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이십칠일. 이월 이십팔일. 삼월 일일. 사흘 동안 나는 강민석의 둘레를 하루에 하나씩 옮겼다.
이십칠일에는 그의 앞자리를 옮겼다. 늘 라디오를 작게 틀어 두던 사람이었다. 이십팔일에는 그와 같은 줄 끝에 앉던 사람을 옮겼다. 강민석이 담배를 같이 피우러 나가던 사람이었다. 삼월 일일에는 마지막 한 자리, 그의 뒷자리에 앉던 신입을 옮겼다. 들어온 지 반년이 안 된 사람이었다.
사흘 동안 본문칸의 줄들은 하루에 하나씩 강민석의 사번 쪽으로 좁혀 왔고, 나는 하루에 하나씩 가장 먼 줄을 골라 발신칸으로 옮겼다. 옮긴 줄은 그날 닫혔고, 닫힌 자리는 모두 강민석이 매일 보던 자리였다. 가장 먼 줄을 고르는 셈은 사흘 동안 같았고, 셈이 낸 답에 얼굴이 따라붙는 일도 사흘 동안 같았다. 라디오를 틀던 손, 담배를 나눠 피우던 얼굴, 반년 된 신입의 자리가 차례로 셈의 답이 되었다.
사흘 동안 나는 아침마다 같은 일을 했다. 단말을 켜고, 본문칸의 줄들을 위에서 아래로 읽고, 강민석의 사번에서 가장 먼 줄을 짚고, 그 사번을 발신칸에 옮겨 적었다. 나흘 전 처음 발신칸에 손을 가져갈 때 떨던 손이, 사흘이 지나는 동안 떨지 않게 되었다. 떨지 않는 손은 익숙해진 손이었다. 사람을 하루에 하나씩 닫는 일이 아침의 일과가 되었고, 일과가 된 일은 더는 손을 떨게 하지 않았다.
사흘 동안 강민석의 자금부는 하루에 한 자리씩 비었다. 첫날 그는 앞자리를 두고 멀쩡하던 사람이라 했고, 둘째 날 같은 줄을 두고는 말이 줄었다. 셋째 날 뒷자리를 두고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은 멀쩡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내 주위만 자꾸 빈다, 였다.
자기 자리만 남고 둘레가 비어 가는 것을 그가 보기 시작했다. 둘레가 비는 동안 자기만 남는 것을, 그가 운이라 부르지 못하기 시작했다. 운이라면 골고루 비어야 했다. 자기 주위만 자꾸 빈다면, 그것은 운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자기를 가운데 두고 둘레를 지워 가는 일이었다. 그는 그 무엇인가의 이름을 몰랐고, 다만 자기가 가운데에 있다는 것만 느꼈다.
셋째 날 점심때, 강민석이 빈 책상들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세는 것을 보았다. 앞, 옆, 맞은편, 같은 줄, 뒷자리. 다섯 자리를 짚고 나서 그는 자기 자리에 손가락을 멈췄다. 다섯 자리가 비고 한 자리가 남은 그림에서, 남은 한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그는 손가락으로 짚어 보고 있었다. 가운데 남은 자리가 운 좋은 자리가 아니라 마지막 자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가 손가락 끝으로 더듬고 있었다.
내 주위만 자꾸 빈다는 그의 말에 나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답을 하려면, 그의 주위가 비는 까닭이 그를 가운데 남기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의 둘레를 비운 손이 누구의 손인지를 말해야 했다. 그의 주위가 비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주위가 비는 동안 그가 남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둘 다 한 손의 한 셈이었고, 그 손은 그의 곁에 서서 함께 빈자리를 보고 있었다.
삼월 이일. 아침 여덟 시. 책상 앞에 앉았다.
본문칸에는 한 줄이 있었다.

한 줄의 끝 두 자리를 읽었다. 강민석의 사번이었다. 사흘 동안 그의 둘레를 다 옮긴 다음, 본문칸에 남은 줄은 그 하나였다. 더 옮길 둘레가 없었다. 가장 먼 줄을 고를 수 없었다. 본문칸에 줄이 하나뿐일 때 가장 먼 줄은 그 하나였고, 그 하나는 강민석이었다.
