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의 첫 주가 지나갔다. 수렴하는 날짜까지는 아직 며칠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 날짜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 날짜 이후를 이미 적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받는 이의 이름이 비어 있는 상자가, 엿새째 내 책상 옆에 놓여 있었다. 프나코틱 문고의 것이었다. 표지에는 다섯 번째 묶음이 들어갈 자리와, 그 묶음을 받을 다음 기록 담당의 이름을 적을 빈 줄이 있었다. 나는 그 줄을 아직 채우지 않았다. 채울 이름을 아직 몰랐다. 다만 그 줄이 비어 있다는 것이, 이제는 위협이 아니라 약속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올 것이다. 내가 전임자에게서 이 자리를 물려받았듯이. 비어 있는 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이지 영영 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구내 방송이 한 번 울렸다. 위층 자금부 쪽이 술렁였다. 나는 판독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말은 들었다. 오늘 새벽, 아홉 개 종합금융사에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졌다고 했다. 더는 자금 결제를 할 수 없게 된 회사들. 명단이 차례로 호명되었다.
나는 그 이름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십일월 내내, 내일 자로 도착한 시재표와 발표 전에 닿은 강등 통지 속에서, 나는 그 회사들의 잔액이 영(零)을 향해 내려가는 것을 미리 읽었다. 오늘은, 내가 며칠 전에 읽은 것이 공식이 된 날이었다. 전 같으면 나는 그것을 우연이라 부르려 했을 것이다. 합리화하는 학자의 버릇으로, 통계적 일치라거나 직업적 직관이라거나. 그러나 나는 십일월에 끝까지 읽었고, 합리화는 끝까지 읽은 자의 것이 아니었다. 미리 읽힌 것은 예언이 아니라 발현이었다. 장부 아래에서 자라던 참 숫자가, 마침내 위층의 사람들에게까지 닿은 것이었다. 숫자가 자란 자리에서, 회사가 하나씩 멈췄다.

방송이 끝나고, 위층의 술렁임이 잦아들 즈음, 나는 상자를 열었다.
처음에 — 아직 쫓기는 독자였을 무렵 — 나는 이 네 묶음을 우연히 마주쳤다. 옮겨 적어야 할 옛 문서 더미 속에서, 등대수의 물때표가, 측량기수의 갱 일지가, 사서의 음절 기록이, 전신수의 무선 일지가, 차례 없이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들을 겁먹은 채, 띄엄띄엄 읽었다. 끝까지 읽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면서도, 어디까지가 끝인지 모른 채로. 쫓기는 독자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작정하고 읽으려 했다.
네 묶음을 책상에 나란히 펼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옮겨 적을 작정이었다. 겁먹은 독자로서가 아니라 — 이제 그 서명을 제 손으로 적은 자로서. '우리'의 한 손으로서. 무엇을 다음 독자에게 옮겨 적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작정하고, 끝까지 읽어야 했다. 두려워서 외면하던 것을, 이제는 직무로 마주해야 했다. 그것이 이 자리의 일이었다. 기록 담당의 일.
네 묶음에는 각각 표어가 있었다. 등대수의 물때표 첫 장에는 닳은 글씨로 한 줄, 물은 같은 자리에 두 번 들지 않는다. 사서의 기록 맨 앞에는 던컨이라는 신부의 경고. 전신수의 무선 일지에는 호출부호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한 문장. 그리고 측량기수의 일지 표지에는, 정으로 새긴 라틴어가 있었다. 신용평가 단말의 부팅 화면에서 내가 처음 읽었던 것과 같은 글귀였다.
NUMERUS NON MENTITUR.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 넷을 차례로 내 정리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러다 알았다. 네 표어가 모두 같은 한 가지를 다른 말로 적고 있다는 것을. 재면 깊어진다. 적으면 자란다. 읽으면 번진다. 응답하면 발신한다. 넷은 하나의 법칙의 네 얼굴이었고, 나는 이제 그 넷을 한 손으로 옮겨 적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그것을 보았다.
내 글씨였다. 분명히 내 손으로 방금 적은 글씨였는데, 한 단어의 음절들이 서로 떨어져 있었다. 위층에서 호명되던 그 말, 영업정지라고 적었는데, 종이 위에서 그것은 네 개의 따로 선 글자로 읽혔다. 누가 그 사이를 정으로 벌려 놓은 것처럼.
영 업 정 지사서의 일지에서 음절이 따로 도착하던 그 분절이, 이제 내가 읽는 글에서가 아니라 내가 쓰는 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펜을 멈췄다. 끝까지 읽은 자에게 번진다던 그것이, 읽기에서 쓰기로 건너온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분절을 읽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적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 일지의 첫 장을 그렇게 적고, 나는 등대수의 물때표를 펼쳤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작정한 대로. 첫 줄을 읽으려는데, 손이 멎었다.
