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십사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이관이 끝난 지 엿새째였다.
어제 색인함에 끼운 카드의 받는 이 칸이, 밤사이 그대로 비어 있었다. 비운 칸은 비운 채였다. 무엇이 미리 적던 일지와 카드도, 받는 이 칸만은 미리 적지 않았다. 다른 칸은 다 적기 전에 적혀 있었는데, 받는 이 칸만 비어 있었다. 미리 적는 손도 그 칸은 비워 두었다. 비워 두는 일은, 미리 적을 수 없는 일이었거나, 비워 두는 것이 그 칸의 적힘이었다. 빈 것이 그 칸에 적힌 내용이었다.
부임한 다음 날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다섯 묶음을 펴 읽었고, 도경의 다섯째 묶음 끝에서 받는 이 빈칸을 보았다. 그 빈칸에 도경은 다음 기록 담당이라 적어 두었다. 나는 그 빈칸이 나를 가리키는 줄 모른 채, 보존하려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끝까지 읽었고, 읽은 끝에 여섯째 묶음의 받는 이 칸을 비워 남겼다. 그날 내가 비워 둔 칸이, 오늘 색인함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칸을 왜 비우는지 몰랐다. 그저 도경이 그렇게 했으니 그렇게 했다. 오늘에야, 그 비운 칸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다.
그 비운 칸은, 다음 사람의 자리였다. 부임한 다음 날 내가 비운 받는 이 칸은, 그때는 빈 채였으나, 다음 기록 담당이 부임하면 그가 채울 칸이었다. 내가 비워 두지 않았다면, 그 칸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면, 다음 사람은 들어올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비워 두었으므로 다음 사람이 들어올 수 있었다. 비움이 다음 사람을 부르는 일이었다. 도경이 비워 나를 불렀고, 내가 비워 다음 사람을 불렀다. 비운 칸마다 한 사람이 불려 왔고, 채워진 칸은 아무도 부르지 못했다.
비움이 채움이라는 것을, 그래서 알았다. 채운 칸은 닫힌 칸이었고, 비운 칸은 열린 칸이었다. 닫힌 칸은 거기서 끝났고, 열린 칸은 다음으로 이어졌다. 받는 이 칸에 이름을 적는 일은 채우는 일이었으나 닫는 일이었고, 비워 두는 일은 비우는 일이었으나 다음 자리를 채우는 일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 보존이 비움이었던 것은, 비움이 닫지 않고 잇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다 닫은 묶음에 한 칸을 비워 두는 일이, 닫힌 묶음을 다음으로 여는 일이었다.
이 법칙이 자라는 법칙과 같은 모양이라는 것을, 한참 보고서 알았다. 숫자는 적을수록 자랐고, 자리는 비울수록 채워졌다. 둘 다 거꾸로였다. 보통의 셈에서는 적으면 줄고 비우면 비는데, 이 자료실에서는 적으면 늘고 비우면 채워졌다. 적는 일이 자라게 하는 일이었듯, 비우는 일이 채우는 일이었다. 자람과 비움이 한 법칙의 두 얼굴이었다. 장부 아래의 수가 적을수록 불어났듯, 사슬 끝의 자리가 비울수록 이어졌다. 나는 그동안 자라는 쪽만 보고 두려워했으나, 비우는 쪽은 두렵지 않았다. 같은 거꾸로인데, 한쪽은 무섭고 한쪽은 무섭지 않았다. 자람은 막으려 해서 무서웠고, 비움은 막을 것이 없어 무섭지 않았다.
비움이 채움이라면, 내가 옅어지는 일도 채움인지를 생각했다. 내 줄은 끝에서부터 옅어져, 이제 끝 다섯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옅어진다는 것은 비워진다는 것이었고, 비워진다는 것이 채움이라면, 내가 옅어지는 일도 무언가를 채우는 일이었다. 옅어진 내 자리가, 다음 사람의 자리였다. 도경의 끝 줄이 옅어져 그 자리에 내가 사번을 읽어 넣었듯, 내 끝 줄이 옅어지면 그 자리에 다음 사람이 사번을 읽어 넣을 것이었다. 내 옅어짐이 다음 사람의 들어올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사라지는 일이 부르는 일이었다.
