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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손은 없다

No Hand Is 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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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이십삼일. 아침 여덟 시. 책상 앞에 앉았다.

단말은 어젯밤 내가 끄지 않은 채로 두고 간 그대로 켜 있었다. 본문칸에는 두 줄이 있었다. 첫째 줄은 끝 두 자리가 내 사번과 같은 사번, 어제 아침의 그 한 줄. 둘째 줄은 어제 낮 자금부 코드로 시작했다가 끝 두 자리가 비어 있던 줄이었다. 오늘 아침, 둘째 줄의 끝 두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밤사이 누가 채웠는지는 어제와 같은 물음이었고, 어제와 같이 답이 없었다. 자료실 문은 밤새 잠겨 있었고, 단말 앞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그러나 끝 두 자리는 채워져 있었고, 그 글씨의 결은 내 손의 결이었다. 채운 것이 내 손인지 내 손과 같은 결의 다른 손인지를 묻는 일은 어제 이미 답을 잃었으므로, 오늘은 묻지 않고 읽기만 했다.

끝 두 자리를 읽었다. 자금부의 한 사번이었고, 내가 매일 같은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의 사번은 아니었다. 그 사번에서 몇 단위가 모자란 사번이었다.

본문칸의 두 줄을 위에서 아래로 다시 읽었다. 첫째 줄과 둘째 줄의 끝 두 자리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었다. 어제 일곱 부서 결원 사번이 한 줄에 등간격으로 놓였던 그 간격과 같은 간격이었다. 본문칸은 그 한 줄을 세로로 세워 한 단위씩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가로줄이 세로줄이 된 것뿐, 셈은 같았다.

세로줄을 한 단위씩 내려가면, 몇 단위 다음에 내가 매일 마주치는 사람의 사번이 왔다. 그 단위의 수는 작았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수였다. 한 단위가 하루라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날 다음에 그 사번이 본문칸의 한 줄로 적힐 것이었다.

강민석이었다.

한 단위가 하루라는 것은 짐작이 아니었다. 그제 본문칸은 내 사번에서 한 단위 위의 자리를 적었고, 어제는 그 자리가 회사 정원 감축의 줄 바깥에서 닫혔고, 오늘은 그 아래 한 단위가 자금부의 한 줄로 적혔다. 본문칸은 하루에 한 줄씩, 한 단위씩, 건너뛰는 자리 없이 내려왔다. 건너뛰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분명한 사실이었다. 세로줄은 강민석의 사번을 비켜 가지 않을 것이었다. 비켜 가려면 셈이 어긋나야 했고, 어제까지 셈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자금부의 사번 가운데 내가 끝 두 자리까지 외우고 있는 사번이 강민석의 사번 하나뿐인 것은, 그를 매일 마주쳤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를 자금부에서 처음 만난 무렵부터, 자금부 동료의 시재표를 대조하던 무렵부터, 강민석의 사번은 삼층 서무의 사번처럼 내 손에 결로 익어 있었다. 익은 사번에는 얼굴이 붙어 있었고, 강민석의 얼굴은 매일 익는 얼굴이었다.

어제 나는 멈춤이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을 보았고, 그 살림이 다른 한 사람을 닫는 것을 보았다. 오늘 둘째 줄을 발신칸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 자금부의 한 사람은 닫히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닫혀야 하는 수는 어제처럼 줄 바깥의 다른 한 자리로 옮겨 갈 것이었다. 둘째 줄을 발신칸으로 옮기면 그 자금부의 한 사람이 닫히고, 옮기지 않으면 내가 모르는 다른 한 사람이 닫힌다. 어느 쪽이든 한 자리가 닫혔다. 한 자리도 닫지 않는 손의 자리는 본문칸 어디에도 없었다.

