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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숫자

The Living Number

  • 3,505자
  • ~7분

내가 찍지 않은 잔액도 끝자리 셋이 늘었다면, 통제는 이미 의미가 없었다.

죽은 장부는 한 사람의 손만 가끔 닿아 사흘에 한두 자리 자랐다. 살아 있는 장부는 달랐다. 자사 단기 외화 차입금은 모든 단말에 입력되고, 모든 마감에 적히고, 본사로, 한국은행으로, 그 너머로 보고되었다. 수백 개의 손이,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숫자를 옮겨 적었다. 내가 한 손을 빼도, 잔액은 수백 손의 무게로 자랐다.

나는 배정대로 그 살아 있는 장부를 찍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랄 숫자라면, 자라는 속도라도 재 두기로 했다. 측량기수가 갱의 깊이를 재었듯이.

매일 마감 잔액을 한 컷씩 찍고, 색인에 옮기지 않고 눈으로만 그 증가분을 셈했다. 분절된 눈에는 자릿수가 따로 도착했으나, 그 대신 자릿수가 하루에 몇 칸 자라는지는 또렷이 보였다.

…자 · 라 · 는 · 쪽 · — · 끝 · 에 · 서 · 부 · 터…

자라는 숫자가 있으면, 줄어드는 숫자도 있었다. 본사 자금부가 매일 게시하는 외화 현황표에는, 차입금 옆에 보유 외화가 적혀 있었다. 갚을 외화. 그 숫자는 자라지 않았다. 줄었다. 차입금이 끝자리부터 부풀어 오르는 동안, 보유고는 앞자리부터 깎여 내려갔다. 한쪽이 자란 만큼, 다른 쪽이 닳았다 — 측량기수의 갱이 깊어진 만큼 다림줄이 풀려 나갔듯이.

나는 두 숫자의 속도를 나란히 적었다. 차입금이 자라는 속도, 보유고가 줄어드는 속도. 두 선을 그으면, 어디선가 만났다. 보유고가 영(零)에 닿는 날.

차입금이 자라는 것은 수백 손이 적기 때문이다. 보유고가 주는 것은 그 차입금을 갚느라 닳기 때문이다. 기록이 한쪽을 키우고, 그 키운 무게가 다른 쪽을 갉는다. 두 선이 만나는 날, 갚을 것은 없고 갚을 날만 남는다. 그 날은 — 이달 안이다.

나는 그 날짜를 셈해 보았다. 분절된 눈으로 두 속도를 짚어, 두 선이 만나는 지점을 짚었다. 십일월의 끝자락이었다. 그 무렵, 갚을 외화가 영에 닿는다. 나라가 빌린 그 숫자가, 나라를 삼킨다.

자라는 숫자를 멈추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아무도 적지 않는 것. 옮겨 적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 죽은 장부의 다(丙) 잔액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살아 있는 외채를 아무도 적지 않게 할 수는 없었다. 수백 손을, 모든 단말을, 한국은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세상에서 아무도 적지 않는 숫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내 면직 일자. 인사 카드의 그 빈 칸. 아무도 적지 않은,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짜.

아무도 적지 않으면,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빈 칸으로 남는 한, 그 날은 오지 않는다. 나는 그 한 칸만은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게 지키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보았다. 전임자의 필름, 반쯤 노출된 그 끝 컷. 자라는 잔액의 자릿수 사이에, 십이월 ██일이 적혀 있었다. 내 면직 일자는, 빈 칸이 아니었다. 누군가 이미 적어 두었다.

수백 손이 외채를 적었다. 모든 단말이 잔액을 적었다. 그러나 내 면직 일자는 — 내가 적지 않았고, 인사부도 비워 두었는데 — 전임자의 필름 위에, 그가 사라지기 전에, 이미 적혀 있었다.

누가 그것을 적었는가. 내가 아니고, 인사부도 아니라면.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네 묶음의 표지마다 찍힌 그 한 줄이, 답이었다.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다 —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고 있다. 다음 기록자의 면직 일자를. 자라는 숫자의 자릿수 사이에.

