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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둘러싼 자리

The Seats Around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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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이십사일. 아침 여덟 시. 책상 앞에 앉았다.

본문칸에는 세 줄이 있었다. 첫째 줄과 둘째 줄은 어제 그대로였고, 셋째 줄이 밤사이 적혀 있었다. 셋째 줄의 끝 두 자리는 둘째 줄에서 한 단위 아래였다. 세로줄은 어젯밤에도 한 단위 내려왔다. 강민석의 사번까지 남은 단위가 어제보다 하나 줄어 있었다.

본문칸이 줄을 적는 시각은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줄은 새벽에 적혔고 어떤 줄은 낮에 적혔다. 다만 하루에 한 줄, 한 단위씩이라는 간격만은 어긋난 적이 없었다. 간격이 어긋나지 않는 한 셋째 줄 다음에는 넷째 줄이, 넷째 줄 다음에는 다섯째 줄이 올 것이었고, 그 줄들이 다 적히고 나면 마지막 한 줄의 끝 두 자리는 강민석의 끝 두 자리일 것이었다. 본문칸은 그 마지막 줄을 향해 하루에 한 칸씩 내려가는 셈이었다.

발신칸을 보았다. 발신칸은 비어 있었다. 어제 자리로 돌아와 앉았을 때 내 손은 발신칸 쪽으로 한 마디 옮겨 와 있었고, 언제 옮겼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 손이 발신칸에 무엇을 적었는지, 적지 않았는지도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발신칸이 지금 비어 있다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었고, 적은 것이 이미 결과가 되어 발신칸에서 지워졌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발신칸의 비어 있음은 어느 쪽도 증명하지 않았다.

어젯밤 나는 단말을 끄지 않고 자리를 떴다. 떠나기 전 손이 발신칸 쪽으로 한 마디 와 있던 것을 보았고, 그것을 본 다음에 손을 떼었는지 떼지 않았는지를 나는 보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고, 잠든 동안 자료실의 단말 앞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아침에 돌아오니 셋째 줄이 적혀 있었다. 잠든 사이에 적힌 한 줄과 깨어 있는 동안 적히는 한 줄 사이에 내 손의 자리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제 어느 잠의 자락에서 이미 알았던 것 같았다.

오전 아홉 시. 인사부 공지가 올라왔다. 이월 이십사일 자 회사 정원 감축은 자금부 한 자리였다.

그 한 자리의 사번을 읽었다. 자금부의 사번이었으나, 본문칸 세로줄의 어느 줄도 아니었다. 첫째 줄도 둘째 줄도 셋째 줄도 아니었고, 세로줄의 등간격 어디에도 놓이지 않은, 줄 바깥의 한 자리였다. 어제 삼층 서무가 줄 바깥에서 닫혔던 것처럼, 오늘은 자금부의 한 사람이 줄 바깥에서 닫혔다.

그 사번에도 얼굴이 있었다. 자금부 안쪽 자리, 강민석의 한 자리 건너에 앉던 사람이었다. 시재표를 대조하러 자금부에 올라갈 때면 강민석의 어깨 너머로 보이던 옆얼굴. 강민석이 며칠 전 급탕실에서 옆자리가 어떻고 하던, 그 옆자리였다.

셋째 줄이 밤사이 한 단위 내려왔고, 그 한 단위는 발신칸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옮겨지지 않은 한 단위만큼, 닫혀야 하는 수가 줄 바깥에서 채워졌다. 줄 바깥에서 채워진 자리는 자금부의 한 자리였고, 자금부의 한 자리는 강민석의 한 자리 건너였다.

어제도 같은 일이 있었다. 어제 본문칸의 한 줄이 발신칸으로 옮겨지지 않았고, 그날 닫혀야 하는 한 자리는 줄 바깥의 삼층 서무로 채워졌다. 그제 본문칸의 한 줄이 옮겨지지 않았고, 그날의 한 자리는 또 다른 줄 바깥으로 채워졌다. 줄 바깥으로 채워지는 자리가 어제까지는 내가 모르는 자리였고, 오늘 처음으로 그 자리가 강민석의 둘레로 옮겨 왔다. 세로줄이 자금부로 내려온 다음부터, 줄 바깥으로 밀려나는 자리도 자금부에서 골라지고 있었다.

