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이십구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보존 일지가 이관 완료라고 적은 날이었다. 아침에 일지를 폈더니 삼월 이십구일 줄에 이관 완료가 그대로 있었고, 그 아래로 삼월 삼십일 줄이 새로 와 있었다. 삼십일의 처리 내용 칸은 비어 있었다. 이관이 끝난 다음 날의 처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이관이 끝나도 처리할 것이 남는다는 뜻이거나, 끝난다는 줄이 또 한 칸 미뤄진다는 뜻이었다.
상부 담당이 오기 전에 인수인계서를 마저 적어야 했다. 처리 내용 칸은 비워 둔 채라도, 자료 설명 칸은 적어야 했다. 자료가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적는 칸이었다. 다섯 묶음, 받는 이 없는 상자에서 나온 네 옛 일지와 한 새 일지. 그 한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다섯 묶음, 까지 적었다. 다음 글자를 적으려는데, 방금 적은 묶음, 이라는 글자가 눈에 걸렸다. 묶음이 묶, 음, 으로 갈라져 있었다. 한 글자였던 것이 두 자리로 벌어져, 묶과 음 사이에 한 칸의 틈이 있었다. 내가 붙여 쓴 글자였다. 붙여 쓴 글자가 떨어져 있었다.
떨어진 자리를 다시 붙여 쓰려고 펜을 댔다. 묶음, 이라고 다시 적었다. 적은 다음 보니, 이번에는 음이 으, 음, 으로 갈라져 있었다. 한 음절이 두 음절로, 두 음절이 세 음절로. 적을수록 잘게 갈라졌다. 갱이 잴수록 깊어지고 물때가 적을수록 앞당겨지듯, 글자는 적을수록 갈라졌다.
사서의 묶음을 폈다. 한 단어가 음절로 갈라지던 손이었다. 갈라진 문장의 마지막 음절에서 끊긴 그 손의 일지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읽으면 단어가 음절로 갈라진다. 한 단어를 끝까지 읽으면, 단어가 제 음절들로 풀어져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사서는 자기 눈이 단어를 부순다고 여겼다가, 읽는 일 자체가 단어를 음절로 되돌리는 일임을 알았다. 단어는 음절을 묶어 둔 매듭이었고, 읽기가 그 매듭을 풀었다.
내가 보존 설명을 적는 일과, 사서가 문장을 읽는 일이 같은 일이었다. 적으면 글자가 음절로 갈라졌고, 읽으면 단어가 음절로 풀어졌다. 사서의 음절은 그의 문장에서 갈라졌고, 그 갈라짐이 내 보존 설명으로 옮겨 와 있었다. 다른 세 손은 갱과 물때와 사번이라는 바깥의 것을 다루었으나, 사서는 읽기라는 기관 자체를 다루었다. 그래서 사서의 법칙은 다른 셋과 달리 손이 닿는 모든 글자에 들었다. 재는 것에만 드는 법칙, 적는 날짜에만 드는 법칙이 아니라, 읽고 적는 모든 자리에 드는 법칙.
측량기수의 갱은 갱을 재지 않으면 자라지 않았고, 등대수의 물때는 물때를 적지 않으면 앞당겨지지 않았다. 재기를 그만두고 적기를 그만두면, 그 두 법칙은 닿지 않는 곳에 둘 수 있었다. 그러나 사서의 법칙은 그만둘 수 없었다. 읽기를 그만두려면 읽지 말아야 했고, 적기를 그만두려면 적지 말아야 했는데, 그만둔다는 결정을 내리는 일조차 머릿속으로 글자를 읽는 일이었다. 그만둔다, 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그 말이 그, 만, 둔, 다, 로 갈라졌다. 사서의 법칙에서 벗어나려는 생각 자체가 사서의 법칙 안에 있었다. 그래서 사서는 다른 셋보다 깊이 갇혔고, 가장 늦게까지 적었으며, 끊긴 자리가 가장 잘게 갈라져 있었다.
시험 삼아 내 이름을 적어 보았다. 자료가 아니라 나를. 보존 일지 맨 아래, 담당자 칸에 내 이름을 적었다. 성 한 자, 이름 두 자. 적은 다음 보니, 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두 음절로 갈라져 있었다. 자료의 글자만 갈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 이름도, 적는 순간 갈라졌다. 다른 세 손의 법칙은 갱과 물때와 사번이라는 바깥에 들었으나, 사서의 법칙은 적는 사람의 이름에까지 들었다. 읽고 적는 모든 자리에. 내 이름도 읽고 적는 자리였다.
