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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지 마시오

Do Not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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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빠지지 않는 물때가 되어 칸에 고인 그날 밤, 나는 상자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세 번째 묶음을 펼쳤다. 측량기수의 갱 일지.

나는 더 이상 이 묶음들을 호기심으로 읽지 않는다. 법칙의 모양을 확인하러 읽는다. 갱은 잴수록 깊어졌다. 등급은 읽을수록 내려갔고, 환율은 적을수록 차올랐다. 깊이, 등급, 수위 — 방향은 달라도 손이 닿으면 자라는 것은 같았다. 그러나 측량기수 백남수의 일지에는, 내가 아직 겹쳐 보지 못한 한 줄이 있었다.

갱벽에 새겨진 줄을 세었다. 부임한 측량기수보다 바위의 줄이 늘 하나 더 많았다. 다음 줄은 늘 비어, 다음 사람을 기다렸다.

줄이 사람보다 많다. 나는 그 문장 위에 손을 얹고 한참을 있었다. 깊이가 자라는 갱에서, 벽에 새겨지는 줄의 수는 부임한 측량기수의 수보다 늘 하나 많았다. 그리고 그 한 줄은 비어 있었다. 백남수는 그 빈 줄이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 다음에 내려갈 사람. 그는 그 빈 줄 옆에서 일지를 끝맺지 못했다. 비어 있던 다음 줄이 그의 줄이었으므로.

나는 자료실 캐비닛에서 인사 기록철을 꺼냈다. 이 자료실 기록 담당의 자리 —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책상 — 를 거쳐 간 사람들의 면직·퇴직 줄을 세기 위해서. 손이 차가웠다. 한 줄, 한 사람. 백남수가 갱벽에서 한 일을, 나는 인사철에서 하고 있었다.

도경 이전의 기록 담당. 한성█ — 내 전임자. 그 위로 다섯. 그 위로 또. 줄을 짚어 내려가며 나는 사람을 셌다. 자료실 책상을 거쳐 사라지거나 면직된 사람은 여섯이었다. 그런데 면직 줄은 일곱이었다. 늘 사람보다 한 줄이 많았다. 갱벽에서처럼.

六 사람 · 七 줄 · ↓ · 八 째 줄은 비어 …

일곱 번째 줄은 비어 있었다. 이름 칸도, 사유 칸도 백지였다. 다만 면직 일자 칸에만, 한 날짜가 옅게 박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등불에 가까이 댔다.

십이월 · ██ · 일.

보유고가 영에 닿는 날. 강등 검토일. 필름이 자릿수 사이에 적은 날. 그리고 이제, 이 책상을 거쳐 갈 일곱 번째 사람의 면직일. 갱벽의 마흔여덟 번째 줄이 백남수의 줄이었듯, 인사철의 일곱 번째 줄은 — 비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셈으로써 나는 그 줄을 하나 늘렸고, 늘린 그 줄이 곧 내 줄이었다.

평가 단말의 사훈이, 측량기의 사훈이기도 했음을 나는 떠올렸다.

NUMERUS NON MENTITUR

여섯 사람을 세면 일곱 줄이 나온다. 그 셈은 틀리지 않았다. 갱은 부임 측량기수보다 늘 한 줄 더 새겼고, 인사철은 여섯을 데려가 일곱 줄을 그었다. 한 줄의 초과는 오차가 아니라 법칙이었다. 읽는 자가, 세는 자가, 적는 자가 — 늘 그 다음 한 줄이다.

나는 일곱 번째 줄의 이름 칸을 다시 보았다. 백지였던 그 칸에, 분절된 글자들이 따로따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직 한 이름으로 모이지는 않았으나, 떠오르는 자음과 모음의 순서가 낯익었다. 내가 매일 결재란에 적는, 세 글자의 순서였다.

갱을 읽는 일은, 갱의 다음 줄이 되는 일이었다.

인사철의 일곱 번째 줄에 내 이름이 떠오르던 밤, 나는 네 번째 묶음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미뤄 두었던 것. 전신수의 무선 일지였다.

신경하. 1937년 가을, 동해의 외딴 곶에 선 무선국에서 홀로 야간 당직을 섰던 사람. 그의 일지는 한 가지 점에서 다른 셋과 달랐다. 등대수도 측량기수도 사서도 — 그들은 재고, 적고, 읽었다. 받는 쪽이었다. 그러나 전신수는, 보낼 수 있었다.

그의 인계 서류 여백에는 전임자가 남긴 한 줄이 있었다.

응답하지 말 것. 나는 그 다섯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본 운(韻)이었다. 사서의 일지 마지막 장, 던컨 신부가 남긴 경고 — 끝까지 읽지 말 것. 두 금기가 같은 가락으로 울렸다. 읽지 말 것. 응답하지 말 것. 받는 데서 멈추라는 것. 손을 보태지 말라는 것.

나는 첫 번째 금기를 이미 어겼다. 십일월 초, 나는 사서의 일지를 끝까지 읽었고, 그날 이후 음절이 따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읽었으므로 옮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금기는 — 아직 어기지 않았다. 나는 단말이 인쇄한 내일 자 시재를, 발표 전에 도착한 강등을, 받아 적기만 했다. 위로 올리지 않았고, 고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았다. 응답하지 않았다.