자료실 문틈으로, 아침마다 시재표(時在表)가 한 장씩 밀려 들어왔다.

시재(時在). 그날 마감의 현금 잔고. 회사가 지금 손에 쥔, 당장 갚을 수 있는 돈. 자금부가 매일 아침 전날 마감의 시재를 인쇄해 각 부서에 돌렸고, 자료실에도 한 장씩 왔다. 나는 그것을 필름철 사이에 끼워 두기만 했다 — 살아 있는 외채를 찍는 일만으로도 손이 모자랐으므로.

십일월 십오일 아침, 문틈으로 밀려 든 시재표를 집어 들었다. 상단의 일자를 분절된 눈으로 읽었다.

십 · 일 · 월 · 십 · 육 · 일.

십일월 십육일. 내일이었다. 전날 마감의 시재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내일 마감의 시재가, 오늘 아침 인쇄되어 돌고 있었다. 단말이 화면에 토해 낸 내일의 잔액(십일월 일일)과 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화면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한 장의 종이였다. 부서마다 돌려진, 여러 손이 이미 만진 종이.

표 안의 시재는 작았다. 너무 작았다. 갚아야 할 단기 외화의 만기가 내일 몇 건 돌아오는데, 그것을 갚을 현금이 — 내일의 시재가 — 만기액에 못 미쳤다. 내일, 회사는 갚지 못한다. 그 사실이, 오늘 아침의 종이에 이미 적혀 있었다.

문득 전신수의 일지가 떠올랐다. 끝까지 읽지 말라던, 그러나 이미 읽어 버린 한 줄.

내일 자로 송신된 전문이 매일 밤 들어왔고, 다음 날 나는 그 전문이 적중함을 보았다. 빈 주파수의 부름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말했다.

전신수는 받아 적되 응답하지 말라는 한 줄을 어기고, 처음으로 응답했다. 그 순간 그는 듣는 사람에서 송신하는 사람이 되었고, 끝내 내일 자 전문을 보내는 그 발신자가 되었다. 나는 그 일지를 떠올리며, 내 손에 든 종이를 보았다. 받아 적되, 응답하지 말 것. 내일 회사가 못 갚는다는 이 종이를 보고 내가 무언가를 한다면 — 자금부에 알리든, 만기를 막든 — 나는 응답하는 사람이 된다.

응답하지 않으면 나는 읽는 사람이다. 응답하면, 나는 내일을 보내는 사람이 된다. 전신수가 그러했듯이. 그러나 회사가 내일 못 갚는다는 걸 알고도 가만히 있는 일을, 직무라 부를 수 있는가. 가만히 있는 것도 한 가지 응답이 아닌가.

나는 응답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만 확인하기로 했다 — 내일 자 시재표가 어디서 인쇄되어 나왔는지를. 종이 하단에는 인쇄한 단말의 식별 번호와 시각이 작게 박혀 있었다. 자금부의 단말이라면, 누군가의 실수로 시계가 어긋난 것이라 여길 수 있었다. 나는 그 번호를 분절된 눈으로 짚어 읽었다.

자금부의 번호가 아니었다. 자료실의 번호였다. 다섯 달을 처박혀 있다 내가 켠, 부팅 화면에 NUMERUS NON MENTITUR가 뜨던 그 여신 단말. 내 책상의 단말.

나는 그 단말로 시재표를 인쇄한 적이 없었다. 그 단말로는 외채 잔액을 조회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종이 하단의 시각은 오늘 새벽, 자료실에 아무도 없던 시각을 가리켰다. 내일의 시재표가, 내 단말에서, 내가 누르지 않은 손으로 인쇄되어 나왔다.

나는 아직 응답하기로 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단말은, 이미 내일을 인쇄해 부서마다 돌리고 있었다. 발신자가 되기로 정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발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