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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지 말 것

Do Not Read to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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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이십육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다섯째 묶음 첫 장에는 색인 카드가 한 장 끼어 있었다. 사흘 전, 처음 상자를 열던 날 나는 그 카드를 보았다. 거기에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끝까지 읽지 말 것. 그날 나는 그 한 줄을 보존 담당의 당부쯤으로 여겼다. 자료를 함부로 다 펼치지 말라는, 보존을 맡은 사람끼리의 주의쯤으로.

그 주의를 어기고 나는 끝까지 읽었다. 보존하려면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알아야 하고, 알려면 읽어야 하며, 읽으면 끝까지 가게 된다고, 그날 나는 핑계를 댔다. 핑계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 댔다. 끝까지 읽은 다음에 다섯째 묶음의 마지막 줄에서 내 끝자리를 읽어 냈고, 읽어 낸 자리가 본문 칸의 한 줄이 되었다.

오늘 다시 그 카드를 보았다. 끝까지 읽지 말 것. 사흘 전과 같은 한 줄이었다. 다만 사흘 전에는 '읽지 말 것'으로 읽혔던 그 줄이, 오늘은 다르게 읽혔다.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흘 동안 배운 다음이었다. 읽으면 자란다. 읽으면 번진다. 읽은 자리가 적힌 자리가 된다. 끝까지 읽지 말 것은, 끝까지 자라게 하지 말 것이었다. 끝까지 번지게 하지 말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보존이 내 일이었기 때문이다. 보존하려면 읽어야 했고, 읽으면 번졌다. 보존하는 일과 번지게 하는 일이 한 손의 한 동작이었다. 끝까지 읽지 말 것이라는 경고는, 보존 담당에게는 보존하지 말 것이라는 경고였다. 보존하는 손이 곧 번지게 하는 손이라면, 자료를 살리려는 보존이 자료를 자라게 하는 일이었다.

전임자도 이 카드를 보았을 것이었다. 전임자가 다섯째 묶음을 끝까지 채운 사람이라면, 그 첫 장에 이 카드를 끼운 사람도 전임자였을 것이다. 전임자는 네 묶음을 끝까지 읽었고, 끝까지 읽은 다음에 제 묶음을 적기 시작했으며, 제 묶음 첫 장에 끝까지 읽지 말 것이라고 적어 끼웠다. 자기가 어긴 경고를, 다음 사람을 위해 남긴 것이었다. 어길 줄 알면서 남긴 경고였다. 네 묶음을 읽고 어긴 손이, 다음 손도 어길 것을 알면서.

네 옛 묶음에도 같은 줄이 있었을지 모른다. 측량기수의 묶음 첫 장, 등대수의 묶음 첫 장, 사서의 묶음 첫 장, 전신수의 묶음 첫 장. 네 손이 각자의 일지를 끝까지 적은 사람이라면, 네 손도 그 앞의 무언가를 끝까지 읽은 다음에 적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끝까지 읽지 말 것이라는 줄을, 네 손도 어디선가 보았고, 네 손도 어겼을 것이었다. 갱을 끝까지 잰 손, 물때를 끝까지 적은 손, 단어를 끝까지 읽은 손, 전문을 끝까지 받은 손. 끝까지, 라는 말이 네 손의 일지에 공통으로 있었고, 끝까지 간 손은 끝까지 읽힌 자리에 놓였다. 카드의 경고는 한 사람에게 남긴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모든 손에게 미리 남긴 것이었다.

다음 손이 나였다. 나는 어겼다. 어길 줄 알면서 어겼다. 전임자가 그러했듯, 핑계를 대면서. 보존이 직무라는 핑계. 직무라는 핑계는 단단했다. 사서장이 보존하라고 지시했고, 끝나면 이관하라고 했다. 지시받은 일을 하지 않으면 직무 불이행이었다. 직무를 다하려면 보존해야 했고, 보존하려면 읽어야 했으며, 읽으면 번졌다. 직무가 번짐을 강제했다.

