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장부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옮기는 일로 그날도 저물었다. 자료실은 종합금융사 본관의 지하 이층에 있었고, 형광등은 늘 한 칸이 깜박였다. 나는 촬영대 앞에 앉아 누렇게 변한 원장(元帳)의 한 면을 유리판 아래 펴고 셔터를 눌렀다. 필름이 한 컷 감기는 소리가 났다. 다음 면. 셔터. 다음 면. 옮겨 적는 일에는 어떤 위안이 있었다 — 숫자는 제자리에 있고, 한 면을 옮기면 그 면은 영원히 그 자리에 남았으므로.

종합금융사의 자료실 기록 담당은 사라질 것을 사라지지 않게 옮긴다. 결산이 끝난 원장, 만기가 지난 어음, 청산된 계정. 본사는 그것들을 필름 한 통에 담아 창고로 보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숫자를 옮겼다. 1997년 가을이었다. 그 무렵 본사 사람들은 복도에서 낮은 목소리로 외화(外貨)라는 말을 했고 단기(短期)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들을 옮길 일이 없었다. 내 일은 이미 끝난 장부였으므로 — 적어도 그때까지는.
내 앞에는 전임자가 두고 간 책상이 있었다. 그가 누구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인계는 인사부에서 서류 한 장으로 끝났다. 그가 남긴 건 정리되다 만 색인 카드 한 묶음과 촬영대 하나였다. 오래 켜 둔 촬영대는 초점 손잡이가 닳아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출근하지 않았고, 인사부는 그 자리를 사직으로 처리했다. 사직서는 보존되어 있지 않았다.
그날 오후 본관 창고에서 상자 하나가 자료실로 내려왔다. 폐업한 거래처의 자료라고 운반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거래처의 이름은 출판사였다 — '프나코틱 문고(Pnakotic 文庫)'. 종합금융사가 출판사와 무슨 거래가 있었는지 운반표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출판사가 우리 회사에 진 채무가 청산되지 못한 채 폐업했고 담보로 잡힌 자료가 창고에 흘러들었다는 것만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상자는 끈으로 묶여 있었고, 끈의 매듭에는 손이 자주 닿은 결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풀었다. 안에는 네 묶음의 기록이 들어 있었다. 인쇄된 책이 아니라 손으로 쓰인 일지(日誌)들이었다. 하나는 등대수의 것, 하나는 측량기수의 것, 하나는 전신수의 것, 하나는 사서의 것. 각 묶음의 안쪽 표지에는 같은 출판소의 인장이, 마지막 장 아래에는 같은 한 줄이 찍혀 있었다.

나는 그 한 줄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등골을 타고 지하의 냉기가 스쳤다. "시월의 지하가 으레 이렇게 차갑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상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그 한기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상자가 거기 있어서 차가운 게 아니라 — 이미 차가운 자리에 상자가 놓인 것뿐이지, 라고 덧붙였다.
옛 출판사의 재고다. 담보로 잡혀 흘러든, 청산되지 못한 종이 더미. 폐업한 회사의 자료에서 손때 묻은 끈이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 오래 다루었으니 묶였을 것이다. 그뿐이다.전임자의 색인 카드 묶음을 떠올린 것은 그때였다. 정리되다 만 그 카드들. 나는 그것을 꺼내 마지막 장을 보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색인을 적던 자료가 무엇이었는지를. 카드의 분류란에는 익숙한 출판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프나코틱 문고 — 정리 보류. 옮겨 적되, 끝까지 읽지는 말 것.옮겨 적되, 끝까지 읽지는 말 것. 전임자의 손글씨였다. 색인 담당이 자료를 정리하며 '읽지 말라'고 적어 두는 일은 없다. 색인은 읽어야 적힌다. 나는 그 한 줄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으나, 설명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날 마지막으로 본사가 내려보낸 결산 원장 한 권을 필름에 옮겼다. 청산된 계정의 장부였다. 나는 단기 외화 차입금의 잔액이 적힌 면을 유리판 아래 펴고 셔터를 눌렀다. 끝자리까지 또박또박 옮겨 적힌 숫자. 나는 그것을 필름에 담고 색인 카드에 그 잔액을 손으로 옮겨 적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의 기록을 그렇게 적고 자료실의 불을 껐다. 한 칸이 깜박이던 형광등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깜박이고 꺼졌다.
이튿날 아침, 나는 전날 옮긴 그 단기 외화 잔액을 원장과 대조했다. 필름의 컷은 어제 그대로였다. 색인 카드에 손으로 옮긴 숫자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원장의 그 면 — 이미 청산되어 다시 적힐 일이 없는 그 면 — 의 잔액은 끝자리가 한 자리 더 늘어 있었다.
