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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때마다 자라는 법칙

The Law That Grows As It Is Wr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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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의 마지막 필름 통은 자료실 금고에 그대로 있었다. 끝까지 감기지 못한 채로. 나는 그것을 열지 않았다.

먼저 알아야 했다. 무엇이 숫자를 자라게 하는지. 그것을 모르고 그 통을 여는 일은, 깊이를 모르고 갱에 내려가는 일과 같았으므로 — 나는 그때 아직, 측량기수의 일지를 읽기 전이었다.

학자의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변인을 하나만 두고, 나머지를 묶는 것.

청산된 옛 원장에서 세 개의 잔액을 골랐다. 서로 무관한 계정, 다시 적힐 일이 없는 죽은 숫자들. 그것들에 가, 나, 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 색인 카드에 옮겨 적고, 필름으로도 찍었다. 그리고 카드와 필름을 금고에 넣어 잠갔다. 원장의 그 면만 매일 한 차례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 색인 카드에 옮겨 적기만 하고, 찍지는 않았다.

다: 옮겨 적지도, 찍지도 않았다. 그 잔액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을, 따로 한 장에 적어 두었다 — 실험이 끝나면 태울, 나만 보는 종이에. 원장에는 손대지 않았다.

사흘을 그렇게 두었다.

사흘째 아침, 세 면을 차례로 폈다.

가의 잔액은 끝자리 둘이 늘어 있었다. 옮겨 적고 찍은 것. 나의 잔액은 끝자리 하나가 늘었다. 옮겨 적기만 한 것. 다의 잔액은 — 그대로였다. 한 자리도 늘지 않았다. 옮겨 적지 않은 것.

옮겨 적는 행위가 변인이다. 적으면 자라고, 찍으면 더 자라고, 적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숫자를 자라게 하는 것은 시간도 계정도 아니다. 그것을 기록하는 나다.

손끝의 냉기는 이제 익숙했다. 익숙하다는 사실이 나를 더 차게 했다.

기록이 대상을 자라게 한다. 측정이 깊이를 늘린다. 나는 그 문장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읽은 것이 아니라, 읽게 될 것이었다. 나는 프나코틱 문고의 상자로 갔다. 네 묶음 중, 측량기수의 일지를 폈다.

그는 1923년, 강원도 어느 탄광의 수직갱 깊이를 재던 사람이었다. 다림줄에 한 길마다 붉은 실을 매어 갱에 내려뜨리고, 추가 바닥에 닿는 깊이를 셌다. 나는 그의 글을 끝까지 읽지 말라던 전임자의 당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줄은 이미 눈에 들어와 있었다.

같은 갱을, 같은 줄로, 한 식경 사이에 두 번 쟀을 뿐인데. 잴 때마다 한 길씩 더 깊은 바닥에 닿았다.

잴 때마다 한 길씩. 그의 갱은 파는 이가 없는데도 깊어졌고, 깊이를 적는 이의 숫자만 해마다 자랐다. 그는 그것을 줄이 늘어난 탓으로, 습기 탓으로 돌렸다. 나처럼.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 한 줄을 적었다 — 측량기수는 갱의 깊이를 재는 사람이 아니라, 갱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제 몸으로 적는 한 줄이라고.

칠십 년 전의 갱과, 내 책상의 죽은 잔액은 같은 법칙 아래 있었다. 재면 깊어지고, 적으면 자란다. 관찰하는 손이 대상을 키운다. 측량기수는 갱에 삼켜졌고, 나는 — 아직, 죽은 숫자를 재고 있었다.

죽은 숫자. 그 말에서 나는 멈췄다.

내 실험은 청산된 잔액으로 한 것이었다. 다시 적힐 일이 없는, 한 사람의 손만 가끔 닿는 죽은 숫자. 그래서 사흘에 한두 자리, 느리게 자랐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자료실 벽의 게시판을 보았다. 본사가 내려보낸 그 주의 촬영 배정표가 거기 붙어 있었다. 다음 주 내 일감의 첫 줄에, 익숙한 계정 분류가 적혀 있었다.

