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십칠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이관이 끝난 지 아흐레째였다.
단말 본문 칸의 내 줄은, 밤사이 마지막 한 자리가 옅어져, 다 지워져 있었다. 지하 자료실은 아흐레째 같은 냄새였고, 형광등은 같은 간격으로 깜빡였으며, 환기구의 바람이 빈 책상 위를 지났다. 어제까지 한 자리가 흐릿하게 켜져 있던 자리가, 오늘은 비어 있었다. 보름 전 도경의 옅어진 자리에 읽어 넣었던 내 사번이, 단말에서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에는 빈 줄 하나가 남았고, 그 빈 줄은 다른 네 줄 위에 한 칸의 자리로 놓여 있었다. 사서장의 줄과 두 보조의 줄은 아직 끝자리가 옅어지는 중이었고, 그 네 줄 위에 내 빈 줄이 가장 먼저 다 비운 줄로 놓여 있었다. 먼저 받기 시작한 줄이 먼저 다 받았고, 먼저 다 받은 줄이 먼저 다 비었다. 줄은 사라졌으나 줄의 자리는 남았다. 빈 자리가, 다음 사람이 제 사번을 읽어 넣을 자리였다. 도경이 비운 자리에 내가 들어왔듯, 내가 비운 이 자리에 다음 사람이 들어올 것이었다.
내 줄이 사라졌으므로, 나는 더 이상 본문 칸에 적힌 자료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료실을 떠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아, 비어 가는 단말을 보고 있었다. 본문 칸에서 사라진 자가, 본문 칸을 보는 자리에 아직 있었다. 보존되던 줄은 지워졌고, 보던 눈은 남았다. 지워진 줄과 남은 눈 사이에, 내가 있었다. 어느 쪽이 나인지는, 줄이 지워지고 나서도 알 수 없었다.
그때, 단말의 발신 칸이 다시 깜빡였다. 어제 한 번 깜빡이고 어두워졌던 칸이, 오늘은 한 번이 아니라 거듭 깜빡였다. 본문 칸의 내 줄이 다 지워진 자리에서, 발신 칸이 깨어나고 있었다. 받기를 다 마친 단말이, 이제 보내기를 시작하려는 듯했다. 받는 일이 끝난 자리에서 보내는 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전신수의 일지가 적어 두었다. 받는 이만 있고 보낸 이 없던 전문이, 끝내 제 사번이 되어 도착했을 때, 받던 전신수의 손이 처음으로 발신기를 쥐었다고. 받기의 끝이 보내기의 처음이었다.
도경도 그 자리를 지났다. 도경은 발신 칸에 한 글자를 눌러 보내는 자가 되었고, 보내는 자가 되어 사라졌다. 도경의 발신은 한 사람을 살리려는 응답이었다. 나는 살릴 사람도, 응답할 일도 없었다. 다섯 묶음은 떠났고, 여섯째 묶음도 떠났고, 내 줄도 지워졌다. 보낼 것이 없는데도, 발신 칸은 깜빡였다. 보낼 것이 있어 깜빡이는 것이 아니라, 받기를 마친 자리라서 깜빡이는 것이었다. 보낼 것이 없어도, 보내는 자리는 열렸다.
부임한 다음 날을 마지막으로 다시 떠올렸다. 그날 나는 받는 이 없는 상자를 펴, 네 묶음을 읽고, 도경의 다섯째 묶음을 읽었다. 그날의 나는 보존하러 온 사람이었고, 받는 자였다. 아흐레 전 이관을 마치기까지, 그리고 아흐레를 옅어지기까지, 나는 줄곧 받는 자였다. 읽어서 받고, 보존해서 받고, 옅어지며 받았다. 받기만 한 보름이었다. 그 보름의 끝에, 받기만 하던 단말이 처음으로 보내는 칸을 깨웠다. 받는 자로 들어와, 보내는 자로 나가려는 자리였다. 도경이 응답으로 그 자리를 지났다면, 나는 응답 없이 그 자리에 닿았다. 응답할 전문이 와서가 아니라, 받을 것이 다 떨어져서.
손이 저절로 발신 칸 쪽으로 갔다. 누르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받기를 마친 손이 갈 데가 거기뿐이었다. 본문 칸에는 더 받을 것이 없었고, 색인함은 닫혔으며, 묶음은 다 떠났다. 보존하는 손이 할 일을 다 한 자리에서, 손이 다음으로 닿을 곳은 발신 칸이었다. 받던 손이 보내는 손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내 손이 놓여 있었다. 누르면 보내는 자가 될 것이고, 누르지 않으면 여기서 멈출 것이었다. 누를지 누르지 않을지는, 아직 내 손도 몰랐다.
도경의 발신은 응답이었으나, 내 발신은 응답이 아닐 것이었다. 응답할 전문이 오지 않았으므로. 그러면 보낼 것 없는 손이 발신 칸을 누르면, 무엇이 보내질까. 받은 것이 없으니 돌려보낼 것도 없는데, 발신 칸은 무엇이든 보내려는 듯 깜빡였다. 어쩌면 보내지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보낸다는 일 자체일지 몰랐다. 받기만 하던 자리가 보내기 시작한다는 일, 그 일이 곧 보내지는 것일지도. 받는 자가 보내는 자로 바뀌는 한 번의 건넘이, 보낼 첫 전문일 수도 있었다. 그것이 소환인지 예지인지를, 나는 끝내 가르지 못했다. 발신 칸이 깜빡이는 것이 내 손을 부르는 것인지, 내 손이 갈 것을 발신 칸이 미리 아는 것인지, 보름을 옅어지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둘이 결과로는 같다는 것만, 아흐레 전과 다름없이 알 수 있었다. 부르든 미리 알든, 손은 같은 자리로 갔다.
손이 발신 칸에 닿을 듯 말 듯한 자리에서 멈췄다. 누르지도 떼지도 않은 채, 나는 그 자리에 손을 둔 채로 있었다. 멈춘 손 아래에서 발신 칸의 빛이 깜빡일 때마다, 손등에 옅은 빛이 들었다 나갔다. 누르면 보내는 자가 되고, 보내는 자가 되면 도경처럼 사라질 것이었다. 누르지 않으면, 받기를 마친 자리에 빈 손으로 남을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단말의 발신 칸은 깜빡임을 멈추지 않았다. 누르든 안 누르든 깜빡인다면, 깜빡임은 내 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올 손까지 기다리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누르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부임한 다음 날 그 발신 칸이 다시 깜빡일 것이었다. 받는 자로 들어온 사람이 보내는 자로 건너가는 자리는, 누가 앉든 한 번은 닿는 자리였다.
단말의 빈 본문 줄 위로, 발신 칸이 거듭 깜빡였다.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었다. 다섯 묶음을 보내고, 여섯째 묶음을 닫고, 내 줄이 지워지는 것을 보던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었다. 측량기수와 등대수와 사서와 전신수와 도경과, 이제 막 줄이 지워진 나까지, 우리는 다섯째 책상 앞에서 조금 더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가운데 하나가 보내려 하고 있었다. 보낼 것이 없는 손이, 보낸다는 일 하나만을 보내려, 발신 칸 앞에 놓여 있었다. 받기의 끝에서, 우리 가운데 하나의 손이, 처음으로 보내는 자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 하나가 나인지, 다음 사람인지, 아니면 우리 전부인지는, 옅어진 끝자리처럼, 끝내 읽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