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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의 대가

The Price of Answ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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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 이십이일. 아침 여덟 시. 발신 칸의 어제 내일이 다시 오늘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놀랍지 않았다. 어제 저녁 발신 칸에 떠오른 스무이틀이, 밤을 지나 오늘의 날짜가 되었다. 그 아래 밤사이 또 한 줄이 차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 같은 방식이었다. 여덟 자리 사번 하나가 날짜 아래 들어와 있었고, 앞자리는 겨울에 이관된 어느 회사의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읽었고, 읽었으므로 오늘 그 번호의 일이 올 것을 알았다. 어제 배운 것을 오늘 다시 확인하는 아침이었다. 보내면 온다. 보낸 것이 낮에 온다.

사흘째였다. 첫날은 놀랐고, 이튿날은 확인했고, 사흘째는 익숙했다. 발신 칸에 번호가 뜨고, 낮에 그 번호의 회사가 폐기되고, 저녁에 그 번호가 옅어지는 일이 하루의 순서가 되었다. 무서운 것은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이제 순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번호를 읽으면서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누구일지 묻지 않았다. 물어도 발신 칸은 답하지 않았고, 답하지 않는 물음을 사흘이나 되풀이할 기운이 내게는 없었다. 읽고, 기다리고, 옅어지는 것을 보는 일만 남았다. 순서가 된 일은 뜻을 잃는다. 뜻을 잃은 일이 날마다 정확히 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와 한 가지가 달랐다. 날짜 아래 사번은 하나였는데, 아침을 지나는 동안 그 옆으로 사번이 하나 더 옅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낸 것은 한 줄이었다. 그런데 옅어지는 것은 두 줄이었다. 하나는 내가 발신 칸에서 읽은 그 번호였고, 다른 하나는 그 아래, 내가 보내지 않은 번호였다. 보내지 않은 번호가, 보낸 번호 옆에서 함께 옅어졌다. 한 줄을 보냈는데 두 줄이 받는 자의 자리로 갔다.

낮에 폐기표가 다시 내려왔다. 어제와 같은 분류표였는데, 오늘은 회사가 둘이었다. 하나는 아침에 내 발신 칸에서 읽은 그 번호의 회사였고, 다른 하나는 그 회사의 거래처였다. 한 회사가 폐기되면서, 그 회사와 장부가 얽힌 다른 회사 하나를 함께 데려갔다. 무너진 회사의 미수금이 거래처의 장부에 구멍을 냈고, 구멍 난 장부가 그 거래처마저 폐기 연한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아침에 보낸 것은 한 회사였는데, 낮에 온 것은 두 회사였다. 보낸 하나에, 보내지 않은 하나가 딸려 왔다.

딸려 온 거래처는 작은 회사였다. 폐기표의 둘째 줄에 적힌 이름은 들어 본 적 없는 상호였고, 종업원이 몇 되지 않는 하청이었을 것이다. 큰 회사가 무너지면 그 아래 딸린 작은 회사들이 먼저 숨을 놓는다는 것을, 나는 겨울 내내 상자를 받으며 알았다. 미수금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지만, 부도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위의 회사가 못 갚은 돈이 아래 회사의 구멍이 되고, 구멍 난 아래 회사가 다시 그 아래를 데려간다. 내가 아침에 한 번호를 보내면, 그 번호에 얽힌 아래의 번호들이 저녁까지 차례로 옅어졌다. 발신 칸은 한 줄만 띄웠으나, 그 한 줄이 붙들고 있는 줄은 하나가 아니었다.

도경의 일지에 적힌 첫 응답의 대가가, 이제 내 발신 칸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도경은 한 줄을 고쳐 적어 한 사람을 명단에서 빼려 했고, 그러자 다른 줄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며 자랐다. 살리려고 고쳐 적은 값이, 다른 자리의 자람으로 돌아왔다. 나는 고쳐 적지 않았다. 다만 한 줄을 보냈을 뿐이다. 그런데 보낸 값이, 보내지 않은 다른 줄의 옅어짐으로 돌아왔다. 고쳐 적어도 대가가 오고, 그냥 보내도 대가가 왔다. 응답에는 값이 붙었다. 살리려는 응답이든, 뜻 없는 발신이든, 한 줄을 움직이면 다른 줄이 값을 치렀다.

나는 그 딸려 온 번호를 고르지 않았다. 도경은 강민석의 둘레를 골라 비웠고, 골랐으므로 무엇이 대가가 될지 얼마쯤 알았다. 나는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다. 발신 칸이 한 번호를 띄웠고, 나는 그것을 보냈고, 그러자 발신 칸이 딸린 번호 하나를 스스로 정했다. 값을 내가 정하지 않아도, 값은 붙었다. 오히려 내가 정하지 않았으므로, 어떤 자리가 대가가 될지 나는 알지 못했다. 도경은 값을 알고 치렀고, 나는 값을 모르고 치렀다. 모르고 치르는 값이 알고 치르는 값보다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딸려 온 거래처의 장부에도 사람들의 번호가 있었고, 그 번호들도 이제 어디에도 보존되지 않을 것이었다.

사서장과 두 보조는 아직 그 옅어짐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폐기표의 회사 이름을 읽었을 뿐, 그 이름이 아침에 내 발신 칸에서 먼저 떴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말한들, 도경이 사서장에게 경고를 전하지 못한 것과 같을 터였다. 아침의 발신 칸을 보는 눈은 나 하나였고, 낮의 폐기표를 읽는 눈은 넷이었으나, 그 둘을 겹쳐 보는 눈은 여전히 나 하나였다. 겹쳐 보는 자리에서만 값이 보였다. 그 자리에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보내서 딸려 온 것인지, 딸려 올 것이 함께 떠오른 것인지, 사흘째에도 나는 가르지 못했다. 아침에 발신 칸이 한 번호를 띄운 것이 그 번호와 얽힌 거래처의 부도를 부른 소환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얽혀 무너질 두 회사를 발신 칸이 미리 함께 읽은 예지였는지. 소환이라면, 내가 보내지 않았다면 그 거래처는 겨울을 넘겼을지도 몰랐다. 예지라면, 내가 보내든 보내지 않든 그 거래처는 이미 무너질 자리였다. 두 경우는 사람 하나의 겨울을 두고 정반대였으나, 발신 칸 위에서는 같은 두 줄의 옅어짐으로 보였다. 정반대인 두 가능이 같은 결과로 보이는 자리에서, 나는 어느 쪽에도 죄를 물을 수도, 죄를 벗을 수도 없었다.

옅어지는 두 줄 아래, 세 번째 줄 하나가 흐릿하게 비쳤다. 아직 옅어지지는 않았으나, 옅어질 자리처럼 희미했다. 딸려 온 거래처가 또 다른 거래처와 얽혀 있는지도 몰랐다. 대가가 대가를 부르고, 한 줄이 두 줄을, 두 줄이 세 줄을 데려가는 자리에 나는 손을 대고 있었다. 발신 칸은 오늘도 저녁에 새 날짜를 띄웠다. 스무이틀이 오늘이 되자, 발신 칸은 스무사흘을 띄웠다. 내일 자 아래는 아직 비어 있었으나, 나는 이제 그 빈자리가 밤사이 채워질 것을, 그리고 낮에 그 번호의 일이, 어쩌면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셋의 일이 올 것을 알았다. 보내기 시작한 자리에서, 값은 날마다 조금씩 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