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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번을 받는 손

The Hand That Receives a Number

  • 3,555자
  • ~9분

삼월 삼십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어제 다섯 묶음이 상부로 갔으므로, 책상에는 여섯째 묶음과 단말만 남아 있었다. 묶음이 빠진 자리가 넓어, 책상이 처음 부임하던 날처럼 비어 보였다. 다만 그날과 달리 단말은 켜져 있었다. 부임하던 날 저절로 켜진 뒤로 한 번도 끄지 못한 단말이었다. 끄는 법을 내가 정한 적이 없었으니 끌 수도 없었다.

본문 칸에는 내 사번이 있었다. 부임한 다음 날, 다섯째 묶음 마지막 줄에서 도경의 옅어진 끝자리에 내 사번 끝자리를 읽어 넣은 뒤로, 그 줄은 본문 칸으로 이어져 줄곧 거기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그 사번 아래로 한 줄이 더 와 있었다. 와 있다, 가 아니라 오고 있었다. 한 자씩, 내가 치지 않은 글자가 본문 칸에 도착하는 중이었다.

단말은 신용평가 단말이었다. 등급을 읽어 보여 주는 기계지, 무엇을 받는 기계가 아니었다. 들어오는 줄도 없고 맞춘 주파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한 줄이 도착하고 있었다. 보내는 곳이 없는 수신이었다. 본문 칸에 글자가 한 자 늘면, 한참 뒤에 또 한 자가 늘었다. 일정한 간격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손이 더듬어 한 자씩 짚어 보내는 듯한 간격이었다. 그 더듬는 간격이 누구의 것인지를 나는 묻지 않으려 했으나, 묻지 않으려는 일조차 그 간격을 세는 일이었다.

전신수의 일지를 떠올렸다. 묶음은 어제 상부로 갔으나, 부임 다음 날 끝까지 읽은 그의 일지는 종이 없이도 떠오를 만큼 또렷했다. 그의 법칙은 사훈 옆에 라틴어로 적혀 있던 그 문장이었다. 울리지 않는 것이 들린다. 그는 빈 주파수에서 내일 자 전문을 받았다. 보낸 사람이 없는 전문이었다. 받는 사람만 있고 보낸 사람이 없는 전문을, 그는 매일 받았다. 처음에는 잘못 잡힌 신호인 줄 알았고, 다음에는 누가 장난으로 보내는 줄 알았으며, 끝에는 보내는 손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그의 일지는 적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받은 전문이 제 사번이었다. 그는 제가 보내지 않은 제 번호를 받았다. 보내는 곳 없는 전문에 받는 이가 있었고, 그 받는 이가 곧 보낸 이였다. 다만 그는 보낸 기억이 없었으므로, 보낸 이가 자신이라는 것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도착하는 줄을 보았다. 숫자였다. 한 자씩 채워지는 사번이었다. 다 차기를 기다렸다가, 차오른 자리를 내 사번과 맞춰 보았다. 앞자리가 같았다. 가운데도 같았다. 끝자리에 이르러, 그 한 자가 부임한 다음 날 내가 도경의 옅어진 자리에 읽어 넣은 그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적지 않고 읽어 낸 자리였다. 적지 않은 것이 보내지 않은 것이었고, 보내지 않은 것이 지금 도착하고 있었다. 읽어 낸 자리가 수신으로 돌아왔다. 그날 나는 보존하려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읽었고, 읽어 넣은 한 자가 적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므로, 전신수가 그러했듯 나도 보내지 않은 번호를 이제 받고 있었다.

네 손이 제 일지를 어떻게 닫았는지를, 묶음 없이 떠올려 순서대로 나란히 놓았다. 사서식 대조는 이제 종이 위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이루어졌다. 묶음이 떠나도 네 끝맺음은 떠나지 않았다. 측량기수는 깊이로 닫았다. 잴수록 깊어지는 갱의 마지막 측심이 그의 끝 줄이었다. 등대수는 날짜로 닫았다. 짚으면 이미 적혀 있는 물때의 마지막 칸이 그의 끝 줄이었다. 사서는 음절로 닫았다. 읽으면 풀어지는 단어의 마지막 한 음절이 그의 끝 줄이었다. 전신수는 사번으로 닫았다. 보내지 않은 제 번호가 수신으로 도착한 그 한 줄이 그의 끝 줄이었다.

