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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있는 줄

The Line With a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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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십팔일. 내일 자 명단을 열었다. 첫 줄이 회사 이름이 아니었다.

김████, 출고관리부, 1958년생, 부양 4명. 박████, 영업1팀, 1962년생, 부양 3명. 최████, 자금부, 1965년생, 부양 2명.

회사명이 들어가는 칸이 비어 있었다. 그 자리에 부서가 적혀 있었고, 옆 칸에는 직급 대신 출생 연도가, 그다음에는 부양가족 수가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 칸들을 보았다. 단위가 바뀌어 있었다.

단말 화면 위에 명단은 다른 형식이었다. 부도 명단은 짧았다 — 회사 하나가 한 행이고, 일주일에 다섯 행이면 종금사 다섯 곳이 문을 닫았다는 뜻이었다. 정리해고 명단은 길었다. 한 회사가 열 명을 줄이면 열 행이었다. 백 명을 줄이면 백 행이었다. 화면 아래로 페이지 번호가 1/8, 1/12, 1/20으로 늘어 갔다. 회사 단위에서는 한 줄이 한 회사였지만, 사람 단위에서는 한 회사가 백 줄이 되었다. 명단의 길이가 그만큼 늘어났다.

지난 다섯 달 동안 명단의 단위는 회사였다. 부도, 영업정지, 회생, 청산. 그 글자 뒤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명단 위에서는 한 행이었다. 나는 그 한 행을 고쳐 적었고, 옆의 한 행이 대신 부풀었다. 회사 단위에서는 어느 회사가 대신 닳는가만 보면 되었다. 그것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 부도 아래의 직원, 청산 아래의 거래처, 영업정지 아래의 가족 — 함의로만 알았다. 명시되지 않았다.

이번 명단은 명시한다. 부서. 출생 연도. 부양가족 수.

부양 4명이라는 글자를 처음 보았다. 그 옆에 회사가 결정한 감축 사유가 짧게 붙어 있었다 — '정원 조정·근속 단축'. 한 줄이 한 가구였다. 1958년생 김████의 한 줄은 본인 한 사람에 부양 네 사람, 합 다섯이 그 한 행 아래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 줄을 다른 사번으로 고쳐 적으면 다섯이 다른 줄로 옮겨 간다. 가구가 가구를 대체한다. 회사가 회사를 대체하던 때와 똑같은 보존이었다 — 다만 단위가 줄어들면서 한 행의 무게가 가구 단위로 압축되어 있었다.

내려갔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세 페이지. 다섯 번째 페이지 끝에서 아는 이름을 보았다.

강████, 자금부, 1968년생, 부양 1명.

부양 1명. 강민석의 부양가족 한 명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 그가 자료실에 와 자기 어머니가 입원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외래로 한 달, 입원으로 두 주. 자기 책상에 잠시 앉아 점심을 거른 채로. 그 한 명이 그 줄 옆에 적혀 있었다. 부양 1명, 이라는 두 글자가 작년 가을의 그 점심 안 먹은 자리를 다시 끌어올렸다.

부서 정원 감축. 항목이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한 부서가 몇 자리만큼을 줄이라는 통보. 누구를 줄일지는 회사가 정한다. 명단은 그 결과만 받아 적는다. 강민석은 거기 있었다. 회사가 부도에서 살아남은 다음, 빚이 닫힌 다음, 몸이 닫힌 다음 — 그의 이름은 회사·빚·몸의 어느 줄에도 더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일하는 자리에는 있었다. 자기 부서에서, 자기 직급의 정원에서. 정원이 줄어드는 칸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강민석은 아직 모를 것이었다. 내일 자 명단은 내일 아침 발행되고, 오늘 그는 아직 자료실 옆 건물의 자기 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내일 오전 어느 회의실에 불려 들어가 들을 것이다. 부서 정원이 줄어든다고. 그가 그중 한 자리라고. 그 시각을 나는 이미 보고 있었다. 명단의 첫 줄이 사람이 된 다음부터, 미리 본다는 일의 무게가 회사 단위였을 때와 달랐다.