신경하는 응답했다. 묶음의 뒷장이 그 결과를 적고 있었다. 그는 빈 주파수가 보내오는 내일 자 전문을 견디지 못했다. 어느 밤 그는 송신 키를 눌렀다. 그러자 그가 보낸 응답이, 다음 날 그 빈 주파수에서 그에게로 되돌아왔다. 응답한 순간부터 그는 받는 자가 아니라 보내는 자였다. 내일을 송신하는 사람. 빈 주파수의 발신자가 그 자신이었다.

전신기의 명판에 한 줄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임자는 적어 두었다.

AUDITUR QUOD NON SONAT

울리지 않는 것이 들린다. 송신되지 않은 전문이 수신된다. 발표되지 않은 강등이 통지로 온다. 아직 누르지 않은 키가 이미 울린 소리로 돌아온다. 나는 그것이 내 단말의 일과 같은 말임을 알았다. 내 단말은 내일을 인쇄했다. 내가 아직 입력하지 않은 숫자를. 울리지 않은 것이, 이미 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혹은 분명했다. 응답하기. 내일 자 시재가 거짓이 되도록, 내가 위로 올려 막기. 강등을 고쳐 적기. 무너지는 환을 둑 안으로 되돌리기. 손을 보태 이 모든 것을 바로잡기. 받아 적기만 하는 자에게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유혹이었다 — 알면서 가만히 있으라니. 신경하도 그래서 키를 눌렀을 것이다. 막으려고. 그러나 응답은 막지 못했다. 응답은 그를 발신자로 만들었을 뿐.

나는 응답하지 않기로 했다. 묶음을 덮고, 받아 적기만 하는 자리로 돌아가기로. 그때 자료실의 낡은 구내 단말이, 꺼 둔 채였는데, 한 번 울었다. 수신 표시가 떴다. 보낸 곳 없는 내선(內線)에서 한 줄의 전문이 도착해 있었다.

전문은 짧았다. 응답 고맙다. 그리고 발신자 칸에는, 내 이름 석 자와 내 사번이 찍혀 있었다 — 내가 아직, 아무 키도 누르지 않았는데.

이튿날 오후, 자금부의 강민석 대리가 자료실로 내려왔다. 결재 서류를 핑계로 왔지만, 그는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고도 한참을 가지 않았다.

"김 선생은 여기 지하에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위에선 다들 그 얘기뿐이에요. 영업정지. 우리 회사도 명단에 있을 거라고."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강 대리는 입사 동기였다. 사번이 내 것과 두 자리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자료실로 발령 난 나와 달리 그는 자금부로 갔고, 그래서 늘 위층의 공기를 먼저 마셨다. 그가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작년에 결혼했고, 봄에 아이가 태어났고, 가을에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고 했다. 그 세 가지를 그는 한 문장으로 말했다 — 마치 그것이 이제 와선 셋이 아니라 하나의 무게인 것처럼.

"종금사들이 줄줄이 정지될 거래요. 한 곳이 막히면 다음, 또 다음.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꼭 누가 명단을 미리 적어 둔 것 같지 않아요?"

미리 적어 둔 명단. 나는 그 말에 등이 서늘했다. 그는 농담으로 했지만, 나는 그 명단을 본 사람이었다. 내일 자 시재표, 발표 전 강등 통지.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 한 곳이 막히면 다음, 또 다음 — 측량기수가 적은 그대로였다. 닳아 갈 다음 줄은 늘 비어, 다음 사람을 기다린다. 갱에서는 그것이 광부였고, 인사철에서는 나였고, 지금 강 대리가 말하는 명단에서는 — 회사 하나하나가 한 줄이었다.

그리고 강 대리는, 그 줄들 위에 자기 이름이 어디쯤 있는지 모른 채 떨고 있었다.

"김 선생은 안 무서워요?" 그가 물었다. "여긴 너무 조용해서. 위에선 전화통에 불이 나는데."

나는 무섭다고 답하지 못했다. 내가 무서운 것은 그가 무서워하는 것과 달랐다. 그는 회사가 명단에 들까 봐 무서웠다. 나는 그 명단을 누가 적고 있는지 알아서 무서웠다. 그리고 지금,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내 눈이 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 나는 그를, 아직 그어지지 않은 한 줄로 읽고 있었다. 닳아 갈 다음 줄. 그가 말을 할수록, 나는 그가 이미 어떤 장부의 어느 칸에 옅게 박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서워요." 결국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건 거짓이 아니었다.

그가 조금 안심한 얼굴로 웃었다. 같은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그는 서류를 두고 올라갔고, 계단을 오르는 그의 발소리를 나는 끝까지 들었다. 발소리가 사라진 뒤, 나는 그가 두고 간 결재 서류를 집었다. 자금부 인원 현황표였다. 영업정지에 대비해 부서별 인원을 집계한.

상단의 작성 일자를 보았다.

十一月 · 二十二日.

내일 자였다. 내가 아직 살지 않은 날에 작성된 인원표. 나는 자금부 합계 칸을 보았다. 그리고 어제 회람으로 돌던 오늘 자 인원과, 한 사람을 비교했다. 내일 자 표의 자금부 인원은, 오늘보다 정확히 한 명 적었다.

법칙은 더 이상 내 책상에 갇혀 있지 않았다. 인사철의 일곱 번째 줄은 자료실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인원표는 자금부의 일이었고, 내일 자였고, 이미 한 사람이 줄어 있었다. 나는 줄어든 한 명이 누구인지 표에서 찾을 수 없었다. 합계만 하나 적었을 뿐, 이름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방금, 계단을 올라간 발소리를 끝까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