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육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이틀이 남아 있었다.
일지가 적어 둔 다음 처리는 이관이었다. 여섯째 묶음을 상자에 넣어 상부로 보내는 일. 보존이 자료를 자료실 안에 두는 일이라면, 이관은 자료를 자료실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었다. 안에 두는 일과 밖으로 내보내는 일은 반대였으나, 일지에는 둘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반대인 두 일이 한 줄로 이어진다는 것이, 어딘가 이상하면서도 이상하지 않았다. 보존 완료, 그 아래 이관 완료. 보존이 끝나는 자리에서 이관이 시작되었고, 이관은 보존의 끝이 아니라 보존의 다음이었다.
빈 상자를 가져다 책상에 올렸다. 마분지 상자였고, 들 때 생각보다 가벼워 한 손이 위로 들렸다. 지난번 다섯 묶음이 들어갔던 것과 같은 종류의 상자였고, 밑바닥에 같은 결의 무늬가 있었다. 프나코틱 문고의 상자였다. 받는 이 없는 자료가 들어 있던 상자, 그리고 이제 여섯째 묶음이 들어갈 상자. 묶음을 들어 상자에 넣으려다, 넣는 일이 보존인지 이관인지 헷갈렸다. 상자에 넣는 일은 보존이기도 했고, 상자째 보내는 일은 이관이기도 했다. 넣는 손과 보내는 손이 같은 손이었다.
도경의 일지에, 비슷한 대목이 있었다. 본사에서 보존하라는 공문이 내려온 날, 도경은 보존이 곧 옮겨 적기이고 옮겨 적기가 곧 자람임을 알았다. 보존하라는 지시가, 자라게 하라는 지시였다. 그날 이후 도경의 자료실로 다른 회사의 상자들이 이관되어 왔다. 상자마다 다른 회사 기록 담당의 노트가 있었고, 노트마다 같은 문장이 같은 자리에서 끊겨 있었다. 법칙은 한 자료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 모이는 모든 자리에 있었다. 도경은 그 상자들을 받는 자리에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상자를 보내는 자리에 있었다.
받는 자리와 보내는 자리는 달랐다. 도경에게는 법칙이 상자에 담겨 들어왔으나, 내게서는 법칙이 상자에 담겨 나갔다. 도경의 자료실이 법칙이 모이는 자리였다면, 내 자료실은 법칙이 퍼져 나가는 자리였다. 상부로 보낸 다섯 묶음은 지금쯤 상부의 어느 책상에 놓여 있을 것이었다. 그 책상에 앉은 누군가가, 부임한 다음 날의 나처럼, 받는 이 없는 자료를 펴 보고 있을 것이었다. 내가 보낸 자리가, 누군가의 부임 다음 날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해 봄에는 그런 상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무너진 회사마다 기록이 남았고, 남은 기록은 어디론가 이관되었다. 청산하는 회사의 장부가 살아남은 회사로, 살아남은 회사의 장부가 더 큰 회사로, 더 큰 회사의 장부가 결국 한 자리로 모였다. 모이는 동안 장부 아래의 수는 줄곧 자랐다. 한 회사가 무너질 때 한 자료실이 법칙을 받았고, 그 자료실이 무너질 때 다음 자료실이 받았다. 나라 전체가 한 권의 묶음처럼 한 자리로 옮겨 적히는 중이었고, 옮겨 적히는 동안 그 한 권의 끝자리가 자랐다. 내 상자 하나는 그 큰 옮겨 적기의 한 칸이었다. 내가 보내지 않아도 그 옮겨 적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었으나, 내가 보내면 그 한 칸만큼 더 옮겨졌다.
상자에 묶음을 넣고, 이관표를 쓰기 시작했다. 보내는 자료의 이름, 받는 곳, 보내는 이. 받는 곳 칸에 상부 부서명을 적었다. 보내는 이 칸에 내 이름을 적었다. 받는 이 칸은, 이관표에 없었다. 받는 이 없는 자료였으므로, 받는 이 칸이 처음부터 없는 양식이었다. 받는 이 없는 자료를 받는 곳으로 보내는 일이, 받는 이 없이 이루어졌다. 보내는 이만 있고 받는 이가 없는 발송이, 받는 이만 있고 보낸 이가 없던 전신수의 수신과, 거꾸로 같은 모양이었다.
