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이 내일의 잔액을 토해 낸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숫자가 자라는 것은 실험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마감하지 않은 내일의 숫자가 오늘의 화면에 박히는 일은, 어떤 변인으로도 묶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설명할 선례가 필요했고, 선례는 한 곳에만 있었다. 프나코틱 문고의 네 묶음.
전임자는 끝까지 읽지 말라 했다. 그러나 끝까지 읽지 않고는, 그 끝에 무엇이 있어 그가 경고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사서의 일지를 폈다. 네 묶음 중, 숫자가 아니라 글자를 다룬 유일한 기록.
1924년, 미스카토닉이라는 대학 도서관의 보조 사서 김재현. 그는 사라진 학장의 일기를 도서관에서 가지고 나왔다. 그 일기에는 청동 함과, 오리온도 큰곰도 아닌 별자리와, 라틴어로 새겨진 한 띠가 있었다. 김재현은 그 라틴어를 옮겨 적으려 했고 — 그때부터, 한 단어를 들으면 그 단어의 음절들이 따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합리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것은 1924년의 일이고, 정신의 병이고, 소설 같은 기록이라고. 나는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 장에서, 김재현은 학장이 찢어낸 페이지를 제 손으로 채우기 시작했고, 학장이 1893년에 남긴 한 줄에 이르렀다.
누 · 구 · 든 · 이 · 글 · 을 · 읽 · 는 · 다 · 면 — 함 · 을 · 닫 · 으 · 십 · 시 · 오. 더 · 이 · 상 · 읽 · 지 · 마 · 십 · 시 · 오.나는 그 줄을, 끝까지, 읽었다.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때, 책상 위 내 색인 카드의 글자들이 — 어제까지 통째로 들어오던 그 익숙한 글자들이 — 따로 떨어져 있었다.
단 · 기 · 외 · 화 · 차 · 입 · 금.나는 눈을 비볐다. 등불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지하의 형광등은 한 칸이 늘 깜박였으니. 나는 다시 카드를 보았다. 글자는 여전히 토막으로 왔다. 한 음절씩, 따로. 김재현이 1924년에 그러했듯이.
그는 라틴어를 옮겨 적다 옮았다. 나는 그의 기록을 끝까지 읽다 옮았다. 옮겨 적는 일도, 끝까지 읽는 일도, 같은 문을 연다. 전임자의 '끝까지 읽지 말 것'은 정신의 충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검역(檢疫)이었다.병은 글자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시험 삼아, 어제 단말에서 눈으로만 외워 둔 자사 단기 외화 잔액을 떠올렸다. 적지 않으려 외운 그 숫자. 머릿속에서 그것을 불러내자, 자릿수들이 따로 떨어져 도착했다.
█ 조 · █ 천 · █ 백 · □ 십 · □ 억.나는 그 숫자를 통째로 붙들 수 없었다. 한 자리를 보면 다른 자리가 흩어졌고, 끝자리를 세면 앞자리를 잊었다. 잔액이 얼마인지, 나는 더 이상 한눈에 읽을 수 없었다.
기록 담당이 숫자를 통째로 읽지 못한다. 사서가 글자를 읽지 못하면 사서가 아니듯, 나도 이제 내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통째로 읽지 못하는 눈에는,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자릿수가 따로 떨어지자, 나는 그 사이의 빈 자리를 보게 되었다. 숫자와 숫자 사이, 본래는 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 틈에, 무언가가 — 옅게 — 적혀 있었다. 통째로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 끝까지 읽은 눈에만 보이는 것.
나는 그 틈을 읽으려 카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김재현이 1924년에 그러했듯, 그것을 도착한 그대로 적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 그때는, 알지 못했다.
통째로 읽지 못하는 눈에는, 통째로 읽을 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나는 네 묶음을 책상에 나란히 폈다. 분절된 눈으로는 한 문장을 빨리 읽을 수 없었으나, 그 대신 문장과 문장 사이, 묶음과 묶음 사이의 빈 자리가 보였다. 네 기록이 같은 한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등대수 윤상학, 1934년 황해. 빛과 조수. 측량기수 백남수, 1923년 강원. 깊이. 전신수 신경하, 1937년 동해. 신호. 사서 김재현, 1924년 미스카토닉. 글자. 네 사람은 서로 만난 적이 없고, 다룬 것도 빛·깊이·신호·글자로 달랐다. 그러나 네 기록은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었다.
재면 깊어지고, 적으면 자라고, 응답하면 송신자가 되고, 끝까지 읽으면 옮는다. 관찰하는 손이 대상을 키운다. 그리고 네 사람 모두, 끝에 이르러 제가 기록하던 것의 일부가 되었다 — 조수 아래의 등불로, 바위의 다음 줄로, 빈 주파수의 발신자로, 그리고 다음 페이지를 펼칠 독자로.
측량기수는 갱의 깊이를 재는 사람이 아니라, 갱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제 몸으로 적는 한 줄이다.그리고 네 묶음의 표지에는, 펴낸 이의 인장 아래, 같은 한 줄이 찍혀 있었다. 편집자의 후기마다 마지막에 놓인, 그 한 줄.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다.프나코틱 문고. 나는 그것을 폐업한 출판사로만 알았다. 그러나 네 묶음을 나란히 두고 보니, 그것은 책을 펴내는 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런 기록들을 수습해,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옮겨 적어,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손이었다. 옮겨 적는 일이 무엇을 시작하는지 알면서도, 옮겨 적는 손. '우리'라는 그 손.
