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강민석의 연체 줄에 응답했다. 그를 살리려는 그 손이, 그를 데려가는 손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월 이일. 그의 연체 줄이 위험 칸으로 넘어가던 날, 나는 견디지 못하고 발신칸을 눌렀다. 빚을 닫았다. 다음 날 그의 연체는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다음을 안다. 닫힌 만큼 어딘가가 열린다. 나는 명단을 뒤져 그 열린 자리를 찾았다. 찾지 말았어야 했다.
열린 자리는, 강민석의 또 다른 줄이었다. 빚을 닫자 이번에는 그의 건강 보험 줄이 갈라졌다. 같은 사람의 세 번째 줄. 회사에서 빼낸 무게가 빚으로, 빚에서 빼낸 무게가 몸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살릴 때마다 그를 한 칸씩 더 깊은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회사는 잃어도 살고, 빚은 져도 살지만, 몸은—

그날 나는 처음으로 똑똑히 보았다. 살리려는 손과 데려가는 손은 비유가 아니었다. 같은 한 번의 누름이 두 가지를 동시에 했다. 강민석을 한 위험에서 빼내는 일과, 그를 더 깊은 위험에 넣는 일이. 나는 그를 사랑해서 눌렀고, 그 누름이 그를 망치고 있었다. 딜레마라는 말로는 모자랐다. 딜레마는 두 길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한 길이 두 결과였다.
나는 그 건강 보험 줄을 보며, 누르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는 다른 이유였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누를수록 그가 더 깊어진다는 것을 알아서. 그러나 누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나는 알았다. 누군가 대신 누를 것이고, 대신 누른 손은 강민석을 모르니 아무 줄에나 그를 옮길 것이었다. 내가 누르면 그를 더 깊이, 내가 안 누르면 아무 데로나. 어느 쪽도 그를 빼내지 못했다. 나는 명단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어느 칸에서 잃을지를 고르고 있었다.
처음에 대가는 며칠 뒤에 왔다. 이제는, 누르기도 전에 와 있다.
이월 사일. 첫 응답의 대가는 다음 날에 닫혔다. 두 번째는 그날 저녁이었다. 세 번째는 누르기도 전에 와 있었다. 오늘 나는 발신칸을 누르려다, 누르기 전에 옆줄이 이미 갈라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대가가 응답을 앞질렀다. 내가 무엇을 할지 명단이 먼저 알고, 그 대가를 먼저 적어 두고 있었다.
대가는 빨라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커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줄을 닫으면 한 줄이 열렸다. 일대일이었다. 지난주에는 한 줄을 닫자 둘이 열렸다. 오늘은 한 줄을 닫으려는 시늉만 했는데 셋이 흔들렸다. 응답할수록 줄들 사이의 끈이 팽팽해졌고, 한 줄을 당기는 힘이 더 많은 줄로 퍼졌다. 신호 일지에 그런 구절이 있었다 — 증폭이 임계에 이르면, 작은 입력이 큰 출력을 낳는다. 나는 그 임계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것이 가속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멈추면 멈출 수 있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누르지 않아도 대가가 오고, 누르면 대가가 더 빨리·더 크게 왔다. 두 길이 다 같은 방향으로, 점점 더 가파르게 기울고 있었다. 전임자의 릴에서 그의 손이 점점 더 자주 발신칸을 누르던 그 가속 — 그것은 그의 욕망이 아니라, 그가 빠져든 소용돌이의 가속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도 멈추려 했으나, 가속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손을 단말에서 떼고, 잠시 두 손을 무릎에 모았다. 누르지 않는 시간을 길게 끌어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에도 명단의 줄들은 저희끼리 닫히고 열렸다. 내가 빠진 자리를 다음 손이 채우며, 대가의 가속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이 가속의 운전자가 아니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을 뿐, 가속 페달은 이미 바닥에 붙어 있었고, 그것을 밟은 것이 내 발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임계가 가까웠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아직 몰랐다.
나만 누르고 있는 줄 알았다. 이관된 상자들 속에서, 나는 다른 손들이 남긴 누름의 흔적을 보았다.
