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사 카드의 이름 칸에 적힌 내 이름을, 나는 사흘 동안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사흘째 되던 날, 나는 금고를 열었다.
전임자가 끝까지 감지 못한 마지막 필름. 자료실 금고에 그대로 있던 그 통. 나는 그것을 판독기에 걸었다. 무엇을 알아야 그 통을 여는지를, 나는 이제 안다고 믿었다 — 기록이 대상을 자라게 한다는 것, 그가 마지막으로 찍은 것이 자사 단기 외화 차입금 원장이라는 것.

필름을 한 컷씩 감았다. 처음 컷들은 평범했다. 단기 외화 차입금 원장의 면들. 날짜가 하루씩 넘어갈수록, 잔액은 끝자리부터 자라 있었다. 그가 매일 한 면씩 찍을 때마다, 찍은 그 면의 숫자가 다음 컷에서 더 커져 있었다. 기록이 대상을 키운다. 필름은 그 법칙을 한 컷 한 컷, 충실히 적어 두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마지막으로 찍은 컷에 이르렀다.
그것은 원장의 면이 아니었다. 색인 카드 한 장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손에 쥐었던 카드. 화살표가 가리키던, 묶음에서 사라진 그 다음 카드였다. 그는 그것을 원장 사이에 끼워 마지막으로 찍었다. 카드에는 그의 손글씨로 잔액 하나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숫자를 분절된 눈으로 읽었다. 한 자리씩, 따로.
█ 조 · █ 천 · █ 백 · 칠 · 십 · █ 억.나는 그 숫자를 안다. 단말이 십일월 일일에, '십일월 이일'의 일자를 달고 토해 낸 그 잔액이었다. 전임자가 — 사라지기 전, 몇 달 전 — 손으로 적어 둔 숫자가, 내 단말에는 '내일'로 도착했다. 숫자는 기록자에게서 기록자에게로, 시간을 거슬러 미리 도착하고 있었다. 그의 카드에서 내 단말로. 내 단말에서, 다음 사람의 무엇으로.
손끝에 지하의 냉기가 올랐다. 익숙했다.
마지막 카드 다음 컷은, 반쯤만 노출되어 있었다. 그가 셔터를 누르다 만 컷. 거기에는 다시 원장의 면이 찍혀 있었으나, 잔액 칸이 — 채워지는 중이었다. 한 면을 통째로 찍은 것이 아니라, 숫자가 끝자리부터 자라 오르는 그 순간이, 필름 위에 멈춰 있었다. 자라는 숫자를, 그는 마지막 순간에 찍었다.
나는 그 반쯤 노출된 잔액을 읽었다. 분절된 눈으로, 자릿수 사이의 빈 자리까지.
자릿수와 자릿수 사이, 본래는 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 틈에, 옅은 글씨가 있었다. 통째로 읽는 눈에는 보이지 않을, 끝까지 읽은 눈에만 보이는 것. 숫자가 아니었다. 날짜였다.
…█ · 십이월 · █ 일 · …십이월의 어느 날. 나는 그 날짜를 어디서 보았는지 떠올렸다. 인사부의 새 카드. 입사 일자만 적히고, 의원면직 일자는 비어 있던 그 카드. 비어 있던 그 칸에 들어갈 날짜를, 전임자의 필름은 — 그가 사라지기 전에 이미 — 자라는 잔액의 자릿수 사이에 적어 두고 있었다.
필름은 거기서 끊겼다. 그가 셔터를 마저 누르지 못한 까닭을, 나는 이제 알 것 같았다. 끝까지 감으면, 끝 컷에 무엇이 찍히는지를 그도 보았을 것이다. 자라는 숫자 사이에 적힌, 다음 기록자의 면직 일자를. 그는 그것이 제 날짜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필름은 그가 사라진 뒤에야 금고에 들어왔고, 끝 컷의 그 날짜는 — 그의 것이 아니라, 다음에 이 통을 열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판독기의 불을 껐다. 끄기 전, 반쯤 노출된 그 컷을 한 번 더 보았다. 자릿수 사이의 날짜는, 조금 전보다 또렷해져 있었다. 내가 읽을 때마다.