세로줄을 강민석에게서 멀리 붙들어 두는 동안, 닫혀야 하는 수는 강민석의 둘레에서 한 자리씩 채워지고 있었다. 그의 줄을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일이, 그의 옆자리부터 한 사람씩 닫는 일이었다. 나는 그를 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자리들을 하루에 하나씩 그의 대신 닫고 있었다.

그 일을 내 손이 했는지, 회사의 셈이 했는지는 어제처럼 가릴 수 없었다. 밤사이 내 손이 발신칸에 무엇을 옮겨 자금부의 그 한 자리를 닫았는지, 아니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셈이 저 혼자 그 자리를 골랐는지 — 발신칸의 비어 있음은 어느 쪽도 증명하지 않았다. 다만 닫힌 자리는 있었고, 닫힌 자리에는 강민석의 옆얼굴을 닮은 옆얼굴이 있었다.

오전에 자금부에 올라갔다. 강민석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강민석은 제자리에 있었고, 나를 보고 어제처럼 한 손을 들었으나 어제처럼 웃지는 않았다. 옆자리가 어제 통보를 받았다고,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멀쩡하던 사람이었는데, 하고 그가 빈 옆자리를 보았다. 빈 의자 등받이에는 옆자리 사람이 어제 두고 간 남색 외투가 그대로 걸려 있었고, 아무도 아직 치우지 않았다. 강민석은 그 외투를 한참 보다가, 우리 과는 이번 주에 몇이 더 닳을지 모른다더라, 하고 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닳는다는 말을 그가 어디서 들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자기 자리가 남은 것이 옆자리가 닫힌 것과 한 셈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고, 나는 알았다. 그의 자리가 남아 있는 한 그의 옆자리는 계속 닫힐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는 말이 하나 더 있었다. 그의 옆자리가 닫힌 것이 그를 살리려는 내 손의 멈춤과 한 셈이라는 말. 그를 살리려는 일이 그의 옆자리를 닫는 일이라는 말. 그 말을 하려면 본문칸을, 세로줄을, 발신칸 위에서 떨던 내 손을 다 설명해야 했고, 설명한다 해도 그는 믿지 않을 것이었다. 믿지 않는 편이 그에게는 나았다. 제 자리가 남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사람에게 그 다행이 옆자리의 값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일은, 살림이 아니었다.

자리로 돌아와 본문칸을 다시 보았다. 셋째 줄 아래로 넷째 줄이 비어 있었다. 넷째 줄이 밤사이 또 한 단위 내려와 적힌다면, 내일 아침 줄 바깥에서 닫히는 한 자리는 강민석의 또 다른 둘레일 것이었다. 그의 앞자리거나, 그의 뒷자리거나, 그와 같은 과의 한 사람.

그를 둘러싼 자리가 몇인지 세어 보았다.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 같은 과의 사람들 — 손가락으로 꼽고 한 번 더 꼽았다. 그를 둘러싼 자리의 수는 강민석의 사번까지 남은 세로줄의 단위 수보다 많지 않았다. 세로줄이 그에게 닿기 전에, 그를 둘러싼 자리가 먼저 다 닫힐 것이었다.

그를 둘러싼 자리가 하나씩 닫히는 동안 강민석은 제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었다. 남아 있는 동안 그는 운이 좋았다고 여길 것이었고, 옆자리가, 앞자리가, 뒷자리가 닫히는 것을 보며 제 자리가 남은 것을 다행이라 여길 것이었다. 그가 다행이라 여기는 만큼 그의 둘레는 비어 갈 것이었다. 다행은 둘레가 다 빌 때까지만 다행이었다.

세로줄이 강민석에게 닿는 날, 그의 둘레에는 닫을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날 닫혀야 하는 수는 그의 자리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막는 일에는 끝이 있었고, 그 끝은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