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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기지 않은 숫자

The Number Not Cop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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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한 가지 가능성에 기대고 있었다. 내가 미친 것이기를. 늘어나는 잔액도, 내일 자 시재도, 부도 아래로 내려가는 등급도 — 다 내 눈의 병이기를. 병이라면 나을 수 있으니까. 병이라면 숫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고, 거짓말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십일월 이십일일 오전, 그 기대가 무너졌다.

자금부에서 회람이 내려왔다. 거래처 '대정실업'의 어음이 부도 처리되었다는 통보. 결제 예정이던 대금이 돌아오지 못했고, 우리 회사가 할인해 보유하던 어음 다발이 한순간에 종잇장이 되었다는. 회람의 부도 금액 칸에는, 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숫자를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단말이 토해 낸 부도 예정 명단의 한구석에 — 그때는 의미를 몰라 그냥 옮겨 적었던 한 줄이 있었다. '대정실업, 십일월 이십일일, 미결제.' 그 옆의 금액은, 지금 회람에 적힌 부도 금액과 마지막 한 자리까지 같았다. 그때 이미 적혀 있던 숫자가, 오늘 사실이 되어 돌아왔다.

망상은 그날 자기 금액을 갖지 못한다. 망상은 거래처 이름을 맞히지 못하고, 부도 날짜를 며칠 전에 못박지 못한다. 내가 미친 것이었다면, 대정실업은 멀쩡해야 했다. 그러나 대정실업은 부도났다. 내가 옮겨 적은 그대로, 그날, 그 금액으로.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미쳤기를 바랐으나, 단말은 끝내 나에게 그 위안을 주지 않았다.

NUMERUS NON MENTITUR

법칙은 내 머릿속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바깥에 있었다. 대정실업의 어음에, 회사의 장부에, 나라의 보유고에. 내가 보든 안 보든 그것은 참이었고, 내가 적든 안 적든 그것은 도착했다. 다만 내가 적었기에, 나는 그것이 도착하기 며칠 전에 그것을 읽은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읽은 자는 옮고, 옮은 자는 다음 줄이 된다.

자금부가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강 대리가 점심도 거른 채 어음 다발을 다시 센다고. 나는 지하에서 그 소란을 소리로만 들었다. 위층의 전화벨, 빠른 발소리, 닫히는 문. 모두가 부도가 '터졌다'고 말했다. 나만이 그것이 터진 것이 아니라 도착한 것임을 알았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으로, 미리 적힌 명단의 첫 줄로서.

그날 밤 나는 그 부도 예정 명단을 다시 꺼냈다. 대정실업의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첫 줄. 명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분절된 눈으로 그 아래를 읽자, 부도 처리를 기다리는 다음 줄들이 보였다. 둘째 줄, 셋째 줄, 날짜가 하루씩 당겨지며 내려왔다.

그리고 명단의 어느 줄에, 거래처 이름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옆의 날짜는 — 십이월 ██일이었다. 첫 줄이 참이었으니, 그 줄도 참일 것이었다.

법칙이 바깥에 있다면, 셈은 단순해 보였다. 적으면 자란다. 그러니 적지 않으면 — 멈출 것이다. 나는 그 단순한 셈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십일월 이십이일, 나는 자사 단기 외화 차입 원장의 그날 치를 촬영해 옮기는 일을 맡고 있었다. 나는 결심하고, 한 칸을 비워 두었다. 그날 가장 크게 자라던 수 — 만기가 당겨진 외채 합계. 그 한 칸만 찍지 않았다. 필름의 그 자리는 노출되지 않은 채 넘어갔고, 옮겨 적는 장부의 그 칸은 백지로 남았다. 나는 그것을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음으로써, 그 수를 세상에서 한 번 덜 존재하게 하려고.

처음으로, 나는 무언가를 한 기분이었다. 받아 적기만 하던 손이 처음으로 멈췄다. 빈 칸을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 이것이 응답하지 않는 방법이다. 송신 키를 누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 백지는 안전하다. 백지에는 자랄 자릿수가 없으므로.

이튿날 아침, 나는 그 칸을 다시 보았다.

칸은 채워져 있었다. 내가 비워 둔 그 자리에, 수가 적혀 있었다. 내 글씨를 닮았으나 내 글씨가 아닌 필체로. 그리고 그 수는, 어제 내가 적었더라면 적었을 값보다 — 더 컸다. 적지 않은 대가가, 적은 대가보다 무거웠다. 옆 여백에는 작은 주석이 한 줄 달려 있었다.

