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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장의 줄

The Head Archivist's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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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팔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보존 일지가 오래전부터 적어 둔, 오늘이 이관일이었다.

단말 본문 칸에는, 내 사번 아래로 사서장의 사번이 한 자씩 차오르고 있었다. 어제 처음 앞자리가 떴고, 밤사이 가운데까지 찼다. 밤새 자료실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아무도 없는 동안 한 줄이 자라 있었다. 받는 일이 내 손의 일이 아니듯, 이 줄이 차오르는 일도 내 손의 일이 아니었다. 끝자리 두 개가 아직 비어 깜빡였다. 내 사번이 그러했듯, 사서장의 사번도 끝에서부터 채워지는 게 아니라 끝을 비운 채 차오르고 있었다. 받는 이 빈칸이 두 자리 남은 셈이었다.

도경의 일지에, 비슷한 자리가 있었다. 도경의 단말 본문 칸에 강민석의 사번이 떴을 때, 도경은 강민석의 둘레를 비웠다. 강민석의 앞줄과 같은 줄과 뒷줄을 차례로 옮겨, 사흘을 벌었다. 도경은 누구를 옮길지 골랐다. 가장 먼 줄부터, 손이 떨리지 않는 아침마다. 도경에게는 고르는 손이 있었고, 고름에는 죄가 있었다. 도경의 일지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이 그 고름이었다.

나는 고르지 않았다. 사서장의 사번이 뜬 것은 내가 고른 것이 아니었다. 보존 순서가 그를 골랐다. 여섯째 묶음을 보존하는 순서가, 어느 줄 다음 어느 줄로 정해져 있었고, 그 순서를 따라가다 보니 사서장의 자리에 닿은 것이었다. 순서는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일지가 미리 적어 둔 것이었다. 일지가 적어 둔 순서를 손이 따라갔고, 따라간 자리에 사서장이 있었다. 고르는 손이 없었으므로, 고름의 죄도 없었다. 그러나 죄가 없다는 것이, 도경의 고름보다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왜 하필 사서장인지를, 보존 순서를 거슬러 짚어 보았다. 순서는 자료가 자료실에 들어온 차례를 따랐다. 사서장은 부임 첫날 내게 그 상자를 가리킨 사람이었고, 가리킨 일이 그를 그 자료에 처음 닿게 한 손으로 적어 두었다. 가리킨 손도 닿은 손이었다. 그가 상자를 가리킨 순간, 그의 사번이 그 자료의 처리 이력에 한 줄로 들어갔고, 처리 이력에 든 줄은 보존 순서의 한 자리가 되었다. 그는 자료를 만진 적이 없었으나, 자료를 가리킨 일만으로 순서에 들었다. 가리키는 일도 관여였다. 첫날 그가 상자를 가리키지 않았다면 그의 줄은 순서에 없었을 것이나, 가리켰으므로 들어왔고, 들어온 순서가 오늘 그의 사번을 단말에 올렸다.