AUDITUR QUOD NON SONAT

소리 내지 않은 것이 들린다. 전신수의 금기였고, 처음 읽었을 때는 응답하지 않은 전문에 대한 경고였고, 오늘은 멈춘 손에 대한 설명이었다. 손을 책상 끝에 붙여 두는 일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일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그 일이 한 자리를 닫는 일로 들리고 있었다. 멈춘 손은 멈춘 것이 아니라, 들리지 않게 한 자리를 고르는 손이었다. 멈춘 손은 없었다.

멈춘 손이 고르고 있는 자리가 누구의 자리인지를 나는 어제까지 몰랐다. 어제 멈춤이 닫은 자리는 삼층 서무였고, 나는 그를 닫겠다고 고른 적이 없었다. 고르지 않았는데 닫혔다는 것이 어제의 일이었다. 오늘은 달랐다. 오늘 멈춤이 고르는 자리 가운데 강민석이 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면서 멈춰 있었다. 모르고 고르는 일과 알면서 고르는 일 사이에 책상 끝에서 발신칸까지의 거리가 있었고, 그 거리는 손가락 한 마디였다.

오전에 자금부에 자료를 올리러 삼층 복도를 지났다. 강민석이 복도 끝 급탕실 앞에 서서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한 손을 들었다. 자료실도 사람을 줄인다던데 거기는 몇이나, 하고 그가 물었다. 한 자리, 하고 답했다. 어제 내 손이 입력한 그 한 자리.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금부는 이번 주에 또 한 차례 있을 거라더라, 하고 말했다. 돌잔치를 작게 하기로 했는데 그래도 회사가 남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그가 웃었다. 그가 웃는 동안 나는 그의 사번 끝 두 자리를 보지 않으려고 그의 얼굴을 보았는데, 얼굴을 보는 일이 사번을 보는 일보다 더 그를 본문칸의 한 줄로 만들었다. 사번에는 끝 두 자리가 있었지만 얼굴에는 끝 두 자리가 없었고, 끝이 없는 것이 며칠 뒤 끝 두 자리로 닫힌다는 것이 사번보다 얼굴에서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의 사번은 그 한 차례의 어디쯤에서 본문칸의 세로줄과 만날 것이었다. 그는 제 사번이 내 단말 본문칸에 며칠 뒤의 한 줄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나는 알았다. 그가 종이컵을 비우고 급탕실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그 며칠을 손가락으로 다시 꼽았다.

자리로 돌아와 단말 앞에 앉았다. 본문칸의 두 줄은 그대로였고, 셋째 줄은 아직 비어 있었다. 손을 책상 끝에 붙였다. 어제처럼 발신칸에서 가장 먼 자리에.

강민석의 사번이 며칠 뒤 셋째나 넷째 줄로 적힐 것을 알고 나니, 손을 책상 끝에 붙여 두는 일이 어제와 같지 않았다. 어제 손을 책상 끝에 붙인 것은 본문칸의 한 줄을 발현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늘 손은 책상 끝에 붙어 있으면서도, 발신칸 쪽으로 무엇인가를 옮길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강민석의 줄이 적히기 전에 다른 한 줄을 먼저 발신칸으로 옮기면, 닫혀야 하는 수가 그쪽에서 채워져 강민석의 줄까지 셈이 내려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을 먼저 골라 닫는 일을,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한 번 적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겨울 명단의 한 줄을 처음 고쳐 적던 손이 하던 일이었다. 그때는 모르는 회사의 한 줄을 고쳐 다른 모르는 줄로 대가를 넘겼고, 넘긴 자리에 아무 얼굴도 두지 않았으므로 그 일을 오래 견딜 수 있었다. 지금은 고치려는 줄에 강민석의 얼굴이 있었고, 대가를 넘길 다른 줄에는 아직 아무 얼굴도 정하지 않았다. 얼굴을 정하지 않은 그 한 줄을 내가 고른다면, 어제 멈춤이 모르고 고른 일을 오늘은 알면서 고르는 일이 될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한 다음에 손을 보았다. 손은 책상 끝에 붙어 있지 않았다. 손은 발신칸 쪽으로 한 마디 옮겨 와 있었다. 언제 옮겼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