 강민석의 자리다. 도경은 처음으로 셈 바깥의 일을 한다 — 둘레를 비우지 않기로, 제 줄을 미루지 않기로 결단(살리려는 멈춤이 아니라 살리기를 그만두는 멈춤). 강민석에게 한 일을 되돌릴 순 없어도 같은 일을 한 번 더 하지 않을 수는 있다. 받는 이=나·발신=나(전신수의 받는 이=보내는 이가 한 사번으로 닫힘, 다만 받는 이 칸이 이미 채워짐). 전임자가 일지에 적지 못한 것은 결정이 아니라 결정의 부재였다 — 옮겨도/안 옮겨도 자기인 자리엔 결정할 것이 없다. 셈은 자금부 다음 자료실로 넘어왔고, 닫는 자리를 고른 손이 셈에 가장 가까워 가장 먼저 닫힌다. 다섯 번째 묶음에 제 줄을 적으며 — 나=네 묶음 읽은 자·다섯 묶음 적는 자·여섯 묶음 누군가의 받는 이(사슬 계속). 임프린트 변주(다음으로 인계):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가운데 하나를 적고 있었다. 적히는 하나가 나였다.'
삼월 오일. 세로줄이 어젯밤 도경의 줄에 닿는다. 도경은 막지 않기로 한 손을 비워 둔 채 닫히기로 한다 — 막는 손으로 닫히면 닫히기 전에 한 사람을 더 닫지만, 비운 손은 그러지 않는다(셈이 묻지 않는, 마지막까지 그가 정할 수 있는 한 가지). 한 시간 동안 다섯 번째 묶음을 마저 적어 다음 기록 담당에게 법칙을 남긴다 — 네 묶음(측량기수·등대수·사서·전신수)의 끝맺음 방식을 잇는다. 등 뒤 두 보조는 도경이 둘레를 비우지 않은 덕에 오늘도 살아남았으나 그 까닭을 모른다. 아홉 시 공지=도경. 비워 둔 발신 칸도 답이었고 그의 줄이 닫힌다. 닫히는 자리 안은 앉아 보아야 안다 — 끝 두 자리부터 옅어진다(적는 자=적히는 자가 한 사번으로). 끝까지 읽은 자가 끝까지 읽히는 자리에 다섯 손이 차례로 앉았고 도경이 다섯째. 끝 훅: 마지막 줄이 끝 한 자리를 비운 채 멈춘다(끊김=서명) → 옅어진 그 한 자리가 다음에 묶음을 펼 사람의 받는 이 빈칸. 임프린트 변주.
삼월 이십삼일. 도경이 떠난 지하 자료실에 새 기록 담당이 발령된다. 빈 다섯째 책상 위 '받는 이 없는 상자'에서 네 옛 일지와 도경의 다섯 번째 묶음을 발견하고, 첫 장 색인 카드의 '끝까지 읽지 말 것' 경고를 보존 담당의 당부쯤으로 여긴다. 보존하려면 읽어야 하고, 읽으면 끝까지 가게 된다. 네 묶음의 끊김이 한 줄로 읽히고(재면 깊어지고, 들면 차오르고, 읽으면 번지고, 응답하면 보낸다), 다섯째 묶음은 그 네 줄을 읽은 도경의 일지다. 마지막 줄=도경의 사번, 끝 한 자리가 옅어진 채 끊김(받는 이 빈칸). 보존하는 손으로 그 자리에 맞는 한 자리를 읽어 내니 제 사번 끝자리였다 — 적지 않고 읽었을 뿐인데 옅어진 자리가 채워지고 끊긴 줄이 여섯째 묶음의 첫 줄로 이어지며, 단말이 저절로 켜져 본문 칸에 그의 사번이 적힌다. 도경은 이제 읽히는 자(끝까지 읽은 자가 끝까지 읽히는 자가 된다, 프롤로그 4부작의 현대 반복). 새 화자는 제 여섯째 묶음 받는 이 칸을 비워 남긴다(비움이 채움). 임프린트: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 우리 가운데 하나였다.'