그 줄은 내가 전에 읽었던 줄이 아니었다. 같은 종이, 같은 닳은 글씨였다. 그러나 표 맨 아래에, 전에는 없던 한 줄이 새로 와 적혀 있었다. 잴 때마다 깊어지는 갱처럼, 읽을 때마다 길어지는 기록. 작정하고 읽는 자에게만 보이는 한 줄이었다.
그 줄은 이렇게 시작했다. 다섯 번째 손에게.
다섯 번째 손에게. 등대수의 물때표 맨 아래, 작정하고 읽는 자에게만 보인다는 그 줄을, 나는 끝까지 읽었다. 줄은 위협이 아니었다. 인계였다. 그것은 이렇게 이어졌다 — 다섯 번째 손에게. 앞의 넷을 순서대로 읽으라. 그러면 넷이 하나임을 보리라.
기록 담당의 버릇이 먼저 움직였다. 순서대로. 나는 네 묶음을 발행 연도순으로 책상에 늘어놓았다. 측량기수의 갱 일지(1923), 사서의 일기(1924), 등대수의 물때표(1934), 전신수의 무선 일지(1937). 그리고 대조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묶음의 어느 줄이 어느 묶음의 어느 줄과 같은 말을 하는지. 옛 장부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옮길 때 늘 하던 일이었다. 색인. 대조. 상호 참조. 나는 겁먹은 독자가 아니라 사서(司書)로서 그것들을 마주했다.
순서대로 읽으니, 보였다.
네 묶음은 서로를 인용하고 있었다. 측량기수가 잴 때마다 깊어진다고 적은 갱을, 등대수는 빠질 때마다 멀어지는 물때로 다시 적었다. 사서가 끝까지 읽으면 음절이 따로 도착한다고 적은 그 분절을, 전신수는 응답하면 발신자가 된다는 금기로 다시 적었다. 네 사람은 서로를 몰랐다. 1923년의 강원도 탄광과 1937년의 동해 전신소 사이에는 아무 연결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같은 한 문장을 나눠 적고 있었다. 마치 한 사람이 네 번에 걸쳐 적은 것처럼.
나는 각 묶음의 마지막 줄을 따로 옮겨 적었다. 네 줄 모두, 한 문장의 중간에서 끊겨 있었다. 지난가을 나는 그것을 알았다 — 끊김이 곧 서명이라는 것을. 끝맺지 못한 문장이 그들이 법칙에 들어갔다는 표시라는 것을. 그러나 그때 나는 네 줄을 따로 보았다. 이번에는 순서대로, 나란히 놓고 보았다.
측량기수: …내가 바위에 새긴 한 줄은 닳아 갈 다음 줄을 위해 자리를 비워 두고
사서: …더 이상 읽지 마십시오, 그러나 이 줄을 읽는 당신은 이미
등대수: …물이 빠진 자리는 인쇄된 어느 표도 허락하지 않는 데까지 이어지고
전신수: …다음 당직자가 명부에 없는 호출부호로 받게 될 그 부름이 곧
네 개의 끊긴 줄을 순서대로 이어 읽자, 그것은 한 문장이 되었다. 자리를 비워 두고, 당신은 이미, 어디까지나 이어지고, 그 부름이 곧 — 네 사람의 손이 한 문장을 네 토막으로 나눠 적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신수의 '곧' 다음에, 마침표가 없었다. 다음 한 토막을 기다리는 빈자리가 있었다.
그 빈자리에, 글씨가 있었다.
내 글씨였다. 내 대조표의 다섯 번째 칸, 내가 아직 적지 않은 칸에, 한 줄이 이미 적혀 있었다. 방금까지 비어 있던 칸이었다. 나는 그 칸에 무엇도 적은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히 내 필체로, 그 문장의 마지막 토막이 적혀 있었다.
곧 다 섯 번 째 손 이 이 어 적 는 다음절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사서의 분절이, 이제 내가 쓴 적도 없는 내 글씨 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다섯 번째 손이 이어 적는다. 네 사람이 시작한 문장을, 다섯 번째 손이 끝맺는다. 그 손은 내 손이었다. 내가 적기도 전에 적힌 손.
나는 펜을 놓고, 책상 옆의 상자를 보았다. 받는 이의 이름이 비어 있던 그 상자. 다섯 번째 묶음이 들어갈 자리. 엿새 동안 비어 있던 그 줄에,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빈 줄의 첫머리에, 한 글자가 와 있었다. 내가 적지 않은 글자였다. 성(姓) 하나. ㄱ. 그 다음 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무슨 이름의 첫 글자인지 알았다. 내 이름의 첫 글자였다. 받는 이는, 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