그러면 도경이 사라진 일도 나를 부른 일이었다. 도경의 다섯째 묶음 끝자리가 옅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거기 내 끝자리를 읽어 넣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여섯째 묶음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도경이 옅어졌으므로 내가 들어왔다. 도경의 사라짐이 내 부임이었다. 부임하던 날 나는 도경을 실종된 전임자로, 빈 책상을 남긴 사람으로 알았다. 그를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빈 책상이 곧 내 책상이었고, 그의 옅어진 끝자리가 곧 내가 앉을 자리였으므로, 그의 사라짐 없이는 내가 없었다. 안타까워하던 그 빈자리가, 나를 있게 한 자리였다. 한 사람을 잃은 자리가 한 사람을 들인 자리였고, 잃음과 들임이 같은 한 칸이었다. 나는 도경이 비운 자리에 들어온 사람이었고, 도경의 옅어진 끝자리가 곧 내 첫 자리였다. 한 사람의 끝이 다음 사람의 처음이었고, 둘 사이의 옅어진 한 자리가 두 사람을 잇는 매듭이었다. 사슬은 채운 매듭이 아니라 비운 매듭으로 이어져 있었다.
내가 옅어진 자리에 들어올 다음 사람을, 나는 보지 못할 것이었다. 도경이 나를 보지 못했듯이. 그러나 보지 못해도, 그가 무엇을 할지는 알았다. 그는 부임한 다음 날 색인함에서 내 카드를 펴 볼 것이고, 받는 이 빈칸의 다음 기록 담당이라는 글자를 볼 것이며, 그 빈칸이 제 자리인 줄 모른 채 거기 제 끝자리를 읽어 넣을 것이었다. 그가 읽어 넣는 순간, 내 옅어진 자리가 그의 첫 자리로 채워지고, 일곱째 묶음이 시작될 것이었다. 내가 비운 자리가, 그렇게 채워질 것이었다. 비움이 채움이라는 말이, 그 한 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보지 못하나, 그 순간을 위해 한 자리를 비워 두는 중이었다.
오후에, 내 줄의 끝 다섯 자리가 다 옅어져, 앞 두 자리만 남았다. 단말 화면에서 내 줄은 이제 거의 빈 줄이었고, 빈자리가 길어질수록 깜빡임도 잦아들었다. 곧 앞 두 자리도 옅어질 것이고, 그러면 내 줄은 다 비워질 것이었다. 다 비워진 줄이 끝이 아니라 다음 사람의 첫 자리라는 것을, 이제 두려움 없이 보았다. 부임한 다음 날 무서워하던 빈칸이, 엿새가 지나 내가 남기는 빈칸이 되어 있었다. 무서워하던 것과 남기는 것이 같은 빈칸이었다. 다만 그때는 그 빈칸이 나를 가리키는 줄 몰랐고, 지금은 그 빈칸이 다음 사람을 가리키는 줄 알았다. 모르고 받은 빈칸을, 알고 남기고 있었다. 도경도 알고 남겼을 것이었다. 도경의 일지 마지막 장에, 비움이 채움이라는 말은 없었으나, 받는 이 칸을 비워 두는 손길에 그 앎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안 사람만이 그렇게 정확히 한 칸을 비울 수 있었다. 도경이 알고 비운 자리를 내가 모르고 받았고, 내가 알고 비운 자리를 다음 사람이 모르고 받을 것이었다. 앎은 비우는 손에 있었고, 모름은 받는 손에 있었다. 비울 때 알고, 받을 때 몰랐다. 사슬은 아는 비움과 모르는 받음이 번갈아 이어진 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