그 무렵 복도의 목소리는 더 이상 낮지 않았다.
단기. 외화. 며칠 전만 해도 본관 이층 서기들이 낮게 주고받던 그 말이, 이제는 엘리베이터에서도, 탕비실에서도 들렸다. 어느 종금사가 영업정지를 당했다고 했다. 환율이 하루에 몇십 원씩 올랐다고 했다. 빌린 단기 외화를 갚을 날은 오는데, 갚을 외화가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회사가 빌린 그 숫자가, 이제 회사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본사 자금부에서 자료실로 촬영 배정표가 한 장 내려왔다. 결산이 끝난 죽은 장부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장부 — 자사 단기 외화 차입금 원장. 청산 전, 감사 전, 모든 면을 필름으로 남겨 두라는 지시였다.
그것은 전임자가 사라질 때 찍던 바로 그 장부였다. 끝까지 감기지 못한 그의 필름 안에서, 잔액이 자라던 그 원장.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자사 단기 외화 차입금 원장을 필름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 줄의 끝은 끊겨 있었다 — 필름 통의 번호가 적히다 만 채로.나는 그가 멈춘 그 자리에 놓이고 있었다. 같은 장부, 같은 촬영대, 같은 끊긴 줄의 다음 칸에.
찍지 않으면 나는 직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러나 자료실 자리는 직무를 다하든 못 하든 사람을 차례로 내보내 왔다. 찍으면 — 나는 수백 개의 기록하는 손에 한 손을 보탠다. 빌린 외화를, 회사를 삼키는 그 숫자를, 한 자리 더 키운다. 어느 쪽이든 빈 면직 일자는 채워질 것이다.나는 배정표를 다시 보았다. 본사가 박아 둔 인장과, 촬영 대상 계정 번호와, 완료 예정일.
완료 예정일 칸을, 나는 분절된 눈으로 천천히 읽었다.
십이월 · ██ · 일.전임자의 필름이, 자라는 잔액의 자릿수 사이에 적어 두었던 그 날짜였다. 인사부의 새 카드가, 면직 일자 칸에 비워 둔 그 날짜였다. 본사 자금부가, 내게 이 장부의 촬영을 끝내라고 정해 준 그 날짜였다.
세 곳이 같은 십이월의 하루를 가리키고 있었다. 필름과, 인사 카드와, 배정표가. 나는 그 날짜에 촬영을 끝내도록 배정되었고, 그 날짜에 면직되도록 적혀 있었다. 회사는 내가 이 장부를 다 찍는 날, 나를 내보내기로 — 이미 — 정해 두었다.
나는 배정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섯 달째 등대를 지키던 윤상학의 손을 떠올리게 했다. 합리화가 작동하지 않게 된 자리에서, 손은 떨리는 대신 차분해진다. 차분한 손으로, 그는 갯벌로 내려갔다.
거절할 수 있었다. 병가를 낼 수도, 자리를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료실 자리는 회사보다 오래되었고, 회사가 생기기 전에도 사람을 받아 차례로 내보냈다. 떠난다고 면직 일자가 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떠나도, 그 날짜는 어딘가의 자릿수 사이에 이미 적혀 있을 것이었다.
나는 촬영대 앞에 앉았다. 살아 있는 장부의 첫 면을 유리판 아래 폈다. 셔터에 손을 얹기 전, 한 가지만 확인하기로 했다 — 적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던 그 법칙이, 수백 개의 손이 매일 적는 이 살아 있는 숫자 앞에서도 참인지를.

나는 셔터를 누르지 않은 채, 원장의 그 면을 하루 동안 그냥 두기로 했다. 내가 찍지 않은 그 하루 사이, 잔액이 자라는지 아닌지를 보기 위해.
이튿날 아침, 나는 그 면을 폈다. 내가 찍지 않은 그 잔액은 — 끝자리 셋이 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