나는 발신칸을 보았다. 손이 멈춰 있었다.

회사를 고쳐 적을 때는 그것이 어느 회사인지가 손에서 멀었다. 명단이 옆 회사로 옮아가도 옆 회사의 직원은 자료실 바깥이었다. 사람을 고쳐 적는다면 — 그 자리에 누가 대신 들어갈지가, 들어갈 사람의 얼굴이, 즉시 손끝에 있다. 같은 부서에서 누가 빠질지. 같은 직급의 다른 이름이 누구인지.

강민석 옆자리는 김재현이다. 그 옆은 박정수다. 김재현은 작년 봄에 들어왔고, 박정수는 입사 십이 년이다. 누가 다음 정원 조정에 더 약한 자리인지 — 회사가 그것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 자료실을 지켜 온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다. 근속이 짧으면 정리해고 일순위, 근속이 길면 봉급 비용이 커서 다른 표적. 둘 다 표적이다. 강민석을 살리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옆으로 옮겨 가고, 옆으로 옮겨 간 자리는 다시 옆으로 — 자리바꿈은 회사 단위에서는 옆 행이라는 추상이었지만, 사람 단위에서는 점심을 같이 먹는 한 사람이 다른 점심을 같이 먹는 한 사람으로 바뀌는 일이었다.

자료실로 한 층을 내려오면 결원은 한 자리뿐 — 전임자의 자리. 한 번도 채워진 적 없는 자리. 없는 사람의 자리.

내가 강민석을 고쳐 적으면 누구의 이름이 그 자리에 들어가는지를 나는 본다. 회사 단위에서는 옆 행에 모르는 이름이 부풀었다. 사람 단위에서는 옆자리의 얼굴이 닳는다.

발신자가 된 손이 처음으로 망설이는 자리를 나는 알았다.

명단을 끝까지 내려갔다.

마지막 페이지. 가장 아래. 한 줄이 있었다 — 다른 줄들 사이에 끼어 있지 않은, 한 줄만 따로 떨어진 자리에. 이름. 사번. 그리고 네 글자.

대상 확정.

사번을 보았다. 강민석의 사번과 두 자리 차이였다. 같은 부서, 같은 직급, 같은 인사 발령군의 다음 번호. 그 번호의 이름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 번도 응답한 적 없는 이름이었다.

이름을 발음해 보지 않았다. 발음하면 그 자리에 그 사람이 들어 앉을 것 같았다. 나는 한 번도 명단에 그 사람의 자리를 만든 적이 없었다 — 발신칸을 누르지도, 고쳐 적지도 않았다. 그러나 명단은 그를 옆자리의 다음으로 고지하고 있었다. 명단이 회사 단위였을 때는 내가 응답한 줄에 다른 회사가 부풀었다. 사람 단위로 내려온 명단은 내가 응답하지 않은 줄 옆에 이미 다음 사람을 적어 두고 있었다.

한 자리 옆이라는 거리가 한 자리 옆처럼 보이지 않았다. 명단 위에서 두 자리 차이는 두 칸 사이의 빈 칸 — 한 행과 한 행 사이의 작은 공백이었다. 그러나 같은 부서의 두 자리 차이는 한 부서 안의 두 책상이었고, 한 점심상의 두 의자였고, 한 같은 출근길의 두 사람이었다. 거리가 작을수록 시간이 짧다. 다음 줄이 닳는 시각은 옆자리에서는 며칠이 아니라 며칠 안의 시간이었다.

명단의 발행 시각은 내일 아침이었다. 그러나 그 줄만 —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명단이 자기보다 앞서 한 줄을 결정해 놓고, 나에게 알리고 있었다. 강민석의 다음이 누구인지를 미리 알려 주고 있었다.

내일 자에서 옆자리로 옮아갈 것이다.

내일 자 명단을 켜기 전에, 나는 이미 그것을 본 자리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