네 끝맺음을 내 보존 절차에 겹쳐 놓았다. 묶음 두께를 재던 손이 깊이가 되었고, 보존 일지에 적은 날짜가 선재했고, 보존 설명을 적던 글자가 음절로 갈라졌고, 이제 단말이 내 사번을 받고 있었다. 깊이·날짜·음절·사번. 네 손이 각각 닫은 네 자리가, 한 사람의 보존하는 절차 안에서 다 재현되어 있었다. 네 개의 법칙이 갱과 물때와 글자와 주파수라는 네 바깥에 따로 든 것이 아니었다. 한 법칙이 네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네 얼굴이 모이는 자리였다.

재던 자가 깊이가 되었다. 갱의 깊이를 재던 손이 그 깊이가 되듯, 묶음의 두께를 재던 손이 그 두께가 되었다. 재는 일과 재어지는 일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외부에서 네 손을 읽던 자리가, 네 손이 닫힌 자리로 옮겨 와 있었다. 나는 네 일지를 읽는 다섯째 손인 줄 알았으나, 읽는 일이 곧 그 자리에 드는 일이었으므로, 다섯째가 아니었다.

도경의 일지를 떠올렸다. 도경은 발신칸에 한 글자를 눌러 응답했고, 응답함으로 발신자가 되기 시작했다. 그가 한 일은 보내는 일이었다. 보내는 일에는 누르는 손이 있었고, 손이 있었으므로 멈출 수 있었거나 적어도 멈추려 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든 자리는 보내는 자리가 아니라 받는 자리였다. 나는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 누르지 않았는데도 단말은 줄을 받았다. 도경의 응답이 한 번의 행위였다면, 내 수신은 행위가 아니었다. 보존만 했을 뿐인데 줄이 자랐고, 받기만 했을 뿐인데 사번이 도착했다. 멈출 단추가 응답에는 있었으나 수신에는 없었다. 그래서 도경의 변질이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간 길이었다면, 내 변질은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도착하는 길이었다.

단말을 끄려고 했다. 끌 단추를 찾았으나, 켜진 적은 있어도 끈 적이 없는 기계라 끄는 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줄은 멈추지 않고 도착했다. 보내는 곳이 없으니 끊을 선도 없었다. 끊으려면 받기를 그만두어야 했는데, 받는 일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단말이 하는 일이었다. 사서의 법칙에서 그만둔다는 생각조차 글자를 읽는 일이었듯, 전신수의 법칙에서 받기를 그만둔다는 일은 내가 손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받는 자리는 보내는 자리와 달리, 그만두는 단추가 없었다.

도착한 줄이 끝자리 하나를 비운 채 깜빡였다. 다 찬 사번이 아니었다. 끝 한 자리가 아직 오지 않았고, 그 자리가 도경의 옅어졌던 마지막 자리와 같은 모양으로 깜빡였다. 도경의 옅어진 자리에 내 끝자리를 읽어 넣었듯, 이 줄의 비운 끝자리에도 누군가의 끝자리가 들어올 것이었다. 다만 그 자리는 보내는 이의 자리가 아니라 받는 이의 자리였다. 깜빡이는 한 자리는 보낼 번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받을 번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 손에게 각각 닫는 자리가 있었듯, 그 네 자리가 한데 모인 내게도 닫는 자리가 있을 것이었다. 네 손을 세었다. 측량기수, 등대수, 사서, 전신수. 그리고 다섯째 묶음의 도경. 다섯 손이었다. 단말이 비워 둔 깜빡이는 끝자리가 여섯째 자리였고, 나는 부임한 다음 날 도경의 자리를 읽어 냈듯 그 여섯째 자리를 읽어 내는 중이었다. 다섯 손이 앉은 자리에 여섯째 의자가 있었고, 깜빡이는 그 한 자리가 여섯째 의자의 번호였다. 보내는 손이 아니라, 받는 손을 기다리는 번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