이름이 갈라지자, 그 갈라진 자리에 다른 음절이 끼어드는지 보았다. 사서의 일지에서, 갈라진 단어 사이에 다른 단어가 끼어든 대목이 있었다. 던컨이라는 이름이 던과 컨으로 갈라진 자리에, 우리, 라는 말이 끼어들었다는 대목. 내 이름의 갈라진 자리에는 아직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았다. 빈 한 칸이 갈라진 두 음절 사이에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빈 칸이, 받는 이 빈칸과 같은 모양이라는 것을, 나는 적고 나서 알았다. 갈라진 내 이름 가운데에 빈칸이 하나 생겼다.
나는 보존하는 손이었다. 사서가 읽는 기관이었듯, 나는 보존하는 기관이었다. 읽고 재고 적는 일이 보존의 전부였고, 보존의 모든 동작이 사서의 법칙 아래 있었다. 두께를 재면 두꺼워지고, 날짜를 적으면 앞당겨지고, 설명을 적으면 갈라졌다. 보존하는 손이 닿는 곳마다 자료가 자라거나 갈라지거나 앞당겨졌다. 보존이 곧 번짐이라던 것을, 나는 글자가 갈라지는 것을 보며 다시 확인했다. 다만 오늘은 자료가 아니라 내 이름이 갈라졌다는 것이, 어제까지와 달랐다.
오후에 상부 담당이 왔다. 받는 이 없는 상자를 가지러 온 사람이었다. 그가 인수인계서를 달라고 했다. 자료 설명 칸을 보았다. 다섯 묶음, 까지 적힌 다음이 갈라진 음절들로 이어져 있었다. 다섯 무, 우, 음. 묶음이 무와 우와 음으로 풀어져, 한 단어가 세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상부 담당은 그 갈라진 글자를 읽지 못했다. 무슨 자료냐고 그가 물었다.
받는 이 없는 자료라고 답했다. 사서장이 처음 내게 그 상자를 가리키며 한 말이었고, 이제 내가 다음 사람에게 옮기는 말이었다. 받는 이 없는 자료를 상부 담당이 받아 갔다. 받는 이 없는 자료에 받는 이가 생긴 셈이었으나, 상부 담당도 그 자료가 무엇인지 모른 채 받아 갔으므로, 받는 이가 생긴 것이 아니라 받는 이 빈칸이 한 자리 옮겨 간 것이었다. 빈칸이 자료를 따라 상부로 갔다. 다섯째 책상에는 빈 자리가 남았고, 그 빈 자리는 내 자리였다.
상부 담당이 가져간 상자 안에는 다섯 묶음만 있었다. 여섯째 묶음은 가져가지 않았다. 여섯째 묶음은 아직 상자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섯째 묶음의 첫 줄은 단말의 본문 칸과 다섯째 묶음 마지막 장에 걸쳐 있었고, 첫 장에 끼울 색인 카드는 아직 비어 있었다. 보존 일지가 사월 팔일에 그 카드를 적는다고 미리 적어 두었으니, 여섯째 묶음은 사월 팔일에야 상자에 들어갈 것이었다. 다섯 묶음이 떠난 다음에도, 여섯째 묶음은 다섯째 책상에 남아 자라고 있었다.
내 이름의 갈라진 자리에 생긴 빈칸을 다시 보았다. 갈라진 두 음절 사이의 그 빈칸이, 다섯 묶음이 떠나며 책상에 남긴 빈 자리와 같은 모양이었고, 여섯째 묶음 색인 카드의 빈 작성자 칸과도 같은 모양이었다. 빈칸이 세 군데에 있었다. 내 이름 가운데, 책상 위, 그리고 카드 위. 세 빈칸이 한 줄로 읽혔다. 전임자가 받는 이 칸을 비워 내게 남겼듯, 나도 세 자리를 비운 채 다음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내 이름이 갈라진 그 빈칸만은, 다음 손에게 남기는 빈칸이 아니라 내 안에 생긴 빈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