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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을 어떻게 짓고 옮겨 적는가 — 발상·설정·집필·삽화의 기록.

작가 인터뷰 · 2026년 5월

「장부 아래의 숫자」를 옮겨 적는 작가와 마주 앉았다. 괴물도, 비명도 없이 — 숫자 하나로 어떻게 공포를 짓는지, 무엇을 끝까지 말하지 않기로 했는지 물었다.

Q. 이 작품은 어디서 시작됐나요?

네 묶음의 프롤로그에서 시작했습니다. 등대수, 측량기수, 전신수, 사서 — 1923년부터 1937년까지, 직업도 시대도 다른 네 사람의 발견-기록입니다. 그런데 넷이 같은 법칙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재거나, 적거나, 읽거나, 응답하는 순간 고정되지 않는 것들. 갱은 잴수록 깊어지고, 조수는 되풀이되고, 전문은 거꾸로 접히고, 음절은 갈라집니다. 본편은 그 법칙을 한 번 더 번역한 겁니다 — 이번엔 숫자와 장부로.

Q. 핵심 컨셉을 한 줄로 말하면?

옮겨 적을수록 불어나는 숫자. 1997년 가을, 한 종합금융사 자료실에서 옛 장부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옮기던 기록 담당의 손에서, 단기 외채와 환율과 신용등급은 적을수록 한 자리씩 자랍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날짜의 부도가 장부에 먼저 와 적히죠.

Q. 왜 하필 숫자와 장부, 그리고 IMF인가요?

코즈믹 호러를 가장 건조한 사물에 심고 싶었습니다. 옮겨 적는 일에는 위안이 있어요. 숫자는 제자리에 있고, 한 면을 옮기면 그 면은 영원히 그 자리에 남으니까. 그 위안을 배신하는 게 이 이야기의 공포입니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는 — 이 작품에서 —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 법칙의 최대 발현입니다. 한 나라가 제 장부 아래에서 자라는 수를 뒤늦게 따라잡는 일이죠.

Q. 괴물이 안 나오는데, 그럼 무엇이 무서운 건가요?

기록하는 행위 자체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곧 기관(機關)이에요. 관찰자는 점점 자기가 적는 현상의 일부가 됩니다 — 바위의 다음 줄, 빈 주파수의 발신자처럼. 그리고 그 수가 결국 데려가는 건 추상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번 두 자리 차이의 입사 동기, 작년에 결혼하고 봄에 아이를 낳고 가을에 대출로 집을 산 동료 — '닳아 갈 다음 줄'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가장 무섭죠.

Q. 문체와 형식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발견-기록과 편집자 프레임을 유지하되, 본편은 화자의 현재 1인칭이 축입니다.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는 거리감이 톤을 만들고요. 매 회차는 합리적 설명이 도착하지 않는 자리에서 끊습니다. 라틴어 사훈은 종금사 전산 단말의 부팅 표어나 신용평가 모델 주석으로 현대 변주하고, 한국어와 영어를 같은 무게로 동시에 옮깁니다. 삽화는 19세기 음각 판화 톤으로 — 사건을 그리기보다 사물·빛·여백을 새기고, 인물과 글자는 비웁니다. 시대도 국가도 없는 결을 지키려고요.

Q. 끝까지 말하지 않기로 한 게 있다고요.

하나 있습니다. 기록이 그 숫자를 불러온 것인지, 아니면 이미 정해진 것을 먼저 본 것인지 — 소환인지 예지인지. 화자도, 저도 답하지 않습니다. 그 모호함이 풀리는 순간 호러는 설명이 되어 죽으니까요. 독자가 끝까지 두 가능성 사이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의 방향성은? (스포일러는 빼고)

열 권의 여정입니다. 1997년 가을의 직전에서 시작해, 환란의 한복판을 지나, 회복기와 밀레니엄의 문턱까지. 시대가 바뀌어도 법칙은 멈추지 않고, 닳아 갈 다음 줄은 점점 더 가까운 사람을 데려갑니다 — 결국에는. 그 '결국'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옮겨 적으며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