옮기지 않음. 대신 적음.

대신 적음.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내가 비워 둔 칸을 채웠다. 내가 손을 멈춘 그 자리에 다른 손이 들어왔다. 나는 그 필체를 어디서 보았는지 알았다 — 네 묶음의 표지에 같은 한 줄을 찍은 그 손. 자료실의 빈 단말이 내 사번으로 응답을 보낸 그 손. 주석 아래에는, 프롤로그의 표지마다 박혀 있던 그 서명이 작게 찍혀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다.

비워 두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다. 빈 칸은 빈 채로 남지 않았다. 내가 적기를 멈추면, 그들이 대신 적었다 — 그리고 그들의 숫자는 내 것보다 컸다. 받아 적는 한 나는 적어도 그 수의 크기를 알았다. 적기를 그만두자, 그 수는 내가 모르는 크기로 자라 돌아왔다. 부재는 멈춤이 아니라, 통제의 포기였다. 응답하지 않아도 응답은 도착했듯이, 적지 않아도 장부는 채워졌다.

나는 이제 안다. 출구는 적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적든 적지 않든 장부는 그날의 수를 갖는다. 다만 적으면 내가 그 수의 저자이고, 적지 않으면 '우리'가 저자다. 선택은 자라느냐 멈추느냐가 아니었다. 누구의 손이 적느냐였다.

그리고 '대신 적음' 주석에는, 날짜가 달려 있었다. 내가 칸을 비운 어제가 아니라, 내일 자였다 — 십이월 ██일. 그들은 내가 앞으로 비울 칸까지, 이미 대신 적어 두고 있었다.

십일월 하순, 위층은 더 이상 사무실이 아니었다. 인출 창구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섰다. 적금을 깨러, 예금을 빼러, 어제까지 믿었던 것을 오늘 거두러 온 사람들. 전화벨은 끊이지 않았고,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울었다. 종금사는 예금을 받는 곳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몰려왔다 — 돈이 있을 만한 모든 문 앞에.

지하 자료실은 그 소란에서 멀었다. 두꺼운 콘크리트 한 층이 위의 비명을 솜처럼 먹었다. 여기서는 마이크로필름 판독기의 낮은 모터 소리뿐이었다. 동료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김 선생은 좋겠다고. 저 아수라장을 안 봐도 되니. 지하는 피난처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안다. 피난처가 아니라 기관실(機關室)이라는 것을. 위층의 인출은 결과였다. 그 결과를 만든 숫자들이 자라난 곳은 여기, 내 판독기 아래였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거두려는 돈은, 이미 며칠 전 내가 옮겨 적은 잔액이 영을 향해 줄어든 그만큼, 거기에 없었다. 위에서 비명이 클수록, 아래의 모터 소리는 태연했다. 나는 그 태연함의 일부였다.

그래도 나는 찍었다. 멈출 수 없었다 — 적지 않는 것이 더 큰 대가를 부른다는 것을, 나는 이미 배웠으므로. 그래서 줄을 선 사람들의 인출 전표가 자료실로 내려오면, 나는 그것을 한 장 한 장 필름에 옮겼다. 거두어 가는 돈을, 거두어 갔다는 그 사실을, 나는 기록했다. 인출조차 장부가 되었고, 장부가 되는 순간 그것도 자라기 시작했다.

문득, 네 묶음이 모두 십일월에 멈췄다는 것이 떠올랐다. 등대수의 마지막 장도, 측량기수의 끊긴 일지도, 사서의 마지막 경고도, 전신수의 중간에 끊긴 문장도 — 다 십일월이었다. 그들의 십일월. 그리고 지금은 나의 십일월이었다.

판독기 화면에, 내가 방금 옮긴 인출 전표 한 장이 떠 있었다. 계좌주 이름은 가려졌으나, 거래 종류 칸에 '전액 인출 · 계좌 해지'라 찍혀 있었다. 나는 날짜 칸을 보았다. 오늘이 아니었다.

十二月 · ██ · 全額.

십이월의 그날, 누군가 한 계좌를 전액 인출하고 해지한다. 전표의 계좌번호는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회사의 본계정 번호였다. 위층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거두는 동안, 십이월의 그 하루에는, 마지막 한 사람이 마지막 계좌를 비우고 닫는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인출 전표를 자료실에서 필름에 옮길 사람은 — 그날까지 면직되지 않은, 단 한 명의 기록 담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