삼월 이십사일. 어제 사번을 읽어 낸 새 기록 담당이 다섯 묶음의 보존·분류를 시작한다. 본문 칸의 제 사번은 밤사이 끝자리가 한 단위 자라 있다 — 어제 읽어 낸 줄이 적힌 줄이 되었고, 첫 묶음의 법칙(옮겨 적은 끝자리가 다음 날 늘어남)대로 자란다. 과거 자료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일. 다섯 보존 카드의 작성자 칸을 모두 비운다(이름 모름·받는 이 빈칸과 같은 모양). 다섯째 묶음의 마지막 줄은 전임자 사번에 제 끝자리가 붙은 한 줄 — 보존하려고 읽은 자리가 자료가 되었고, 보존하는 손이 자료를 바꾸었다. 끝난 일로 갈무리해도 본문 칸의 제 한 줄만은 진행 중. 사서장이 보존 진도를 묻자 '거의 끝났다' 답하고 이관을 지시받는다. 끝 훅: 보존 처리 날짜 칸이 적은 적 없는 내일 날짜(삼월 이십오일)로 와 있다(등대수 물때 선재의 재현) — 지워지지 않는다. 끝나는 날과 자라는 줄이 같은 책상 위에.
삼월 이십오일. 어제 카드에 적힌 내일 날짜가 오늘이다. 이관 인수인계서의 마지막 기재 내용을 적으려 다섯 묶음의 마지막 장을 다시 읽는다. 네 묶음이 모두 자라 있다 — 측량기수의 깊이는 아래로, 등대수의 날짜는 앞으로, 사서의 음절은 옆으로, 전신수의 사번은 끝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그러나 모두 끊긴 자리(마지막 자리)에서. 측량기수는 죽은 손인데도, 옮겨 적는 손이 없는데도 끝자리가 자란다(첫 묶음 법칙이 기재자 없이 작동). 완결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자라는 일지다. 끊긴 자리가 멈춘 자리가 아니라 자라는 자리. 다섯째 묶음 마지막 줄(전임자 사번+제 끝자리)도 본문 칸의 제 줄과 같은 속도로 자란다. 보존=멈춤이 아니라, 갈무리한 다음에도·읽을 때마다 한 단위씩 번진다. 이관 목록에 자금부 잔여 자료(강민석 둘레)도 있으나 펼치지 않는다. 끝 훅: 마지막 기재 내용 칸을 비워 둠 — 마지막이 멈추지 않아 적을 수 없다. 작성자 없는 칸과 마지막 없는 칸이 나란히.
삼월 이십육일. 다섯째 묶음 첫 장의 색인 카드 '끝까지 읽지 말 것'을 다시 읽는다 — 사흘 전엔 보존 담당의 당부로 읽혔으나,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 오늘은 다르게(읽으면 자람·번짐). '끝까지 읽지 말 것'은 '끝까지 번지게 하지 말 것', 보존 담당에겐 '보존하지 말 것'이다. 보존하는 손이 곧 번지게 하는 손. 전임자도 같은 카드를 보고 어겼고, 어길 줄 알면서 다음 사람에게 남겼으며, 네 옛 손도 각자 '끝까지' 간 손이었다. 화자도 직무라는 핑계로 어긴다 — 직무가 번짐을 강제하고, 읽지 않는 길(이관)도 인수인계서 때문에 결국 읽기로 이어진다. 같은 핑계=같은 자리=같은 끝(전임자가 간 자리). 보존은 현상을 잇는 행위(1막 도입부 닫음). 끝 훅: 다섯째 묶음 마지막 줄 아래 여섯째 묶음 첫 줄(제 사번)이 종이로 건너옴 — 끝나는 자리가 시작하는 자리. 비움의 연쇄(받는 이·작성자·마지막·다음 손)의 끝에 제 자리. '끝나지 않음'이라고도 적지 못함(적으면 그 줄도 자람).
