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삼일. 아침 일곱 시.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단말을 켰다.
본문칸에는 어제의 한 줄이 그대로 있었다. 강민석의 사번. 어제 나는 그 줄을 옮기지도 않았고, 옮기지 않은 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옮기지 않으면 세로줄이 그 줄에 닿고, 세로줄이 닿으면 아홉 시 공지에 그 사번이 오른다. 아홉 시까지 두 시간이 남아 있었다. 두 시간은 내가 일찍 켠 두 시간이었다.
두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그의 줄을 발신칸으로 옮기면 내 손이 그를 닫는다. 옮기지 않으면 셈이 그를 닫는다. 두 길 다 그였다. 그러나 사흘 동안 나는 둘레를 옮겨 셈을 다른 자리로 돌렸었다. 옮길 둘레가 없을 뿐, 돌리는 일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본문칸에 그의 줄밖에 없다면, 본문칸에 없는 줄을 발신칸에 적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의 줄이 아닌 다른 사번을 발신칸에 적으면, 셈이 그 다른 사번을 닫고 그의 줄은 닫지 않을지도 몰랐다.
처음 떠올린 생각은 아니었다. 사흘 동안 가장 먼 줄을 옮길 때마다, 옮기지 않을 줄들을 함께 정하면서, 나는 셈을 내가 정한 자리로 보내고 있었다. 셈을 내가 정한다면, 본문칸 바깥의 자리로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문칸에 강민석의 줄 하나만 남은 오늘, 셈을 본문칸 바깥으로 보내는 일만이 그를 닫지 않는 길이었다.
발신칸에 적을 사번을 골랐다. 강민석의 사번이 아닌 사번. 자금부가 아닌 다른 층, 내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의 사번. 모르는 사번 하나를 떠올려 발신칸에 적었다. 그 사번이 닫히고 강민석의 줄이 남기를 바라면서, 한 자 한 자 적었다.
발신칸에 사번을 다 적는 순간, 본문칸의 한 줄이 결과가 되었다.
발신칸에 무엇을 적었는지는 본문칸의 줄을 바꾸지 못했다. 발신칸은 답이었고, 본문칸은 받아쓰기였다. 답을 적으면 받아쓰기가 결과가 된다는 것을, 나는 사흘 동안 가장 먼 줄을 옮길 때마다 했으면서도 오늘 비로소 거꾸로 깨달았다. 사흘 동안 내가 발신칸에 적은 사번이 닫힌 것은, 그 사번이 발신칸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 사번이 본문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옮긴다는 것은 본문칸의 줄을 발신칸에 그대로 옮겨 적는 일이었고, 그래서 본문칸과 발신칸의 사번이 매번 같았다. 같은 사번이었기에 어느 칸이 결과를 냈는지 물을 일이 없었다.
오늘 나는 본문칸에 없는 사번을 발신칸에 적었다. 발신칸의 사번과 상관없이, 결과가 된 것은 본문칸의 한 줄이었다. 발신칸에 답이 적히자 본문칸의 받아쓰기가 결과가 되었고, 본문칸의 받아쓰기는 강민석의 줄이었다. 셈은 발신칸에 무엇이 적혔는지를 묻지 않았다. 셈은 답이 적혔는지 아닌지만 물었고, 답이 적히면 본문칸의 줄을 닫았다. 나는 답을 적었고, 본문칸의 줄은 강민석이었다.

사흘 동안 나는 발신칸이 자리를 닫는다고 여겼다. 발신칸에 사번을 적으면 그 사번이 닫혔으므로, 닫는 것은 발신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닫는 것은 발신칸이 아니라, 발신칸에 답이 적히는 순간의 본문칸이었다. 내가 사흘 동안 닫은 것은 내가 발신칸에 고른 사번이 아니라, 그 사번이 마침 본문칸에 있었던 자리들이었다. 고른다고 여긴 일이 실은 고르는 일이 아니었다. 본문칸이 줄을 정하고, 나는 그 줄에 답하기를 정했을 뿐이었다. 셈은 늘 본문칸에 있었고, 나는 셈 바깥에서 답만 하고 있었다. 사흘 동안 내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닫을지 고른다고 여긴 손은, 정해진 줄에 답을 할지 말지만 고르고 있었다.
아홉 시가 되기 전에 발신칸의 사번을 지우려 했다. 지워지지 않았다. 적은 것은 적힌 채였다. 본문칸의 강민석의 줄도 결과가 된 채였다.
