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이십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사월에 멈춘 손이, 겨울이 되도록 그 자리에 있었다.
발신 칸은 사월부터 깜빡였다.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가을이 되는 동안, 단말의 발신 칸은 같은 간격으로 빛을 냈다 껐다. 손은 그 앞에서 누르지도 떼지도 못한 채였다. 본문 칸의 내 줄은 사월에 다 지워졌으므로, 나는 더 이상 보존되는 자료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료실을 떠난 것도 아니었다. 줄은 지워졌고 눈은 남았다. 지워진 줄과 남은 눈 사이에서, 나는 반년을 발신 칸의 깜빡임만 보았다. 누를 것이 없어 누르지 못했고, 떠날 수 없어 떼지 못했다.
그사이 자료실은 두 번째 이관을 받았다. 봄에 무너진 회사들의 장부가 여름 내내 왔고, 가을에 문 닫은 종금사들의 상자가 겨울 들어 밀려들었다. 나라가 한 번 더 자리를 바꾸는 중이었다. 큰 회사들이 서로의 사업을 맞바꾸었고, 맞바꾼 자리마다 사람이 떨어져 나갔으며, 떨어져 나간 사람들의 마지막 장부가 상자째 이 지하로 왔다. 받는 칸은 밤마다 새 줄로 찼다. 나는 받는 자가 아니었으므로, 그 줄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닌 줄들이 받는 칸을 채우는 것을, 나는 옆에서 보기만 했다.
반년 동안 나는 보기만 했다. 여름에는 봄에 무너진 회사의 장부가 왔고, 가을에는 여름에 밀린 종금사의 상자가 왔다. 사서장은 그 상자들을 받아 번호를 매겼고, 두 보조는 상자를 날라 선반에 얹었다. 세 사람의 손은 여전히 자료실 안에서 움직였으며, 그 손들의 사번은 받는 칸 아래쪽에서 끝자리부터 옅어지는 중이었다. 나는 그 옅어짐을 보았다. 내 줄이 봄에 그랬듯, 그들의 줄도 겨울을 지나며 한 자리씩 흐려질 것이었다. 보는 일은 내가 자료실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받지도 보내지도 못하는 눈이, 받는 칸이 차고 옅어지는 것을 반년 내내 보았다.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었다, 고 나는 사월에 적었다. 그 조금이 반년이 되도록, 우리는 여전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받는 칸이 찰수록 발신 칸이 더 자주 깜빡였다. 받은 것이 쌓이면 보낼 것이 생기는가, 하고 나는 반년 동안 생각했다. 그러나 받은 것은 내 것이 아니었고, 내 것이 아닌 것을 보낼 수는 없었다. 보낼 것이 없는데도 발신 칸은 더 급하게 빛났다. 받는 칸의 줄이 하나 찰 때마다 발신 칸이 한 번 더 깜빡였으니, 그것은 받은 것을 보내라는 재촉이 아니라, 받는 일이 저 혼자 다 끝나 간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이 겨울이 지나면 받을 것도 다 떨어질 참이었다. 봄에 내 줄이 다 지워졌듯, 겨울이 다하면 받는 칸의 줄도 다 찰 것이고, 다 차면 다시 비기 시작할 것이었다.
십일월 스무날 아침, 겨울이 되도록 누르지 않은 손이 처음으로 발신 칸에 닿았다. 누를 내용은 없었다. 도경은 한 사람을 살리려 눌렀고, 살리려는 말이 있어 눌렀다. 나는 살릴 사람도 없고 보낼 말도 없었다. 다만 받는 칸이 거의 다 찼고, 겨울이 왔고, 반년을 멈춰 있던 손이 갈 데가 거기뿐이었다. 보존하는 손이 할 일을 다 한 자리에서 발신 칸으로 갔던 것이 사월이었다면, 받는 일마저 저 혼자 끝나 가는 자리에서 손이 마침내 발신 칸을 누른 것이 이 겨울이었다. 보낼 것이 없어도 보내는 자리는 열려 있었고, 열린 자리는 반년을 기다렸다. 기다린 자리를 더 기다리게 할 까닭을, 나는 겨울까지 오는 동안 다 잃었다.