삼월 이십칠일. 이관 서류의 자료 규모 칸(묶음 두께)을 채우려 자로 잰다 — 잴 때마다 한 푼씩 두꺼워진다(종이 부풀 까닭 없음). 다섯 묶음 모두, 자가 닿는 순간 두께가 더해진다. 측량기수 일지: 잴수록 갱이 깊어진다(재는 일이 깊이를 더함, 손 잘못 아니라 재는 일 자체의 결). 첫 장 열두 길→마지막 마흔 길 초과=한 사람이 마흔 번 넘게 잼, 잴수록 멀어지는 바닥. 내가 두께 재는 일=측량기수가 깊이 재는 일(같은 일). 자·습기·눈을 의심하다 측량기수가 도착한 자리(재는 일 자체를 의심)에 닿음. 한 번만 재기로 해도 덮어 둔 서류가 보지 않는 동안 두꺼워짐(둘째 수치 선재). 측량기수가 줄을 거뒀는지 더 내렸는지 못 적고 끊긴 그 자리에 화자가 들어섬(결과가 손보다 앞). 끝 훅: 규모 칸 비운 채 자를 서랍에 넣고 닫음 — 열어 보면 재는 일, 재면 자람.
삼월 이십팔일. 보존 일지를 처음 적으려 하니 오늘 날짜 위로 나흘 치 처리가 이미 적혀 있다(내가 적기 전에, 내 필체로). 등대수 일지: 다음 간조를 짚으면 그 날짜가 선재(적는 일이 날짜를 앞당김). 시험 삼아 열흘 뒤(사월 팔일)를 짚으니 '여섯째 묶음 첫 장 색인 카드 기입'이 이미 적혀 있음(미리 적는 손 따로 없음, 짚는 일이 칸을 채움). 내 보존 일지=등대수 물때표. 오늘 아래 내일 줄=이관 완료. 이관 서류는 끝 못 적는다 하고 보존 일지는 내일 끝난다 함(두 장부 어긋남). 등대수가 물때표를 믿고 물높이 재기를 그만둬 '재는 자→읽는 자'가 됐듯, 화자도 일지를 믿고 끝을 묻기를 그만둠. 사서장이 내일 상부 담당이 온다고 함(일지의 내일 줄을 입으로 옮김). 끝 훅: 이관은 자라는 것을 옮길 뿐 멈추지 못함 — 빈칸을 한 자리 더 옮기는 일.
삼월 이십구일(보존 일지가 '이관 완료'라 적은 날). 인수인계서 자료 설명을 적다 '묶음'이 묶·음으로 갈라지고, 다시 적으니 음이 으·음으로(적을수록 잘게 갈라짐). 사서 일지: 읽으면 단어가 음절로 갈라진다(단어=음절 묶은 매듭, 읽기가 매듭 풂). 다른 셋(갱·물때·사번=바깥)과 달리 사서는 읽기라는 기관 자체를 다뤄 손 닿는 모든 글자에 법칙이 듦 — 그만둔다는 생각조차 글자를 읽는 일이라 벗어날 수 없음(사서가 가장 깊이 갇힘). 시험 삼아 제 이름을 적으니 가운데 글자가 갈라지고 그 사이에 받는 이 빈칸 모양의 빈칸이 생김(법칙이 자료에서 자신에게로). 끝 훅: 상부 담당이 다섯 묶음을 받아 감(받는 이 빈칸이 상부로 한 자리 옮겨 감) — 단 여섯째 묶음은 사월 팔일에야 상자에 들어갈 예정이라 책상에 남아 자람. 빈칸 세 군데(갈라진 이름·빈 책상·빈 카드)가 한 줄로 읽힘. 갈라진 이름의 빈칸만은 다음 손에게 남기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생긴 빈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