늘어난 끝자리를 나는 세 번 다시 보았다.
전날 옮긴 단기 외화 차입금 잔액. 필름과 카드는 서로 맞았다. 맞지 않는 것은 원장이었다.
나는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결산이 끝난 계정에도 사후 정정은 있으니 누군가 정정 전표를 끊어 잔액을 고쳤겠지. 나는 정정 대장을 펴 그 계정의 번호를 찾았다. 그 면에는 아무 정정도 없었다. 그날도 그 전날도, 그 계정에는 손댄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봤다. 어제의 나는 끝자리를 한 자리 짧게 읽었고, 오늘의 나는 바로 읽었다. 피곤한 눈이 숫자 하나를 흘렸을 뿐이다. 그뿐이다.그뿐이라고 믿기 위해 나는 비교할 다른 기록이 필요했다. 같은 계정을 나보다 먼저 옮긴 사람의 기록이.
정리되다 만 전임자의 색인 카드 묶음을 다시 꺼냈다. 어제는 마지막 장만 보았으나 오늘은 처음부터 넘겼다. 계정마다 카드 한 장, 잔액과 일자, 필름 통의 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차입금의 카드는 묶음 가운데쯤에 있었다.
그가 그 잔액을 옮긴 것은 그해 칠월이었다. 넉 달 전.
칠월에 적어 넣은 그 숫자였다. 오늘 아침 원장의 끝자리가 늘어나 가 닿은, 바로 그 숫자.
나는 카드를 등불에 가까이 댔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넉 달 전 전임자가 손으로 옮긴 숫자가 오늘 아침 청산된 원장에서 제풀에 늘어난 잔액과 끝자리까지 똑같았다. 원장이 불어난 게 아니었다. 원장은 넉 달 전 누군가 이미 적어 둔 숫자를 향해 — 뒤늦게 — 따라 올라왔다.
손끝에 지하의 냉기가 올랐다. 나는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으나, 설명은 도착하지 않았다.
카드의 잔액 칸 아래, 전임자는 작은 글씨로 한 줄을 적어 두었다. 그러나 그 줄은 지워져 있었다. 연필이 아니라 칼끝으로 긁어낸 듯 종이의 결이 일어나 있었다. 나는 카드를 비스듬히 기울여 빛을 비췄다. 긁힌 자국 사이로 눌린 글씨의 윤곽이 떠올랐다.
다음 카드의 숫자. 나는 그 말의 뜻을 헤아렸다. 그는 칠월에, 아직 적지 않은 다음 카드의 숫자를 먼저 적었다. 청산된 원장이 넉 달에 걸쳐 따라 올라온 그 숫자를. 그는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고 — 그래서 지웠다.
마지막 장에 남긴 한 줄이 이제 다르게 읽혔다.
옮겨 적되, 끝까지 읽지는 말 것.나는 그것을 프나코틱 문고의 네 묶음에 대한 당부로 읽었었다. 옛 일지를 끝까지 읽지 말라는. 그러나 그가 옮겨 적던 것은 일지가 아니라 장부였다. 끝까지 읽지 말라던 것은 — 숫자였다. 칸을 채우고 그 아래, 또 그 아래로 이어지는 숫자.
나는 단기 외화 차입금 카드를 다시 보았다. 전임자는 그 잔액을 적고 필름 통의 번호를 적었다. 카드 한쪽 귀퉁이에는 화살표 하나와 함께 다음 카드의 번호를 적어 두었다. 색인을 잇는 그의 버릇이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번호는 묶음의 다음 칸에 있어야 했다.
나는 그 번호의 카드를 찾았다.
없었다.
화살표가 가리킨 다음 카드는 묶음 어디에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카드 한 장이 빠진 만큼의 틈만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빼냈거나 — 적기로 한 카드를 미처 적지 못했거나.
나는 빈자리에 손가락을 대었다. 카드 한 장 두께의 틈은 차가웠다. 옆 카드들보다 분명히.
틈이 비었으니 화살표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러나 전임자의 버릇대로라면 그 다음 카드에도 화살표가 있었겠지. 숫자는 적히기도 전에 다음을 가리키며 카드에서 카드로 이어졌다.
나는 그날 자료실의 불을 끄지 못했다. 빈자리의 다음 카드가 어디 있는지를 나는 이미 짐작했다. 전임자가 마지막으로 필름을 돌리던 그 통 안에. 그가 출근하지 않은 그날, 끝까지 감기지 못한 그 필름 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