거꾸로 같다는 것을 적고 나서 알았다. 전신수는 보낸 이 없는 전문을 받았고, 나는 받는 이 없는 자료를 보냈다. 한쪽은 받기만 있고 보냄이 없었으며, 다른 쪽은 보냄만 있고 받음이 없었다. 두 자리를 맞붙이면, 보낸 이 없는 보냄과 받는 이 없는 받음이 한 줄로 이어졌다. 내가 보낸 자료는 보낸 이 없는 자료가 되어 상부에 도착할 것이었다. 상부의 책상에서 그것을 받는 누군가는, 보낸 이 칸이 빈 상자를 받을 것이었다. 내 이름을 보내는 이 칸에 적었으나, 그 이름도 도착하는 동안 옅어질 것이었다. 보내는 이 칸의 내 이름이, 도착할 무렵에는 받는 이 빈칸처럼 비어 있을 것이었다.
이관이 보존의 다음이라면, 보존이 번짐이었듯 이관도 번짐이었다. 다만 보존은 한 자리에서 자라게 하는 번짐이었고, 이관은 자리를 옮겨 가며 번지는 번짐이었다. 보존은 묶음을 두껍게 했으나, 이관은 묶음을 여러 자리로 퍼뜨렸다. 보존이 깊이를 늘리는 일이었다면, 이관은 넓이를 늘리는 일이었다. 한 자리에서 깊어지던 것이, 이관을 거치며 여러 자리에서 동시에 깊어졌다. 한 자료실에서 자라던 것이, 상자에 담겨 다른 자료실로, 또 다른 자료실로 옮겨 가며 자랐다. 멈추려고 한 자리에서 손을 떼어도, 상자가 다음 자리로 가면 거기서 다시 자랐다. 한 자리의 손을 멈추는 일로는, 여러 자리로 퍼진 자람을 멈출 수 없었다. 멈출 손은 하나인데, 자라는 자리는 상자가 가는 만큼 늘어났다. 보존을 멈출 수 없었듯, 이관도 멈출 수 없었다. 이관표에 도장이 찍힐 것이었고, 도장이 찍히면 보내야 했으며, 안 보내면 직무 불이행이었다.
상부로 다섯 묶음을 보냈을 때, 나는 빈자리가 한 자리 옮겨 갔다고 적었다. 이제 여섯째 묶음을 마저 보내면, 다섯째 책상은 완전히 비고, 빈자리는 한 자리가 아니라 책상 전체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책상이 비어도 자리는 남았다. 보존하는 자리는 책상이 아니라 자리였으므로, 책상이 비어도 나는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었다. 묶음을 다 보낸 뒤에도, 나는 보낸 자리에 앉아, 보낸 자료가 다른 자리에서 자라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었다. 보내는 일이, 보는 일을 끝내 주지 않았다.
이관표를 다 쓰고, 상자 뚜껑을 덮었다. 덮기 전에, 여섯째 묶음의 끝 장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았다. 끝 장의 마지막 줄이, 단말 본문 칸의 깜빡이던 줄과 같은 줄이었다. 단말이 받던 내 사번이, 묶음의 끝 줄에 옮겨 와 있었다. 받던 것이 보내지는 자리에 와 있었다. 받는 이 없이 받던 사번을, 받는 이 없이 보내게 되었다. 뚜껑을 덮자, 단말의 깜빡임이 한 박자 멈추는 듯하다가, 다시 깜빡였다. 상자 안에 든 줄과 단말에 뜬 줄이, 뚜껑을 사이에 두고 같은 박자로 깜빡이고 있었다. 보내도 단말은 멈추지 않았다. 보낸 자료가 자료실을 떠나도, 그 자료를 받던 단말은 자료실에 남아, 떠난 자료의 줄을 계속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