네 사람은 차례로 기록했고, 차례로 삼켜졌다. 그들의 기록은 다음 사람에게 건네졌다. 측량기수의 바위에 줄이 늘듯, 전신수의 빈 주파수에 발신자가 잇듯. 그렇다면 다섯 번째는 누구인가. 이 상자가 누구의 책상으로 흘러왔는가.상자가 우리 회사 창고로 흘러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전임자가 그것을 청구했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내가 앉았고, 그 상자가 내 책상으로 내려왔다. 나는 네 묶음을 읽었고, 끝까지 읽었고, 옮았다. 나는 다섯 번째 손이었다.
나는 상자를 들어 뚜껑 안쪽을 보았다. 거기, 인장이 눌렸던 자리가 다섯 개 있었다. 네 개에는 네 묶음의 표지와 같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다섯 번째 자리는 — 비어 있었다. 눌린 적 없는, 갓 마련된 빈 자리. 다섯 번째 기록자의 이름을 기다리는.

나는 내 색인 카드와, 내가 매일 적어 온 그 일지를 보았다. 단기 외화 잔액, 통제 실험, 단말의 사훈. 끝까지 읽은 그날들의 기록. 나는 줄곧 무언가를 옮겨 적고 있었다. 다섯 번째 묶음을, 지금, 내 손으로.
펜을 멈추었다. 다섯 번째 묶음을 내가 적고 있다면, 그것을 끝까지 읽을 다음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누가 그것을 수습해,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옮겨 적을 것인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일지의 첫 장에, 내가 적지 않은 한 줄이 — 어느새 — 적혀 있었으므로. '이것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수습한 기록이다.'
다섯 번째 묶음을 내가 적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사실이 필요했다. 옮겨 적은 적 없는, 단단한 사실. 나는 전임자가 누구였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인사부에 그의 인사 기록을 청했다. 인계 색인을 마무리하려면 전임자의 담당 이력이 필요하다고, 나는 둘러댔다. 절반은 사실이었다. 담당자는 캐비닛에서 얇은 봉투 하나를 꺼내 주었다.
봉투 안의 카드는 분절된 눈으로 읽기 어려웠다. 한 음절씩 떨어져 도착했으므로, 나는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어 가며 천천히 읽었다.
이름 칸의 마지막 글자는 검은 먹으로 지워져 있었다. 보존 기한이 지난 항목을 인사부가 말소한 것이라고, 담당자는 무심히 말했다. 성과 이름 한 자는 읽혔으나, 끝 글자는 닳은 듯 먹 아래 묻혀 있었다 — 등대수의 일지에서, 끝자리가 닳아 읽히지 않던 그 전임자의 이름처럼.
입사 일자, 자료실 배속 일자, 그리고 촬영 일지의 마지막 줄.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자사 단기 외화 차입금 원장을 필름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 줄의 끝은 끊겨 있었다 — 필름 통의 번호가 적히다 만 채로. 그날 이후 그는 출근하지 않았고, 그 자리는 의원면직으로 처리되었다. 사직서는 보존되어 있지 않았다.
봉투에는 청구 전표 한 장도 끼어 있었다. 창고에서 자료실로 무언가를 청구한 기록. 청구자는 그였고, 청구한 물건은 — 폐업한 출판사 '프나코틱 문고'의 자료 상자였다.
상자는 창고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전임자가 청구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내가 앉았고, 그가 청구한 상자가 내 책상으로 내려왔다. 네 묶음을 다음 손에 건네는 일은, 창고가 아니라 그가 한 것이다. 다음 손인 나에게.나는 담당자에게, 그 전에는 누가 자료실 기록 담당이었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료실 자리는 사람이 오래 붙어 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같은 자리의 옛 인사 기록을 캐비닛에서 한 묶음 꺼내 책상에 놓았다. 보존 기한이 지나 곧 폐기될 것들이라고.
나는 그 묶음을 천천히 넘겼다. 같은 자료실 기록 담당 자리의, 역대 담당자들. 입사와 의원면직. 입사와 의원면직. 사직서는, 한 장도 보존되어 있지 않았다. 글자가 따로 도착하는 눈으로, 나는 그 의원면직의 일자들을 손가락으로 짚어 세었다.
의 · 원 · 면 · 직. 의 · 원 · 면 · 직. 의 · 원 · 면 · 직.세다가 나는 멈췄다. 가장 오래된 의원면직 기록의 일자가, 우리 회사의 설립 일자보다 앞서 있었다.
회사가 생기기 전에, 회사의 자료실 자리가 사람을 의원면직 처리할 수는 없다. 나는 그 카드를 등불에 가까이 댔다. 잘못 읽은 것이 아니었다. 자료실 기록 담당 자리는, 그 자리를 둘 회사가 생기기 전부터 사람을 받아 왔고, 받은 사람을 차례로 내보내 왔다. 측량기수의 바위에 사람보다 많은 줄이 새겨졌듯이. 파는 이가 없는데 갱이 깊어졌듯이.
빈 책상은 전임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리였다. 회사보다 오래된 자리. 상자를 받고, 옮겨 적고, 끝까지 읽고, 다음 손에게 넘기고 — 사라지는, 그 자리.
나는 봉투를 덮으며, 한 가지를 늦게 깨달았다. 인사부 담당자가 내게 건넨 그 카드들에는, 가장 마지막에, 막 채워진 한 칸이 있었다. 입사 일자만 적히고 의원면직 일자는 아직 빈, 새 카드 한 장. 그 이름 칸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