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이십육일, 본사 청산준비반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청산에 대비해, 모든 계정을 촬영해 보존하라. 한 계정도 빠짐없이. 자료실 전체가 그 일에 매달렸고, 나는 단말과 판독기 앞에서 계좌 원장을 한 건씩 필름에 옮겼다.
처음에는 단순한 보존 작업으로 보였다. 사라질지 모르는 것을 미리 찍어 두는 일.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 나는 손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한 계정을 찍어 필름에 옮길 때마다, 위층 단말의 그 계정 상태가 '해지'로 바뀌었다. 처음엔 우연이라 여겼다. 내가 찍는 순서와 계정이 닫히는 순서가 같은 것이.
나는 시험했다. 명단의 다음 계정을 일부러 건너뛰고, 그 다음 것을 먼저 찍었다. 위층에서는, 내가 먼저 찍은 그 계정이 먼저 닫혔다. 건너뛴 계정은 열린 채 남았다. 순서는 우연이 아니었다. 보존이 곧 청산이었다. 찍어 두는 것과 비우는 것이 한 행위였다.
청산준비반은 '보존하라'고 했다. 그러나 보존된 것은 닫혔다. 측량기수가 재면 깊어졌듯이, 사서가 읽으면 갈라졌듯이, 나는 찍으면 닫았다. 필름은 계정의 사진이 아니라, 계정의 무덤이었다. 나는 회사의 계정을 하나하나 묻고 있었다 —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손을 멈추고 싶었으나, 멈추면 누군가 대신 찍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계속 찍었다. 명단은 길었다. 수천 개의 계정. 나는 그것을 묻고 또 묻었다. 명단의 끝에 다다랐을 때, 마지막 항목 앞에서 나는 멈췄다.
고객 계정이 모두 끝난 뒤, 명단의 맨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자료실 보존계정. 계좌번호 칸에는 숫자 대신, 내 사번이 적혀 있었다. 명의인 칸에는 — 김도경. 상태 칸은 아직 '대기'였고, 해지 예정일 칸에는 십이월 ██일이 박혀 있었다.
모든 계정을 찍어 묻는 명단은, 찍는 사람의 계정으로 끝나 있었다. 마지막 한 컷은, 내가 나를 찍는 컷이었다.
자료실 가장 깊은 보관함, 전임자 한성█의 미정리 유품 사이에서 나는 다 감긴 필름 릴 하나를 찾았다. 십일월 초 내가 걸었던 반쯤 노출된 그 필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끝까지 다 찍힌, 그의 마지막 완성 릴이었다. 라벨에는 그의 글씨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 '살아 있는 장부. 끝까지.'
나는 그것을 판독기에 걸었다. 첫 컷은 외채 원장의 한 면이었다. 단기 외화 차입 합계. 다음 컷도 같은 면이었다. 같은 장부, 같은 칸. 그러나 합계의 끝자리가 한 단위 커져 있었다. 다음 컷, 또 한 단위. 또 다음 컷, 또.
필름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붙드는 매체다. 한 번 빛에 박힌 상은 거기 고정된다. 그것이 사진의 약속이다. 그러나 전임자의 필름은 그 약속을 어기고 있었다. 같은 장부를 찍은 연속된 컷들에서, 숫자는 컷과 컷 사이마다 자라 있었다. 그는 자라는 장부를 찍은 것이 아니었다. 필름 위에서, 박제된 상 안에서, 숫자가 계속 자라고 있었다. 사진조차 그것을 멈추지 못했다. 빛에 박힌 뒤에도 수는 자랐다.

나는 알았다. 전임자가 무엇을 증명하려 했는지. '끝까지'라고 그는 라벨에 적었다. 그는 자라는 것을 끝까지 찍어, 멈추는 지점이 있는지 보려 했던 것이다. 갱의 바닥처럼, 부도 아래 등급처럼, 자람에 끝이 있는지. 릴은 길었고, 컷마다 수는 커졌고, 끝은 오지 않았다.
릴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면이 바뀌었다. 장부면이 아니었다. 카메라가 장부에서 돌아서, 자료실 자체를 찍고 있었다. 판독기와 보관함, 낮은 천장. 내가 매일 보는 그 방.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 판독기 앞에 한 사람이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한성█이 아니었다. 머리 모양도, 어깨선도, 입은 옷도 — 나였다. 오늘의 나. 지금 이 순간 판독기 앞에 앉은, 바로 이 자세의 나. 전임자의 마지막 컷은, 그가 사라지기 전에 찍은 것이 아니라, 오늘 누군가 내 등 뒤에 서서 찍은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판독기의 모터 소리, 보관함의 그림자, 낮은 천장. 나를 찍은 손은 몸을 남기지 않았다. 그것은 늘 그랬다 — 등대수의 빈 등탑에도, 측량기수의 빈 갱에도, 누구도 서 있지 않았다. 다만 기록만이 남았다. 찍힌 컷, 적힌 줄. '우리'는 몸이 아니라 기록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전임자의 종이 기록으로 돌아갔다. 그의 인계 서류, 업무 일지, 색인 카드. 나는 그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한 가지를 확인하려고. 그의 마지막 줄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그의 마지막 일지는, 끝나지 않았다.
문장 중간에서 멈춰 있었다. 마침표도, 다음 줄도 없이. 펜이 종이를 떠난 자리에 옅은 잉크 자국만 번져 있었다. 나는 그 끊김을 알아보았다. 사서의 일지도 그렇게 끝났다. 등대수도, 측량기수도, 전신수도 — 네 묶음이 모두 한 문장 중간에서 끊겼다. 그것은 우연한 중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명이었다. 기록자가 기록되는 자리로 넘어가는 순간, 문장은 거기서 끊긴다. 끝 문장이 없다는 것이, 그가 법칙의 안으로 들어갔다는 증거였다.
전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이 상자를 정리한 사람도, 이 기록을 수습한 '우리'도 아니었다. 그도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손 중 하나였을 뿐. 나처럼 읽었고, 나처럼 옮겼고, 나처럼 끊겼다.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을 나는 등불 아래 읽었다.
장부 아래에서 자라는 참 숫자를, 나는 이제 옮겨 적기로—거기서 끊겨 있었다. '옮겨 적기로—' 다음 글자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장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내가 며칠째 마음속에서 짓고 있던 문장이었다. 끝까지 읽고, 참 숫자를 보고, 이제 그것을 적기로 하는 — 내가 다가가고 있던 그 결심. 전임자의 문장은, 내 결심이 시작되려는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네 묶음은 왜 끝나지 않는가. 이제 알았다. 그것들은 끝날 수 없다. 끝 문장은 다음 독자가 쓰는 것이므로. 끊긴 문장을 이어 쓰는 순간, 이어 쓴 자가 다음으로 끊기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이 기록들이 대물림되는 방식이었다. 한 사람이 '옮겨 적기로—'에서 멈추면, 다음 사람이 그 문장을 완성하고, 완성한 대가로 자기 문장을 거기서 잃는다.
나는 펜을 들었다. 전임자의 끊긴 문장 다음 칸에, 다음 한 글자를 적을 수 있었다. 그 한 글자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적는 순간, 끊기는 사람이 그가 아니라 내가 된다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