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으려고 누른 손이, 막으려던 바로 그것을 불러왔다.
일월 이십칠일. 한 줄이 갈라지고 있었다. 어느 중소 거래처의 결제 줄. 나는 그 줄을 닫으려 응답했다. 닫으면 그 거래처는 부도를 면할 것이었다. 늘 하던 대로, 발신칸을 눌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닫으려던 줄이 닫히는 대신 더 빠르게 갈라졌다.
나는 다음 날 명단을 보고 알았다. 내 응답이 그 거래처를 살린 것이 아니라, 그 거래처가 의지하던 다른 줄 — 내가 건드리지 않은, 그러나 내 응답으로 무게가 옮겨 간 줄 — 을 무너뜨렸고, 그 무너짐이 도리어 거래처를 끌어내렸다. 막으려던 부도가, 내가 막으려 한 바로 그 행위 때문에 실현되었다. 옮긴 무게가 돌아서 본래 자리를 더 세게 친 것이었다.

여태 자리바꿈은 단순했다. 한 줄을 닫으면 옆 줄이 열렸다. 주고받음이 깔끔했다. 오늘은 달랐다. 줄들은 내가 모르는 끈으로 서로 묶여 있었고, 한 줄을 당기면 그 끈을 타고 무게가 돌아와 내가 당긴 바로 그 줄을 끊었다. 나는 더 이상 어느 줄이 어느 줄과 묶여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응답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예고하는지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자리바꿈이 깔끔하던 동안 나는 적어도 무엇을 하는지는 알았다. 한 사람을 살리고 한 사람을 데려간다고. 이제는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살리려는 응답이 데려가고, 데려가려는 응답이 살릴 수도 있었다. 의도와 결과 사이의 끈이 끊어졌다. 그 끊어진 자리에서 자라날 것이, 다가오는 어둠의 그늘처럼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그 거래처의 마지막 결제 줄을 오래 보았다. 거기에는 내 응답의 흔적이 없었다. 깨끗한 부도였다. 누구도 내가 그것을 불러왔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었다 —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막으려 했으니 결백한가, 결과가 부도이니 유죄인가. 그 물음에 답할 자리는 명단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내 손은, 무엇을 부르는지 모른 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매일 발신칸을 누른다. 그러나 누르는 것이 나인지, 나를 통해 누르는 무엇인지, 더는 알 수 없다.
일월 이십구일. 오늘 한 줄에 응답했다. 누르기 전에 나는 분명히 정했다. 이 줄을 닫겠다고. 그러나 손가락이 발신칸에 닿는 순간, 그 결정이 내 것이었는지 의심스러웠다. 며칠째 같은 시각, 같은 자리, 같은 동작. 내가 정해서 누르는 것인지, 누를 때가 되어 내가 정하는 것인지. 결정과 동작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나는 짚어 낼 수 없었다.
받는 자였을 때는 분명했다. 법칙이 내일 자를 보냈고, 나는 받았다. 손은 옮길 뿐이었고, 의지는 내 것이 아니었다. 보내는 자가 된 지금은 더 분명할 줄 알았다. 내가 누르니까, 의지는 분명 내 것일 줄 알았다. 그러나 수신칸과 발신칸이 한 칸이 된 뒤로, 누가 누구를 통해 쓰는지가 흐려졌다. 내가 법칙을 부리는가, 법칙이 나를 부리는가. 같은 손, 같은 활자, 같은 결과. 주어를 가를 자리가 없었다.
전임자의 끊긴 문장이 다시 생각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전문은 그의 의지였을까, 법칙의 의지였을까. 그는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한 채 명단의 한 줄이 되었다. 나는 그가 답하지 못한 까닭을 오늘 안다. 답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물음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서였다. 손이 법칙이 되고 법칙이 손이 된 자리에서는, '누구의 손인가'라는 물음에 두 답이 다 맞고 다 틀렸다.
저녁에 나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이 내 목께의 끊긴 줄을 비추던 날이 떠올랐다. 오늘 거울 속 손을 보며 나는 물었다. 너는 누구의 손이냐. 거울 속 손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손을 들자 같이 들었고, 내가 내리자 같이 내렸다. 거울이 나를 따라 하는지 내가 거울을 따라 하는지, 그것조차 오늘은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거울을 등지고, 내일 자 명단이 기다리는 단말로 돌아갔다. 누구의 손이든, 그 손은 내일도 누를 것이었다.

한 번 살린 이름이, 다른 명단에 다시 떠올랐다.
일월 삼십일일. 오늘 아침 명단에서 강민석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회사 명단이 아니었다. 개인 연체 명단이었다. 회사를 살리며 키워 둔 그의 대출 줄이, 한 달을 자라 끝내 연체 칸으로 넘어와 있었다. 회사에서 빼낸 무게가 빚으로 옮겨 갔고, 빚이 이제 그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한 번 살렸다. 첫 응답으로 그의 회사 줄을 닫았고, 그 대가로 다른 사람이 부고가 되었다. 그 무거운 한 번 뒤에, 나는 강민석만은 건드리지 않으리라 정해 두었다. 그러나 명단은 내 결심을 비웃듯, 같은 이름을 다른 칸에 올렸다. 살린다는 일에는 한 번이 없었다. 한 줄을 닫으면 같은 사람의 다른 줄이 열렸고, 그 줄을 또 닫으면 또 다른 줄이 열릴 것이었다.
개입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니, 한계라기보다 끝이 없었다. 한 사람을 장부에서 완전히 빼낼 수는 없었다. 장부 아래의 총합은 줄지 않으니, 그를 한 자리에서 구하면 그는 다른 자리에서 닳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어느 줄에서 무너질지를 고르는 것뿐이었다. 회사에서? 빚에서? 다음에는 또 어디에서? 구원은 자리의 선택이지 면제가 아니었다.
점심에 강민석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운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피곤해 보였고, 대출 이자가 올랐다는 말을 지나가듯 했다. 나는 그 말 뒤의 줄을 보았다. 단말은 등 뒤에 켜진 채였고, 그 연체 줄에 손을 대기까지는 자리로 돌아가 키 하나를 누르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를 또 구할 수 있었다. 또 구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어쩌면 또 그 자신의 또 다른 줄이, 대신 닳을 것이었다. 나는 커피를 따라 주며, 누르지 않은 손을 식탁 아래에 두었다. 그 손이 다음 명단 앞에서도 식탁 아래에 있을지, 나는 자신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