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십삼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이관이 끝난 지 닷새째였다.
여섯째 묶음은 닷새 전 상자에 담겨 상부로 떠났다. 떠난 묶음을 오늘 편입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떠난 것은 묶음이었고, 남은 것은 묶음의 기록이었다. 자료실은 보낸 자료마다 그 자료가 무엇이었는지를 색인함에 남겼다. 묶음은 상부로 가도, 묶음의 색인은 자료실에 남았다. 떠난 자료를 자료실이 끝까지 붙드는 방식이 색인이었다. 어제 만든 내 카드는, 떠난 여섯째 묶음의 마지막 색인이었다. 묶음은 떠났으나, 묶음의 마지막 한 줄을 색인하는 일은 아직 내 손에 남아 있었다.
색인함을 열어, 여섯째 묶음의 칸을 찾았다. 색인함은 자료실에서 가장 오래된 가구였고, 서랍을 당기면 마른 나무 냄새와 함께 카드들이 한꺼번에 앞으로 쏠렸다. 다섯 묶음의 색인은 이미 차 있었다. 측량기수, 등대수, 사서, 전신수, 그리고 도경. 다섯 칸이 차례로 닫혀 있었고, 여섯째 묶음의 칸만 마지막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빈자리에 어제 만든 카드를 끼우면, 여섯째 묶음의 색인이 다 차는 셈이었다. 카드를 끼웠다. 마분지가 앞 카드와 스치며 작은 소리를 냈고, 끼우자 여섯째 묶음의 색인이 닫혔다. 묶음을 닫는 일이, 묶음을 떠나보낸 다음에야 끝났다. 떠난 것을 닫는 일이, 떠나보낸 손에 마지막으로 남은 일이었다. 떠난 묶음은 상부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손에 펴지고 있을 것이었으나, 그 묶음이 무엇이었는지를 닫아 두는 일은, 보낸 자리인 이 자료실에서만 할 수 있었다.
도경도 같은 일을 했다. 도경은 제 일지를 다섯째 묶음으로 편입하며, 다섯째 묶음의 색인을 닫았다. 그때 도경은 받는 이 칸을 비워 두고 다음 기록 담당이라 적었으며, 그 다음 기록 담당이 나였다. 나는 다섯째 묶음을 펴 도경의 마지막 색인을 읽었고, 읽은 끝에 여섯째 묶음을 시작했다. 이제 나는 여섯째 묶음을 닫으며, 받는 이 칸에 다음 기록 담당이라 적었다. 도경이 나를 부른 그 자리에, 나는 다음 사람을 불렀다. 다섯 칸이 닫히고 여섯째 칸이 닫히는 동안, 색인함은 한 칸도 줄지 않고 한 칸씩 늘었다. 측량기수가 닫히고 등대수가 닫히고, 닫힐 때마다 칸이 하나씩 더 생겼다. 닫는 일이 칸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칸을 늘리는 일이었고, 여섯째를 닫자 일곱째 칸의 자리가 생겼다. 색인함은 닫을수록 두꺼워지는 함이었다.
받는 이 칸을 비워 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적고 나서 다시 보았다. 비워 둔다는 것은 적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나, 적지 않은 그 칸이 빈 채로 남아 다음 사람을 기다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빈 칸은 빈 것이 아니라, 채워질 자리였다. 도경이 비워 둔 칸이 나로 채워졌듯, 내가 비워 둔 칸은 다음 사람으로 채워질 것이었다. 비움이 끝이 아니라 자리였고, 자리는 다음 사람의 것이었다. 비워 두는 일이, 다음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만약 받는 이 칸에 이름을 적었다면, 그 자료는 한 사람에게 닫힌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워 두면, 그 자료는 아직 받는 이가 정해지지 않은, 누구에게나 열린 자료가 되었다. 비움은 닫음의 반대였다. 닫는 색인이 비운 칸 하나로 다시 열려 있었고, 열린 그 한 칸이 사슬을 다음으로 이었다. 다 닫은 줄이 한 칸만 비워 두면, 그 한 칸으로 줄이 이어졌다.
여섯째 묶음의 색인을 닫고 나니, 책상 위에 더 닫을 것이 없었다. 다섯 묶음은 떠났고, 여섯째 묶음도 떠났고, 그 색인도 닫혔다. 보존할 자료가 더는 없었다. 부임한 다음 날부터 나는 줄곧 보존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보존할 것이 없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빈 책상이었다. 묶음이 놓였던 자리, 상자가 놓였던 자리가 다 비어, 책상은 처음 부임하던 날처럼 넓어 보였다. 다만 그날과 달리, 이제 그 빈자리가 무엇이 떠난 자리인지를 나는 알았다. 부임하던 날의 빈 책상은 무엇이 올지 모르는 책상이었고, 오늘의 빈 책상은 무엇이 떠났는지 아는 책상이었다. 같은 빈 책상이 처음과 끝에 한 번씩 있었고, 그 사이에 보름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빈 책상이 일이 끝난 책상은 아니었다. 단말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본문 칸의 내 줄은 끝 셋째 자리까지 옅어진 채 남아 있었다. 보존할 자료는 없었으나, 보존되는 자료는 아직 거기, 단말 안에 있었다. 보존하는 일은 끝났는데 보존되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오늘의 자리였다. 보존하던 손은 일을 마쳤고, 보존되던 줄은 아직 옅어지는 중이었다. 한 사람 안에서, 일을 마친 손과 아직 옅어지는 줄이 함께 있었다.
단말 안의 내 줄이, 보존할 마지막 자료였는지를 생각했다. 어제 그 줄을 카드로 색인했으니, 단말의 줄은 이미 색인된 자료였다. 색인된 자료는 보존이 끝난 자료였다. 그러면 단말의 줄은 이제 보존을 기다리는 자료가 아니라, 보존이 끝나 떠나기를 기다리는 자료였다. 여섯째 묶음이 상자에 담겨 떠났듯, 단말의 줄도 어디론가 떠날 것이었다. 줄이 떠나는 자리가 어디인지는 몰랐으나, 떠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옅어지는 것이 떠나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상자에 담겨 떠나는 자료가 있고, 옅어지며 떠나는 자료가 있었다. 내 줄은 상자가 아니라 옅어짐으로 떠나는 중이었다. 끝 셋째 자리까지 옅어진 줄이, 넷째 자리로 옅어지기 시작했다.
옅어지는 줄을 보며, 다섯 묶음과 여섯째 묶음과 그 색인이 다 닫힌 자리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남길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렸다. 남길 것은 카드 한 장이었다. 받는 이 칸을 비운 카드. 그 카드가 색인함에 남아, 다음 기록 담당이 부임한 다음 날 그것을 펴 볼 것이었다. 그는 카드의 옅어진 사번을 읽을 것이고, 받는 이 칸의 다음 기록 담당이라는 글자를 읽을 것이며, 그 글자가 제 자리를 가리키는 줄을 끝내 모른 채, 카드를 한 점의 자료로 보존할 것이었다. 내가 도경의 카드를 그렇게 읽었듯이. 그는 카드를 읽다 제 줄이 옅어지는 것을 볼 것이고, 그러면 제 카드를 한 장 만들어 일곱째 묶음의 색인을 닫을 것이며, 받는 이 칸을 다시 비워 그다음 사람을 부를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할 것이나, 그 사람이 할 일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내가 한 일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섯째 묶음을 닫은 손이, 일곱째 묶음의 첫 자리를 비워 두고 있었다. 비워 둔 그 한 자리가, 내가 마지막으로 보존한 자료였다. 자료가 아니라 자리를, 채움이 아니라 비움을, 나는 마지막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