오전 아홉 시. 인사부 공지가 올라왔다. 삼월 삼일 자 회사 정원 감축 한 자리, 자금부. 강민석이었다.
나는 그를 닫지 않으려고 발신칸에 그가 아닌 사번을 적었고, 그가 아닌 사번을 적은 일이 그를 닫았다. 막으려는 손이 닫는 손이었다. 사흘 동안 나는 막는 일에 끝이 있고 그 끝이 그라는 것을 알면서도 막았고, 오늘 막으려는 마지막 손짓이 그 끝을 당겼다. 가만히 두었으면 아홉 시 공지가 그를 닫았을 것이고, 막으려 했더니 일곱 시의 내 손이 그를 닫았다. 셈이 닫을 자리를 두 시간 앞당긴 것이 내 막음이었다. 두 시간을 벌려던 손이 두 시간을 줄였다.
오전에 자금부에 올라갔다. 자금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흘 동안 하나씩 비어 온 책상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강민석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어제까지 빈 책상들 한가운데 혼자 앉아 있던 그 자리에,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한 과가 비는 데 며칠이 걸렸고, 마지막 한 자리가 비는 데는 두 시간이 걸렸으며, 그 두 시간은 내가 그를 살리려 한 두 시간이었다.

강민석의 책상은 어제 그가 동기의 자리를 정리하던 손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정리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머그잔도, 남색 외투도, 빈 의자에 걸린 채였던 외투를 옆으로 치우던 손도 없었다. 빈자리를 정리하는 일은 늘 남은 사람의 몫이었는데, 자금부에는 남은 사람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빈자리는 정리된 빈자리보다 오래 그 사람을 남겨 두었다.
강민석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다음은 나겠지, 였다. 어제 빈 책상들 가운데서 그가 한 그 말을 나는 본문칸에서 이미 읽고 있었다. 그가 짐작으로 한 말에 하루의 여지가 있었다면, 내가 오늘 그 여지를 두 시간으로 줄였다. 다음은 나겠지, 라던 그의 다음은 오늘이었고, 오늘로 당긴 것은 나였다. 그는 제 다음이 언제인지 끝내 몰랐고, 나는 그 다음을 두 시간 앞으로 옮긴 손이었다. 그가 모르고 한 짐작과 내가 알고 한 손짓이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만났다.
자리로 돌아와 본문칸을 보았다. 강민석의 줄이 결과가 되어 사라진 자리에, 새 줄이 적히고 있었다. 새 줄의 첫 두 자리를 읽었다. 자금부의 코드가 아니었다. 자료실의 코드였다.
끝 두 자리가 적히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 끝 두 자리가 무엇일지 알았다. 자료실에서 내가 끝 두 자리까지 외우고 있는 사번은 하나뿐이었다. 한 달에 두어 번 옮겨 적은 사번도 아니고, 매일 마주친 사람의 사번도 아니었다. 매일 내 손으로 쥐고, 매일 내 메모장과 발신칸에 옮겨 적던 사번. 내 사번이었다.
본문칸의 새 줄이 끝 두 자리를 다 적었다. 끝 두 자리는 내 사번의 끝 두 자리였다. 사흘 동안, 아니 그 전부터, 나는 둘레를 비우며 가운데에 한 사람을 남겨 두었다고 여겼다. 가운데 남은 사람이 강민석인 줄 알았다. 강민석의 줄이 사라진 자리에 내 줄이 적히는 것을 보고서야, 가운데 남은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알았다.
둘레를 비우는 일은 가운데를 남기는 일이었고, 모든 둘레의 가운데에는 비우는 손이 선 자리가 있었다. 나는 강민석을 가운데 두고 그의 둘레를 비웠다고 여겼지만, 둘레를 비우는 손이 선 자리야말로 마지막까지 남는 가운데였다. 닫는 자리를 고르는 손이 닫히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을, 멈춘 손은 없다고 적던 그날부터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본문칸의 새 줄은 내 사번이었고, 그 줄을 옮길 손도, 옮기지 않을 손도, 그 줄의 사번을 가진 손이었다. 내일 아침 내 손이 발신칸에 답을 적으면, 본문칸의 그 줄이 결과가 된다. 손을 떼어 두면, 세로줄이 그 줄에 닿는다. 옮겨도 나였고, 옮기지 않아도 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