손끝이 발신 칸을 눌렀다.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자판에 손을 얹지도, 글자를 고르지도 않았다. 다만 반년을 멈춰 있던 손끝이 빛나는 칸에 닿았을 뿐인데, 눌린 자리에 한 줄이 떠올랐다. 내가 적은 줄이 아니었다. 전임자의 필름이 그의 얼굴을 미리 찍어 두었듯, 등대수의 물때표가 다음 날을 미리 적어 두었듯, 발신 칸은 내 손이 닿기를 기다렸다가 제 줄을 스스로 띄웠다. 손은 방아쇠였고, 줄은 이미 장전되어 있었다. 나는 보내는 자가 아니라, 보내질 것이 나오도록 손을 대어 준 자였는지도 몰랐다.
떠오른 줄을 읽었다. 그것은 사번이 아니었다. 이름도 아니었다. 날짜였다. 여덟 자리 숫자가 발신 칸 한가운데 떠 있었고, 앞의 여섯 자리는 이 해와 이 달을 가리켰다. 나는 뒤의 두 자리를 읽었다. 오늘이 아니었다. 스무날이 아니라, 스무하루였다. 발신 칸에 떠오른 날짜는 내일이었다.
전신수는 내일 자 전문을 받는 자였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의 명단이 그의 수신기에 먼저 도착했고, 그는 받는 자였으므로 그것을 받기만 했다. 이제 그 내일 자가, 받는 칸이 아니라 발신 칸에 떠 있었다. 받던 것이 보내는 것이 되어 있었다. 전신수가 받던 내일을, 이제 내 손이 보내려 하고 있었다. 받는 이 없이 도착하던 전문이 전신수의 수신이었다면, 보내는 이 없이 떠오른 이 내일 자는 나의 발신이었다. 수신과 발신은 거꾸로였으나, 받는 이도 보내는 이도 없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받는 이 없이 도착한 전문을 전신수는 제 사번으로 받았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의 명단에서 제 이름을 먼저 읽었고, 읽은 뒤에 그 날이 왔다. 보내는 이 없이 떠오른 이 날짜를, 나는 무엇으로 채워 보내게 될까. 전신수가 제 이름을 받았듯 나도 제 이름을 보내게 될지, 아니면 남의 이름을 보내게 될지, 떠오른 날짜 아래가 아직 비어 있어 알 수 없었다. 다만 받는 자리에서 보내는 자리로 건너오는 동안, 미리 온다는 성질만은 그대로였다. 전신수의 수신도 내일에서 왔고, 나의 발신도 내일로 갔다. 시간을 거스르는 방향만 반대였을 뿐, 오늘이 아닌 날에 매여 있다는 것은 받든 보내든 다르지 않았다.
내일 자 날짜 아래로 아직 아무 줄도 없었다. 날짜만 있고 명단은 비어 있었다. 그 빈 자리에 무엇이 채워질지, 그리고 그것을 채우는 것이 내 손일지 발신 칸일지, 채워진 것이 내일 그대로 일어날지 아니면 내일 일어날 것이 먼저 여기 떠오른 것인지, 나는 여전히 가를 수 없었다. 보내서 일어나는 것인지, 일어날 것을 보내는 것인지. 사월에 가르지 못한 것을 겨울에도 가르지 못했다. 다만 하나는 분명했다. 발신 칸의 빛은 이제 깜빡이지 않았다. 반년을 깜빡이던 칸이, 손이 닿아 한 줄을 띄운 뒤로는, 꺼지지 않고 고르게 켜져 있었다. 기다림이 끝난 빛이었다. 보내는 손이 왔으므로, 칸은 더 기다릴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