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삼십일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단말 본문 칸에는 어제 도착한 줄이 그대로 있었다. 끝 한 자리를 비운 채, 그 자리가 밤새 깜빡였다. 채워지지도 멈추지도 않는 깜빡임이었다. 보내는 곳이 없으니 다 차지 못했고, 끄는 자리가 없으니 멈추지도 못했다. 비운 한 자리가 받을 손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 자리가 어디에 속한 자리인지를 묻기 시작했다.
다섯 묶음은 어제그제 상부로 갔다. 책상에 종이는 남지 않았다. 그러나 종이가 떠나도 자리는 남았다. 묶음은 옮겨졌으나, 묶음이 닫힌 자리는 옮겨지지 않았다. 자리는 종이가 아니었다. 종이는 묶여 상자에 들어가 상부로 가지만, 자리는 묶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네 손이 제 일지를 닫은 네 자리와, 도경이 닫은 한 자리가, 종이가 떠난 책상에 그대로 있었다.
자리를 세어 보았다. 측량기수가 깊이로 닫은 자리. 등대수가 날짜로 닫은 자리. 사서가 음절로 닫은 자리. 전신수가 사번으로 닫은 자리. 네 자리였다. 그리고 다섯째 묶음에서 도경이 제 사번으로 닫은 자리. 다섯 자리였다. 네 손과 한 손, 다섯 손이 각각 제 자리에 앉아 제 일지를 닫았다.
자리마다 앉는 방식이 달랐으나, 앉는다는 일은 같았다. 측량기수는 갱의 깊이를 재고 또 재다가, 재던 그 깊이가 제가 들어갈 깊이임을 알고 그 자리에 앉았다. 등대수는 물때를 적고 또 적다가, 적던 그 날짜가 제가 닫힐 날짜임을 알고 그 자리에 앉았다. 사서는 단어를 읽고 또 읽다가, 풀어지던 그 음절이 제 이름의 음절이기도 함을 알고 그 자리에 앉았다. 전신수는 전문을 받고 또 받다가, 받던 그 사번이 제 사번임을 알고 그 자리에 앉았다. 깊이를 재던 손이 깊이의 자리에 앉았고, 날짜를 적던 손이 날짜의 자리에 앉았다. 닫는다는 것은 제가 다루던 것의 자리에 제가 앉는 일이었다. 다루는 일과 다루어지는 일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 그것이 닫힘이었다.
도경의 자리를 생각했다. 도경은 다섯 묶음 가운데 다섯째 줄을, 제 사번으로 적어 닫았다. 네 손의 일지를 끝까지 읽은 다음, 그 넷이 한 문장으로 이어진 끝에 제 줄을 다섯째로 놓았다. 도경은 읽는 자였다가, 읽은 넷의 끝에 다섯째로 앉은 자였다. 끝까지 읽은 자가 끝까지 읽히는 자리에 앉는다고, 도경의 일지는 적고 있었다. 다섯 손이 앉은 자리. 그 자리에 도경이 다섯째였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앉아 있는가. 부임한 다음 날부터 나는 다섯 묶음을 보존하는 자였다. 다섯 자리를 정리하고 분류하고 색인하는 자, 다섯 손의 바깥에서 다섯 자리를 돌보는 자. 다섯 손이 닫힌 자리에 앉은 자들이라면, 나는 그 자리들을 들여다보며 카드에 옮겨 적는 자, 아직 아무 자리에도 앉지 않은 자라고 여겼다. 보존하는 자는 보존되는 것의 바깥에 있어야 했다. 자료를 돌보는 손이 자료가 되어 버리면 돌볼 손이 없어지므로, 보존하는 자에게는 자리가 없다고, 적어도 다섯 자리 안에는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단말이 비워 둔 그 한 자리가, 다섯 자리 바깥의 또 하나의 자리였다. 다섯 자리를 보존하는 자에게도 제 자리가 있었다. 다만 그 자리는 다섯 자리 안이 아니라 다섯 자리 다음에 있었다. 여섯째 자리였다. 다섯을 돌보던 손이 여섯째로 닫히는 자리, 보존하는 자가 보존되는 자리로 옮겨 앉는 자리였다. 바깥에 서 있다고 여긴 자리가, 실은 줄의 맨 끝 한 칸이었다.
