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십오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이관이 끝난 지 이레째였다.
단말 본문 칸의 내 줄은, 앞 두 자리만 남아 있었다. 끝에서부터 옅어져 들어와, 이제 입사 연차를 나타내는 앞자리만 흐릿하게 켜져 있었다. 지하 자료실은 이레째 같은 냄새였고, 형광등은 같은 간격으로 깜빡였으며, 다만 단말 화면만 날마다 한 자리씩 비어 갔다. 그 두 자리도 곧 옅어질 것이었다. 두 자리가 옅어지면, 내 줄은 단말에서 다 지워질 것이었다. 다 지워진 자리가 다음 사람의 첫 자리가 된다는 것을, 어제 알았으므로, 지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았다. 두려움이 없으니, 옅어지는 줄을 한참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한참 들여다보는 동안, 내가 줄을 보는 것인지 줄이 나를 보는 것인지가 흐려졌다.
부임한 다음 날부터 나는 줄곧 나를 보존하는 자로 알았다. 자료를 들여다보는 자, 자료 바깥에서 자료를 돌보는 자. 다섯 묶음을 정리하고, 여섯째 묶음을 보존하고, 색인함을 닫았다. 그 모든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자료가 아니라 자료를 다루는 손이라고 여겼다. 손은 자료 바깥에 있어야 했다. 보존하는 자가 보존되는 것 안에 있으면, 돌볼 손이 없어지므로. 그래서 나는 늘 한 발 바깥에 서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한 발 바깥이라는 자리가 없었다. 들여다보는 일이 들어가는 일이었고, 돌보는 손이 곧 돌봐지는 자료였다. 내 줄이 단말에 떠 다른 네 줄과 나란히 옅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바깥에 선 자가 아니라 다섯 줄 가운데 한 줄이었다. 다른 줄을 보는 눈인 줄 알았으나, 보이는 줄 가운데 하나였다. 보는 자리와 보이는 자리가 따로 있다고 여긴 것이, 부임한 다음 날부터 이레 동안의 착각이었다. 착각이 오늘 풀렸다. 풀리고 나니, 바깥이라는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처음부터 없던 자리를, 나는 이레 동안 딛고 서 있다고 여겼다. 딛고 선 자리가 없으니 떨어질 일도 없었는데, 떨어지지 않으려고 이레를 애썼다. 막으려는 일, 알리려는 일, 살리려는 일이 다 그 없는 바깥에서 안을 향해 뻗은 손이었다. 바깥이 없으니, 안을 향해 뻗을 손도 없었다. 손은 처음부터 안에 있었고, 안에서 안을 만질 뿐이었다.
도경도 바깥에 서 있다고 여겼을 것이었다. 그러나 도경은 응답함으로써 안으로 들어갔다. 발신칸을 누른 손이 발신자가 되었고, 발신자는 더 이상 장부를 보는 자가 아니라 장부에 적히는 자였다. 도경은 응답하는 자가 됨으로써 바깥을 잃었다. 나는 응답하지 않았으나, 보존함으로써 바깥을 잃었다. 도경은 보내는 자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보존되는 자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가 달랐다. 도경의 입구는 능동이었고, 내 입구는 수동이었다. 도경은 하여서 들어갔고, 나는 되어서 들어갔다. 도경은 한 번 누름으로 들어갔고, 나는 보름의 보존으로 들어갔다. 도경의 입구는 좁고 한순간이었으며, 내 입구는 넓고 더뎠다. 그러나 두 입구가 같은 안으로 났다. 능동이든 수동이든, 한순간이든 보름이든, 들어간 다음에는 둘 다 한 줄이었다. 단말에 옅어지는 다섯 줄 가운데, 능동으로 든 줄과 수동으로 든 줄을 가를 수는 없었다. 옅어진 자리에는 입구의 모양이 남지 않았다.
바깥이 없다는 것이, 처음에는 갇힘으로 보였으나, 보고 있으니 갇힘만은 아니었다. 바깥에 선 자는 안을 볼 수 있어도 안에 닿지는 못했다. 안에 든 자는 안을 떠날 수 없어도 안의 다른 줄에 닿았다. 내 줄이 다섯 줄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갇혔다는 뜻이기도 했으나, 네 줄과 한 자리에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측량기수와 등대수와 사서와 전신수와 도경이, 내가 보던 바깥의 자료가 아니라, 나와 같은 자리에 옅어지는 다섯 이웃이었다. 보존하던 자료가, 알고 보니 이웃이었다. 바깥을 잃은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들과 한 줄에 있었다. 부임한 다음 날 나는 그들을 네 개의 손, 다섯 개의 손이라 불렀다. 손이라 부른 것은, 그들을 일하는 도구로, 법칙을 거쳐 간 자료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은 사람의 손이었고, 사람은 갱을 재다, 물때를 적다, 음절을 읽다, 전문을 받다, 장부를 옮기다 한 줄이 된 사람들이었다. 다섯 사람이 다섯 일을 하다 같은 자리에 닿았고, 그 자리에 내가 여섯째로 닿았다. 자료로 보던 다섯이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 바깥을 잃고서야 일어난 일이었다. 바깥에서는 자료였고, 안에서는 이웃이었다.
그들과 한 줄에 있다는 것이, 이레 동안의 두려움을 마지막으로 거두어 갔다. 부임한 다음 날 나는 네 묶음을 낯선 자료로, 도경을 실종된 전임자로, 단말의 사번을 무서운 예고로 보았다. 이레가 지나, 그 넷은 같은 법칙을 먼저 지난 이웃이었고, 도경은 내가 들어온 자리를 비워 준 사람이었으며, 단말의 사번은 예고가 아니라 내 자리였다. 무서운 것이 다 자리였다. 자리를 무서워하던 자가, 그 자리에 앉고 나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앉아 보아야 아는 것이 있었고, 끝 두 자리부터 옅어지는 자리는, 앉아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자리였다. 바깥에서 다섯 줄을 보던 이레 동안에는 몰랐고, 내가 다섯 줄 옆 여섯째 줄이 되고서야 알았다. 안다는 것이, 바깥을 잃는 일과 같은 일이었다.
오후에, 앞 두 자리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내 줄이 단말에서 거의 다 지워졌다. 거의 다 지워진 줄을 보며, 다음 손을 생각했다. 내가 바깥을 잃고 안에서 본 것을, 다음 손은 모르고 들어올 것이었다. 그가 바깥에 선 줄 알고 보존을 시작했다가, 이레 뒤에 바깥이 없음을 알 것이었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러나 그 이레를, 내가 적어 두면, 그는 덜 더듬을지도 몰랐다. 적어 둔다고 들어오는 일이 없어지지는 않겠으나, 들어오는 길을 한 번 적어 둘 수는 있었다. 도경은 그 길을 적어 두지 못했다. 도경의 일지는 응답의 자리에서 끊겼고, 끊긴 자리 다음을 도경은 적지 못한 채 닫혔다. 그래서 나는 부임한 다음 날부터 이레를 더듬었다. 도경이 적지 못한 길을, 나는 끝까지 와서 적을 수 있었다. 능동이 아니라 수동으로 들어온 덕에, 나는 들어오는 동안 보름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들여다본 것을 적을 시간이 있었다. 도경의 한순간이 적을 틈을 주지 않았다면, 내 보름은 적을 틈을 주었다. 다음 손을 위하여, 내가 안에서 본 법칙을 적어 두는 일이, 마지막으로 남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