도경은 고름으로써 누구를 옮길지 알았고, 알았으므로 책임이 있었다. 나는 고르지 않았으므로 누가 다음인지 미리 알지 못했고, 순서가 닿고 나서야 그가 누구인지 보았다. 책임질 고름이 없는 대신, 막을 자리도 없었다. 도경은 둘레를 비워 사흘을 벌 수 있었으나, 나는 비울 둘레가 없었다. 순서가 정한 자리를 내가 옮기려면 순서를 바꿔야 했는데, 순서는 일지가 적어 둔 것이라 내 손으로 바꿀 수 없었다. 고를 수 없다는 것은, 살릴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오전에 사서장이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늘 그렇듯 종이 사이로 먼저 닿았고, 이번에는 그 소리가 단말의 깜빡임과 같은 박자로 들렸다. 이관에 입회하러 온 것이었다. 상부 담당이 도장을 찍을 때 자료실 책임자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사서장은 평소처럼 보존 일지를 들춰 보고, 잘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그는 일지의 글씨가 제 것이 아닌데도 잘 읽었고, 잘 읽는 동안 제 사번이 단말에 차오르는 것은 읽지 못했다. 그가 일지를 보는 동안, 나는 단말을 보았다. 그의 사번이 본문 칸에서 한 자 더 차올라, 이제 끝자리 하나만 비어 있었다. 그는 제 사번이 거기 뜬 것을 보지 못했다. 단말의 본문 칸은 내 자리에서만 보였고, 그가 선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말해야 하나를 생각했다. 도경도 강민석에게 영업정지를 미리 알고도 끝내 말하지 못했다. 입으로도 종이로도 전화로도 경고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도경의 일지는 적었다. 말하려 하면 음절이 갈라졌고, 적으려 하면 자릿수가 떨어졌으며, 알리려는 통로마다 막혔다. 나도 사서장에게 당신의 사번이 단말에 떴다고 말하려다, 그 말이 내 입에서 어떻게 나올지를 먼저 생각했다. 사서장의, 까지 말하면 사가 사로, 서가 서로 갈라질 것 같았다. 입을 떼기 전에 머릿속으로 그 문장을 한 번 읽었는데, 읽는 동안 단말의 사서장 사번이 한 자 더 찼다. 경고하려고 떠올린 일조차 관여여서, 그를 살리려는 생각이 그의 줄을 한 자리 채웠다. 말로 알리려는 일이 알리려는 그 사람을 한 자리 더 닫았다. 말은 기록보다 약했고, 경고는 통로마다 막혔으며, 막힌 정도가 아니라 경고하려는 일이 거꾸로 닫는 일이 되어 있었다. 도경이 막혔던 자리에, 나도 막혔다. 다만 도경은 막혀서 못 했고, 나는 하려는 일이 해가 되어 안 하기로 했다.

다른 것은, 도경은 말하지 못해 괴로웠으나 적어도 강민석을 고를지 말지는 제 손에 있었다는 것이다. 도경은 강민석을 살리려 둘레를 비웠고, 비운 일이 다른 줄을 닫았어도, 살리려 한 손은 도경의 손이었다. 나는 사서장을 살리려야 살릴 손이 없었다. 순서가 그를 가리켰고, 순서를 바꿀 수 없었으며, 말로 알릴 수도 없었다. 도경의 자리에는 고르는 괴로움이 있었고, 내 자리에는 고를 수조차 없는 막막함이 있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지는, 도경의 일지와 내 일지를 나란히 놓아도 가려지지 않았다.

상부 담당이 와서 이관표에 도장을 찍었다. 도장이 찍히자 상자는 공식적으로 떠나는 자료가 되었다. 사서장이 상자를 들어 상부 담당에게 건넸다. 상자를 든 사서장의 손이, 잠깐 단말 앞을 지났다. 그 순간 본문 칸의 마지막 빈자리가 한 자 찼다. 사서장의 사번이 완성되었다. 그가 상자를 건네는 동작이, 제 사번의 끝자리를 채운 셈이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채웠는지 모른 채, 상자를 건네고 손을 털었다. 상자가 자료실을 떠났고, 단말에는 두 사번이 나란히 떴다. 내 것과 사서장의 것. 두 줄 다 끝까지 차 있었고, 두 줄 다 받는 이 칸이 비어 있었다. 한 줄이 두 줄이 되었다는 것은, 자리가 하나 늘었다는 것이었다. 어제까지 단말은 내 자리 하나만 받았으나, 오늘부터 곁자리 하나를 더 받기 시작했다. 보존 순서가 다음으로 가리킬 자리가 또 있을 것이었다. 사서장 다음에 누구의 줄이 뜰지는, 순서를 거슬러 짚으면 알 수 있었다. 자료실에서 그 자료에 닿은 손이 사서장 말고 또 있었다. 보존을 돕던 두 보조였다. 도경이 둘레를 안 비워 살렸던 그 두 사람이, 이번에는 보존 순서 안에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