어기는 일에 핑계가 필요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핑계 없이 어기는 일은 없었다. 전임자는 보존이라는 핑계로 어겼고, 나도 같은 핑계로 어겼다. 핑계가 같다는 것은 어기는 자리가 같다는 것이었고, 어기는 자리가 같다는 것은 끝이 같다는 것이었다. 전임자는 끝까지 읽은 다음 끝까지 읽히는 자리에 놓였다. 같은 핑계로 같은 자리에 선 나는, 전임자가 간 자리로 가고 있었다. 핑계는 어기는 일을 가볍게 해 주는 듯했으나, 가벼워진 손이 닿는 곳은 전임자가 닿은 곳과 같았다.

읽지 않는 길이 없지는 않았다. 다섯 묶음을 펼치지 않고, 마지막 장을 보지 않고, 그대로 상자에 도로 넣어 상부로 올려 보내면, 내 손은 더 읽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인수인계서에는 마지막 기재 내용을 적어야 했고, 마지막 기재 내용을 적으려면 마지막 장을 읽어야 했다. 읽지 않고 이관하는 길은 인수인계서를 비워 두는 길이었고, 비워 둔 인수인계서는 받아 주지 않았다.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제 사서장이 보여 주었다. 마지막 기재 내용 칸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사서장은 아직 안 적었느냐고 물었다. 비워 두면 묻고, 물으면 적어야 하며, 적으려면 읽어야 했다. 비워 두는 길은 묻는 길로 이어졌고, 묻는 길은 읽는 길로 이어졌다. 읽지 않는 길의 끝에도 읽기가 있었다.

오후에 나는 인수인계서의 마지막 기재 내용 칸을 적기로 했다. 비워 두면 묻고, 물으면 적어야 한다면, 적는 편이 나았다. 다섯째 묶음의 마지막 장을 폈다. 전임자 사번에 내 끝자리가 붙은 한 줄. 그 끝자리를 읽으려는데, 끝자리 아래로 한 자리가 더 와 있었다. 어제까지는 없던 한 자리였다.

새로 온 한 자리를 읽었다. 첫 두 자리가 자료실의 코드였고, 끝 두 자리가 내 사번이었다. 다섯째 묶음의 마지막 줄 아래에, 여섯째 묶음의 첫 줄이 적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제 본문 칸에서 자라던 내 한 줄이, 오늘 종이 위에도 와 있었다. 단말 안의 줄과 종이 위의 줄이 같은 속도로 자란다고 어제 적었는데, 오늘은 단말 안의 줄이 종이로 건너와 있었다.

여섯째 묶음의 첫 줄이 종이에 와 있다면, 여섯째 묶음에도 첫 장이 있어야 했다. 첫 장에는 색인 카드가 끼워져야 했다. 전임자가 다섯째 묶음 첫 장에 끝까지 읽지 말 것이라고 적어 끼웠듯, 나도 여섯째 묶음 첫 장에 무언가를 적어 끼워야 다음 손에게 남길 수 있었다. 다음 손은 아직 없었다. 자료실에는 사서장과 두 보조와 나뿐이었고, 다섯째 책상에 앉은 것은 나였다. 다음으로 이 책상에 앉을 사람을, 나는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남길 카드를, 나는 아직 적지 못했다.

적지 못한 것이 한 장 더 늘었다. 작성자 칸을 비웠고, 마지막 기재 내용 칸을 비웠으며, 이제 여섯째 묶음의 색인 카드를 비운 채로 두었다. 비운 자리가 셋이 되었다. 받는 이 없는 상자, 작성자 없는 다섯 카드, 마지막 없는 인수인계서, 그리고 다음 손 없는 여섯째 묶음. 비움이 한 줄로 이어졌고, 이어진 비움의 끝에 내 자리가 있었다. 전임자가 받는 이 칸을 비워 내게 남겼듯, 나도 어딘가를 비워 다음 손에게 남길 것이었다. 다만 다음 손이 누구인지를 모른 채.

마지막 기재 내용 칸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다시 알 수 없었다. 마지막 기재 내용은 전임자의 마지막 줄인가, 아니면 그 아래 새로 온 내 첫 줄인가. 다섯째 묶음의 마지막은 여섯째 묶음의 처음과 한 줄로 이어져 있었고, 이어진 자리에서는 마지막과 처음이 같은 줄이었다. 끝나는 자리가 시작하는 자리였다. 나는 마지막 기재 내용 칸에, 끝나지 않음, 이라고 적으려다, 그것도 적지 못하고 손을 멈췄다. 끝나지 않음이라고 적는 일도 적는 일이었고, 적으면 그 줄도 자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