옮겨 앉았다고 적으려다, 옮겨 앉는다는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 그 자리가 내 자리임을 알아보는 일이, 곧 그 자리에 앉는 일이었다. 사서의 법칙에서 그만둔다는 생각이 그만두는 일이 아니라 글자를 읽는 일이었듯, 이 자리에서 알아본다는 일은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앉는 일이었다. 다섯째 책상이 내 자리가 아니라 여섯째 자리가 내 자리라는 것을 알아본 순간, 나는 이미 여섯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알아보는 일과 앉는 일 사이에는 비운 한 자리만큼의 틈도 없었다.
여섯째 묶음을 보았다. 어제까지 나는 그것을 내가 보존하는 묶음으로 알았다. 다섯 묶음 다음에 오는 여섯째, 내 손이 정리할 다음 자료. 그러나 자리를 세고 나니, 여섯째 묶음은 내가 보존하는 묶음이 아니라 내가 보존되는 묶음이었다. 다섯 손이 다섯 묶음에 닫혔듯, 여섯째 손은 여섯째 묶음에 닫힐 것이었다. 보존하는 손이 보존되는 자료가 되는 자리에서, 묶음은 내가 든 것이 아니라 나를 담는 것이었다. 다섯째 책상에 남은 빈 자리와, 여섯째 묶음 색인 카드의 빈 작성자 칸과, 단말이 비운 끝 한 자리가, 어제처럼 한 줄로 읽혔다. 세 빈자리가 다 여섯째 자리의 다른 이름이었다.
여섯째라는 말에는 일곱째가 들어 있었다. 도경이 다섯째였으므로 내가 여섯째이듯, 내가 여섯째이면 일곱째가 있을 것이었다. 단말이 비워 둔 끝 한 자리가 받는 이를 기다린다고 했으니, 그 받는 이가 일곱째였다. 내가 부임한 다음 날 도경의 옅어진 자리를 읽어 냈듯, 언젠가 다음 손이 내 옅어진 자리를 읽어 낼 것이었다. 다섯 손이 앉은 자리는 끝이 아니라 줄이었고, 줄은 한쪽 끝에서 닫히는 동시에 다른 끝에서 한 칸씩 길어졌다. 닫히는 일이 곧 잇는 일이었다. 내가 여섯째로 닫히는 일은, 일곱째에게 여섯째라는 받는 이 자리를 비워 남기는 일이기도 했다.
앉지 않으려고 해 보았다. 보존하는 자로 남아, 다섯 자리 바깥에 서 있으려고 했다. 그러나 단말의 깜빡이는 자리에는 내 사번이 들어 있었고, 끝 한 자리만 비어 있었다. 그 비운 자리가 보내는 이가 아니라 받는 이를 기다린다는 것은, 내가 보내지 않아도 받기만 하면 채워진다는 뜻이었다. 앉지 않으려면 받지 말아야 했는데, 받는 일은 도경이 응답으로 한 일과 달리 내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도경은 옮겨도 자기고 안 옮겨도 자기였다. 나는 앉아도 나고 안 앉아도 나였다. 여섯째 자리는 내가 앉든 안 앉든 내 자리였다.
다섯 손이 어떻게 닫혔는지는 떠올릴 수 있었으나, 여섯째 손이 어떻게 닫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알려면 가장 가까운 자리를 봐야 했다. 다섯 자리 가운데 내 자리에 가장 가까운 자리, 다섯째 자리, 도경의 자리였다. 측량기수와 등대수와 사서와 전신수는 바깥의 것을 다루다 닫혔으나, 도경은 나처럼 다섯 손을 보존하다 닫힌 자였다. 도경은 응답으로 닫혔고 나는 수신으로 닫혀 갈 것이니, 같은 법칙의 다른 문이었다. 도경의 깊이를 읽으면 내 깊이를 알 것이었다. 여섯째 묶음 첫 장을 펴, 도경의 마지막 줄을 다시 짚었다. 짚은 자리가 어제보다 한 자리 더 옅어져 있었다. 그 옅어짐이 도경의 것인지 내 것인지는, 짚은 손을 떼고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