이월 육일. 영업정지된 회사들의 자료를 다시 정리하다가, 한 회사의 기록 담당 노트를 펼쳤다(전에 같은 결의 프나코틱 상자를 보았던 그 회사다). 그 노트에도 발신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칸에는, 눌린 자국이 있었다. 나처럼, 그 사람도 응답했다. 한 번이 아니었다. 노트의 뒷장으로 갈수록 누름의 흔적이 잦아지고, 망설임의 여백이 짧아졌다. 내 가속과 같은 곡선이었다.
다른 회사의 노트를 폈다. 같았다. 또 다른 노트. 같았다. 환란이 닥친 모든 장부 아래에, 같은 다섯 번째 묶음이 있었고, 같은 발신칸이 있었고, 같은 손들이 응답하고 있었다. 나는 법칙의 유일한 기관이 아니었다. 나는 수많은 기관 중 하나였다. 도시의 모든 자금부, 모든 영업점, 모든 청산 자료실에서, 이름 모를 손들이 저마다의 명단 앞에 앉아 저마다의 강민석을 살리고 저마다의 옆 사람을 데려가고 있었다.
이 발견은 두 가지를 동시에 했다. 나를 덜 외롭게 했고, 더 무섭게 했다. 나만의 죄가 아니라는 것은 위로였다. 그러나 모두의 죄라는 것은, 환란이라는 거대한 부고가 어느 한 손의 일이 아니라 수많은 손이 동시에 누른 발신의 합이라는 뜻이었다. 나라가 한 권의 묶음이라면, 그 묶음의 모든 장에서 손들이 응답하고 있었고, 그 응답들의 자리바꿈이 서로 얽혀 오늘의 부고들을 적고 있었다.
나는 그 노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오래 보았다. 어느 손이 누구를 살리려다 누구를 데려갔는지, 그 얽힘을 끝까지 풀 수는 없었다. 풀 수 없다는 것이, 이 법칙의 마지막 잔인함이었다. 누구도 제 응답의 끝을 보지 못한다. 내가 데려간 사람을 다른 손이 살렸을 수도, 내가 살린 사람을 다른 손이 데려갔을 수도 있었다. 모든 손이 모든 손의 결과를 흩어 놓고 있었다. 그 흩어짐 속에서 멈추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다음 장에서 묻게 될 것이었다.
멈추면 죄를 면하는 줄 알았다. 멈춤에도 값이 매겨져 있었다.
이월 팔일. 나는 닷새를 누르지 않았다. 명단을 열되 발신칸에 손대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마지막 출구였다. 닷새 동안 나는 그저 읽기만 했다. 받는 자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닷새째 되는 오늘, 나는 그 닷새의 값을 받았다.
내가 누르지 않은 닷새 동안, 명단의 줄들은 다음 손에게 넘어갔다. 그 손들은 나만큼 신중하지 않았다. 나는 적어도 누구를 옮기는지 알고 눌렀다. 다음 손은 모르고 눌렀다. 닷새 사이 내 자료실 관할의 부고가, 내가 누르던 때보다 늘어 있었다. 나는 신중하게 죄를 짓고 있었고, 내가 손을 떼자 그 자리에서 누군가 무심하게 죄를 짓고 있었다. 멈춤의 값은, 더 무심한 손에게 넘긴 자리의 값이었다.
계속해도 대가, 멈춰도 대가. 두 길의 끝이 같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출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응답을 시작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한 번 발신칸을 안 이상, 안다는 것 자체가 응답이었다. 누르는 것도, 누르지 않는 것도, 명단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자료실을 떠나는 것도 — 어느 것이든 다섯 번째 묶음의 한 장을 넘기는 일이었다.
나는 닷새 만에 다시 발신칸에 손을 가져갔다. 면죄가 아니라, 적어도 내가 누구를 옮기는지 알고 옮기기 위해서였다. 무심한 손보다 신중한 손이 낫다는 그 생각이, 응답을 계속하게 하는 마지막 핑계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나 핑계인 줄 알면서도, 나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출구가 없는 방에서는, 어느 문으로 나가려는 시도조차 방 안을 한 바퀴 더 도는 일이었다. 강민석의 마지막 줄이, 내일 자 명단의 맨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