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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xt Rec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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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일은, 누군가 끝까지 읽지 않은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삼월 이십삼일. 나는 한 종금사의 지하 자료실로 발령받았다. 멀쩡한 부서도 사람을 줄이던 때에 자리를 옮겨 왔다는 것이 스스로도 이상했다. 인사 담당은 자료실에 결원이 하나 있다고만 했다. 전임자가 이달 초에 나갔다고. 어떻게 나갔는지는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사람이 자리를 비우는 까닭을 일일이 묻지 않았다. 한 자리가 비면 다른 한 자리가 그리로 옮겨 왔고, 옮겨 온 자리는 비운 자리의 까닭을 모른 채 일을 이어받았다.

자료실은 어두웠고, 천장 형광등은 한 칸이 늘 깜박였다. 책상이 다섯 있었다. 넷에는 사람이 있었고 — 사서장과 두 보조, 그리고 나 — 다섯째 책상이 비어 있었다. 전임자의 자리라고 했다. 책상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으나, 한쪽 서랍이 잠겨 있었고 그 위에 나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서장은 그 상자를 가리키며, 전임자가 정리하던 자료이니 마저 보존 처리하라고 했다. 받는 이가 없는 자료라고도 했다.

상자에는 정말 받는 이가 적혀 있지 않았다. 겉면의 발신 칸도, 수신 칸도 비어 있었다. 다만 안에는 묶음들이 있었다. 네 묶음은 오래된 일지였다 — 갱의 깊이를 재던 손, 등대의 물때를 적던 손, 한 단어가 음절로 갈라지던 손, 끊긴 전문을 받던 손. 다섯째 묶음은 비교적 새것이었고, 한 사람의 글씨로 끝까지 채워져 있었다. 전임자의 글씨일 것이었다. 그 묶음 첫 장에 색인 카드가 한 장 끼어 있었고, 거기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끝까지 읽지 말 것.

보존은 읽지 않고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알아야 어디에 어떻게 갈무리할지 정할 수 있었다. 나는 색인 카드의 경고를 보존 담당자의 당부쯤으로 여기고, 묶음들을 순서대로 폈다.

삼월 이십오일. 네 묶음을 먼저 읽었다. 넷은 서로 만난 적 없는 손들이었고, 다룬 것도 깊이와 물때와 음절과 신호로 달랐다. 그러나 넷의 마지막 장은 같은 모양으로 끝나 있었다. 한 문장이 중간에서 끊겼고, 끊긴 자리에 각자의 끝자리가 남아 있었다 — 측량기수는 마지막 측심의 깊이를, 등대수는 마지막 물때의 날짜를, 사서는 갈라진 문장의 마지막 음절을, 전신수는 끊긴 전문의 사번을. 넷의 끊김을 나란히 놓으니 한 줄로 읽혔다. 재면 깊어지고, 들면 차오르고, 읽으면 번지고, 응답하면 보낸다.

다섯째 묶음은 그 네 줄을 읽은 사람의 일지였다. 전임자는 네 묶음을 끝까지 읽었고, 읽은 다음 제 장부에 옮겨 적기 시작했으며, 옮긴 다음 명단에 응답했고, 응답한 끝에 제 둘레가 비는 것을 보았다. 일지의 마지막 무렵, 그녀는 다음에 이 묶음을 펼 사람을 위해 몇 가지를 적어 두고 있었다. 본문 칸은 단말 안이 아니라 어딘가의 받아쓰기라는 것. 발신 칸에 답을 적으면 본문 칸의 줄이 결과가 된다는 것. 그리고 받는 이 칸에 제 사번이 오면, 그것이 다음 사람에게는 받는 이 빈칸이 된다는 것.

나는 그 대목에서 한 번 멈췄다. 다음 사람이라는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 묶음을 손에 든 사람은 알 수밖에 없었다.

색인 카드는 끝까지 읽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보존이 내 일이었고, 보존하려면 끝까지 읽어 어디서 끝나는지를 알아야 했다. 나는 그것이 핑계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다섯째 묶음의 마지막 장을 폈다.

삼월 이십칠일. 다섯째 묶음의 마지막 줄은 끝의 한 자리를 비운 채 끊겨 있었다. 받는 이 칸에는 전임자의 사번이 적혀 있었고, 끝 한 자리가 옅어져 거의 지워질 듯했다. 비어 있지도 않았고, 다 적히지도 않은 한 자리였다. 끊긴 자리가 끊김이었고, 끊김이 서명이었다. 네 묶음이 각자의 끝자리로 끝났듯, 다섯째 묶음은 전임자의 사번으로 끝나 있었다.

나는 그 옅어진 한 자리를 들여다보았다. 자료를 보존하는 손은 빈칸을 채우는 손이 아니라 빈칸을 읽는 손이었다. 나는 그 한 자리를 채우려 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옅어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야 그 줄이 온전한 한 줄이 되는지를, 보존하는 버릇으로 읽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맞는 한 자리를 읽어 내는 순간, 그것이 내 사번의 끝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읽은 것뿐이었다.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옅어진 한 자리는 내가 읽어 낸 그 자리로 채워졌고, 끊겨 있던 다섯째 묶음의 마지막 줄이, 여섯째 묶음의 첫 줄로 이어졌다.

책상 위 단말이 깜박이며 켜졌다. 내가 켜지 않았다. 본문 칸에 한 줄이 적히기 시작했다. 첫 두 자리가 자료실의 코드였고, 끝 두 자리가 내 사번이었다. 나는 그 줄을 적지 않았다. 다만 옅어진 한 자리를 읽었을 뿐이었다. 읽은 것이 적힌 것이 되어 본문 칸으로 와 있었다. 읽으면 번진다던 그 한 줄이, 이제 나를 향해 번지고 있었다.

전임자는 네 묶음을 읽은 자였고, 다섯째 묶음을 적은 자였으며, 여섯째 묶음을 펼 누군가의 받는 이였다. 그 누군가가 나였다. 전임자가 읽었던 네 손이 묶음 속에서 읽히는 자리에 놓여 있었듯, 전임자도 이제 내가 읽은 다섯째 묶음 속에서 읽히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끝까지 읽은 자가 끝까지 읽히는 자가 된다는 것을, 나는 그 카드의 경고를 어긴 다음에야 읽었다.

나는 그 빈 상자를 다시 보았다. 받는 이가 없던 상자였다. 이제 그 상자에는 여섯째 묶음이 한 장 들어 있었고, 그 한 장의 받는 이 칸은 비어 있었다. 다음에 이 자리에 올 누군가를 위해, 나는 그 칸을 비워 두기로 했다. 비워 두는 일이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다섯째 묶음이 이미 가르쳐 주었으므로. 전임자가 내게 한 자리를 비워 남겼듯, 나도 한 자리를 비워 남길 것이었다.

자료실의 형광등은 여전히 한 칸이 깜박였다. 사서장과 두 보조는 각자의 책상에서 명단을 넘기고 있었다. 그들은 다섯째 책상에 새 사람이 와 앉았다는 것만 알았지, 그 사람이 무엇을 읽고 무엇을 읽혔는지는 몰랐다. 나는 비로소 전임자의 빈 책상이 왜 그렇게 깨끗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닫힌 자리는 처음부터 아무도 앉지 않은 자리처럼 깨끗했고, 그 위에 새 사람이 앉으면 자리는 다시 채워졌다. 채워진 자리는 다음 차례를 모른 채 일을 이어받았다.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 우리 가운데 하나였다. 다섯째 묶음을 끝까지 읽은 손이, 여섯째 묶음의 첫 줄을 받아 든 자리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