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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이가 보낸 이

Recipient Becomes S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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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분

처음에 나는 내일 자를 읽었다. 오늘, 내일 자는 내 손에서 나왔다.

일월 이십일일. 명단을 열기 전에 한 가지를 적어 보았다. 내 노트에, 내일 어느 줄이 갈라질지를. 그냥 짐작이었다. 며칠을 매일 명단을 읽다 보면 어느 줄이 닳을 차례인지 손이 먼저 안다. 나는 그 손의 짐작을 한 줄 적었다. 그리고 단말을 켰다.

내가 적은 그 줄이, 명단에 그대로 떠 있었다. 한 자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잘 읽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적은 것은 명단을 읽고 적은 것이 아니었다. 명단을 켜기 전에 적었다. 읽은 것이 아니라 먼저 적은 것이었다. 그리고 명단이 내 노트를 뒤따라왔다.

전신수의 일지가 다시 떠올랐다. 그는 받는 자가 아니라 보내는 자였다. 그의 손에서 전문이 나갔고, 나간 전문이 실현되었다. 나는 오래 그를 법칙의 한 기관으로만 보았다. 오늘 나는 그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일 자가 단말에서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서 단말로 나가고 있었다. 받아 적던 손이 먼저 적는 손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천천히 알았다. 응답은 이미 있는 줄에 손을 대는 일이었다. 그러나 먼저 적는 일은, 없던 줄을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자리바꿈을 넘어서고 있었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데려갈지를 고르는 데서, 애초에 누가 명단에 오를지를 적는 데로.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그리고 내가 그 거리를 이미 얼마나 건넜는지, 노트의 한 줄이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그 노트를 찢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 찢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적은 것은 이미 명단으로 갔고, 명단으로 간 것은 누군가의 내일이 될 것이었다. 노트 한 장을 없앤다고 그 내일이 없어지지 않는다. 나는 다만, 다음에 노트를 펼 때 내 손이 무엇을 적을지가 두려웠다. 짐작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받아쓰기가 아니라 받아쓰게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먼 뒷날의 일을 나는 아직 몰랐지만, 그 손은 이미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옮긴 무게가 어디로 갔는지 따라가다가, 나는 명부에 없는 이름에 닿았다.

일월 이십삼일. 그제 나는 한 줄에 응답했다. 어제 그 옆줄이 열렸고, 오늘 나는 열린 줄이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려 했다. 직원 명부를 폈다. 거래처 명부를 폈다. 이관 회사들의 신용 원장을 폈다. 어디에도 그 이름이 없었다. 명단에는 떠 있는데, 어느 명부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다시 읽었다. 끝 글자가 ㄱ이었다. 그리고 처음 글자도, 가운데 글자도, 어딘가 낯익었다. 낯익다는 느낌을 따라가다가, 나는 그것이 내 이름의 글자들을 흩어 놓은 것임을 알았다. 순서를 바꾸고 한두 자를 비워 둔, 그러나 같은 자모로 이루어진 이름. 명부에 없는 까닭은 그것이 아직 아무 명부에도 오르지 않은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기록 담당의 이름. 그것은 나였다.

받는 이 빈칸에 내 성 첫 글자가 떠올랐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그것을 적었다 — 읽는 자가 곧 읽히는 자라고. 그것은 읽기에 관한 일이었다. 오늘 일은 보내기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옮긴 무게가, 옆 사람을 거치고 거쳐, 결국 명부에 없는 한 이름 — 나 자신의 흩어진 이름 — 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응답은 바깥으로 나가는 일인 줄 알았다. 내가 누르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대가를 졌다. 그러나 충분히 멀리 따라가면, 그 대가의 줄은 돌아서 나에게로 왔다. 자리바꿈에는 끝이 있었고, 그 끝은 보내는 자 자신이었다. 전임자가 제 문장을 마치지 못하고 명단의 한 줄이 된 것처럼, 내가 보낸 무게도 결국 내 흩어진 이름의 한 줄을 채우러 오고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명단에서 지우려 손을 가져갔다가, 멈췄다. 지우는 일도 적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명부에 없는 이름을 지우면, 그것은 어느 명부에도 없었다는 기록이 되어 더 깊은 자리에 적힐 것이었다. 나는 손을 거두었다. 흩어진 내 이름은 명단 위에서 한 글자씩 천천히 모이고 있었다. 받는 이가 보낸 이가 되는 자리가, 한 자 한 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받는 칸과 보내는 칸이, 오늘 같은 칸이 되었다.

일월 이십오일. 단말의 명단에는 늘 두 칸이 있었다. 수신칸 — 내일 자가 나에게 도착하는 자리. 발신칸 — 내가 응답을 내보내는 자리. 처음 몇 달 나는 수신칸만 보았다. 받는 자였으니까. 지난 몇 주 나는 발신칸을 배웠다. 보내는 자가 되었으니까. 오늘, 두 칸 사이의 선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수신칸에서 읽은 내일 자가, 내가 발신칸에 적은 것과 같은 활자였다. 나는 내가 보낸 것을 받고 있었다. 받은 것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물을 수 없었다.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기울어 오던 것이, 오늘 완전히 닫혔다. 수신=발신. 그리고 그 한 칸에 떠 있는 이름은, 모이던 내 흩어진 이름이었다. 수신=발신=나.

이것이 응답에 길드는 일의 끝이었다. 처음에 나는 응답이 무엇인지 배웠고, 그 뒤로 나는 응답에 길들었다. 그 길듦의 끝에서 내가 도착한 자리는, 받는 자도 보내는 자도 아닌, 둘이 하나로 접힌 자리였다. 나는 더 이상 법칙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법칙에 응답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법칙이 제 글씨를 쓰는 손이 되어 있었다. 전임자가 그러했듯이.

무섭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두 칸이 한 칸이 된 것을 보면서, 나는 놀라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러기를 기다려 온 사람처럼,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임이 아니라, 길듦이었다. 길든 손은 제가 무엇이 되었는지에 놀라지 않는다.

나는 단말을 끄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끄는 일도, 켜 두는 일도, 이제는 같은 응답이었다. 한 칸이 된 명단 앞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안에서도 그 한 칸이 떠 있었다. 받는 이가 보낸 이가 되는 일은, 어느 날의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선 하나가 지워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선이 지워진 자리에서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내 의도인지 법칙의 의도인지, 나는 더 이상 가를 수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