청산된 장부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장부였다 — 자사(自社) 단기 외화 차입금 원장. 매일 마감마다 적히고, 모든 단말에 입력되고, 본사로 보고되고, 어딘가 더 높은 곳으로 다시 보고되는 숫자. 한 사람의 손이 사흘에 한 번 닿는 죽은 잔액이 사흘에 두 자리 자란다면.

수백 개의 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옮겨 적는 그 숫자는, 얼마나 빨리 자라고 있을 것인가.

살아 있는 장부를 다루려면 단말이 필요했다.

자료실에는 본사가 폐기 직전에 내려보낸 여신 단말 한 대가 있었다. 단종된 기종, 외국제. 나는 자사 단기 외화 차입 자료를 조회하려 그 앞에 앉았다. 그것을 켜는 일은 처음이었다.

전원을 넣자 화면이 한 박자 어둠을 머금었다가, 제작소의 부팅 화면이 떴다. 다섯 달을 자료실에 처박혀 있던 단말이 처음으로 토해 낸 빛이었다. 화면 가운데, 제작소의 인장 아래로 라틴어 한 줄이 떠올랐다 — 부팅이 끝나면 사라질, 아무도 읽지 않는 사훈(社訓).

NUMERUS NON MENTITUR

나는 그 문장을 안다. 읽은 적은 없었으나, 안다.

측량기수의 일지에. 1923년 강원도 탄광의 권양기, 그 독일제 쇠틀에 새겨져 있던 한 줄. 다림줄을 감던 그 기계의 명패에. 칠십 년 전 갱의 깊이를 재던 기계와, 지금 내 앞에서 외화 잔액을 토해 내는 이 단말이, 같은 사훈을 달고 있었다.

놋쇠 받침의 명패에 새겨진 라틴어 한 줄. 나는 다섯 달 동안 그것을 닦기만 했을 뿐 읽어본 적이 없었다.

측량기수도 다섯 달을 닦기만 하고 읽지 않았다. 나도 다섯 달을 처박아 두고 켜지 않았다. 재는 기계는, 제 사훈을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읽힐 무렵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화면 아래 작은 글씨로, 같은 문장의 풀이가 박혀 있었다. 제작소가 친절히 달아 둔 것이었다.

NUMERUS NON MENTITUR —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위안의 말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장부를 다루는 이에게, 숫자만은 너를 속이지 않는다고. 그러나 측량기수의 갱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갱은 잴 때마다 참되게 더 깊어졌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다만, 가만히 있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는 그 숫자가 무엇을 향해 자라는지, 사훈은 말하지 않았다. 측량기수의 기계도 말하지 않았다. 제작소는 풀이를 달면서, 그 한 가지만은 달지 않았다.

부팅이 끝났다. 사훈이 사라지고, 조회 화면이 떴다. 나는 자사 단기 외화 차입금의 계정 번호를 입력했다. 살아 있는 숫자가 — 매일 마감마다, 모든 단말에서, 본사로, 더 높은 곳으로 옮겨 적히는 그 숫자가 — 화면에 떠올랐다.

전임자의 칠월 카드보다 컸다. 오늘 아침 청산 원장이 따라 올라온 그 숫자보다도 컸다. 살아 있는 장부는 빨랐다. 수백 개의 손이 매일 옮겨 적는 만큼.

나는 그 숫자를 색인 카드에 옮기려 펜을 들었다. 그리고 멈췄다. 적으면 자란다. 내가 한 자리를 보태는 셈이 된다. 나는 펜을 들지 않고, 화면의 숫자를 눈으로만 외웠다.

그때 화면 한 귀퉁이의 일자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단말은 조회 일자를 자동으로 박아 주었다. 그 자리에는 오늘 날짜가 있어야 했다. 십일월 일일.

거기 박힌 날짜는 십일월 이일이었다.

나는 단말의 시계를 의심했다. 다섯 달 꺼져 있었으니, 내장 시계가 하루 어긋났을 수 있다. 자료실 벽시계를 보았다. 십일월 일일, 금요일 오후. 손목시계도, 그날의 일보(日報)도 일일이었다. 어긋난 것은 단말의 시계뿐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일렀다.

그러나 단말이 화면에 토해 낸 그 잔액은, 십일월 일일의 마감 숫자가 아니었다. 아직 마감하지 않은, 십일월 이일의 숫자였다. 내일의 장부가, 단말 안에서 이미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