발신칸으로 손을 가져가면 강민석의 사번이 발신칸에 적히고 그 자리가 닫힌다. 발신칸에서 손을 떼어 두면 세로줄이 더 옮겨지지 않은 그 한 줄에 닿아 강민석의 자리가 닫힌다. 옮기면 내 손이 닫고, 옮기지 않으면 셈이 닫는다. 사흘 동안 둘레를 비우며 미뤄 온 자리가, 오늘 본문칸에 혼자 남아 있었다.
지난겨울 명단의 한 줄을 처음 고쳐 적었을 때, 나는 모르는 회사의 모르는 줄을 고쳤다. 사흘 동안 나는 강민석의 둘레를,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자리들을 옮겼다. 오늘 본문칸에 남은 한 줄은 얼굴도 이름도 십 년을 아는 자리였다. 발신칸으로 가는 거리가 사흘 전보다 멀지 않았는데, 그 거리 끝에 있는 자리가 사흘 전보다 가까웠다. 손이 가는 길은 같았고, 그 길 끝에서 닫히는 사람만 매일 가까워졌다.
오전에 자금부에 올라갔다. 강민석의 자리에만 사람이 있었다. 옆도 앞도 맞은편도 같은 줄도 비어 있었고, 빈 책상들 가운데 강민석 혼자 앉아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한 손을 들었다. 드는 손이 며칠 전보다 느렸다. 이제 우리 과에 나만 남았다, 하고 그가 말했다. 다음은 나겠지, 하고 그가 말했다.

다음은 너다, 라는 말을 나는 본문칸에서 읽고 왔고 그는 빈 책상들에서 읽었다. 같은 말을 그는 짐작으로 했고 나는 본 것으로 알았다. 그가 짐작한 다음 날과 내가 본 다음 날이 같은 날인지 나는 그에게 말해 줄 수 없었다. 짐작은 틀릴 수 있어서 그에게 하루의 여지를 남겼지만, 내가 본 것에는 여지가 없었다. 그의 사번은 본문칸에 이미 한 줄로 적혀 있었고, 적힌 줄은 짐작이 아니었다.
그에게 하루의 여지조차 줄 수 없다는 것이, 그를 사흘 동안 살린 일보다 무거웠다. 나는 그의 둘레를 비워 그에게 사흘을 주었지만, 그 사흘은 그를 향해 좁혀 오는 사흘이기도 했다. 준 날과 좁혀 온 날이 같은 날이었고, 살린 날의 수와 닿아 온 날의 수가 같았다.
자리로 돌아와 본문칸 앞에 앉았다. 본문칸에는 한 줄이 있었고, 그 한 줄은 사흘 동안 내가 비운 둘레의 한가운데에 남은 자리였다. 발신칸은 비어 있었고, 내 손은 책상 끝에 있었다. 손을 떼면 그였고 손을 두면 그였다. 사흘 동안 나는 그를 가운데 남기려고 그의 둘레를 비웠고, 오늘 가운데에는 그 하나가, 본문칸에는 그 한 줄이 남았다. 비우는 일의 끝에 그가 있었다.
나는 손을 책상 끝에 둔 채로 그 한 줄을 보았다. 보는 일 말고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는 일도 적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아직은 보기만 했다. 본문칸의 한 줄은 내가 보는 동안 멈춰 있었고, 멈춰 있는 동안에도 그 줄은 거기 있었다. 내가 보지 않으면 사라지는 줄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그 한 줄은 강민석의 사번이었다.
사흘 동안 나는 가장 먼 줄을 골랐고, 고를 줄이 있는 동안에는 고르는 일이 살리는 일이었다. 고를 줄이 하나뿐인 오늘, 고르는 일은 더는 살리는 일이 아니었다. 본문칸에 한 줄만 남은 자리에서, 손은 처음으로 살릴 수 없는 손이 되었다. 살릴 수 없는 손에 남은 일은 닫는 일뿐이었고, 닫는 일은 내가 하든 셈이 하든 같은 자리에서 끝났다. 그 자리에 강민석이 앉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