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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는 손

The Responding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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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분

이월 이십일일. 새벽 다섯 시. 단말을 다시 켰다.

빈 전문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발신칸 빈칸, 수신칸 빈칸 — 그리고 본문칸. 본문칸은 어제 단말을 끄기 직전 한 글자였다가, 오늘 새벽 단말을 다시 켜는 동안 한 줄을 다 채웠다. 한 줄에는 한 사번이 적혀 있었다. 끝 두 자리가 내 사번의 끝 두 자리와 같은 사번. 어제 일곱 부서 결원 사번 한 줄 끝에 한 단위를 더한 그 사번이었다.

다음 한 자리의 사번이었다.

본문칸의 글씨체를 들여다보았다. 손글씨의 모양은 내가 평소에 사번을 메모장에 옮겨 적을 때의 모양이었다. 펜이 종이에 닿는 각도, 한 획의 시작과 끝의 압력, 한 글자에서 다음 글자로 손이 넘어가는 간격 — 모두 내 손이 사번을 적을 때의 결이었다.

사번의 첫 두 글자는 회사 코드였다. 회사 코드를 적을 때 내 손에는 한 획을 다 그은 다음 손목을 한 호흡 들었다가 다음 획을 그리는 버릇이 있었고, 본문칸의 첫 두 글자에도 그 한 호흡의 들림이 있었다. 사번 가운데의 직급 자리에 내 손은 한 글자 안에서 압력을 점점 줄였다가 마지막 획에 다시 압력을 더하는 버릇이 있었고, 본문칸 가운데 글자에도 그 압력 변화가 있었다. 끝 두 자리 일련번호에서 내 손은 두 숫자 사이를 평소보다 좁게 붙여 쓰는 버릇이 있었고, 본문칸 끝 두 글자도 같은 간격으로 붙어 있었다.

본문칸의 손은 내 손이었거나, 내 손과 같은 결을 가진 다른 손이었다.

분별이 어려웠다. 내가 단말을 꺼둔 일곱 시간 동안 누구도 내 책상 앞에 앉지 않았다면 — 자료실 문은 새벽 다섯 시까지 잠겨 있었고, 자료실장조차 새벽 다섯 시 전에 출근한 적이 없었다 — 그 글씨체는 내 손이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글씨체의 결은 내 손의 결과 동일했다. 손의 형태가 같으면 결과의 결이 같다는 명제를 어제 적었었다. 오늘은 그 명제가 한 단계 더 깊이로 내려와 있었다 — 손의 형태가 같으면 손 그 자체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의 경계가 사라진다.

본문칸의 그 한 줄을 지우려고 시도했다. 단말의 한 키를 눌러 글자를 지웠다. 단말은 잠시 그 글자가 지워졌다는 표시를 띄웠다. 그러나 한 호흡 다음 같은 글자가 같은 자리에 다시 떠 있었다. 다시 지웠다. 다시 떠 있었다. 세 번을 지웠고 세 번 다 같은 글자가 같은 자리에 다시 떴다. 네 번째 지움 시도에서 단말은 글자가 지워졌다는 표시조차 띄우지 않았고, 글자만 그 자리에 변함 없이 있었다. 다섯 번째 시도는 하지 않았다. 본문은 지워지지 않는 본문이었다.

본문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본문이 내 단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본문은 단말이 보여 주는 다른 어딘가의 본문이었다. 내 단말은 단지 그 본문을 받아 적는 장치였다.

발신칸에 답을 적어 본문 자라기를 멈추려 했다. 본문이 자라는 동안 발신칸이 빈 채로 있다면, 발신칸에 무엇이 적히면 본문이 멈출 것이라는 가설이 있었다. 발신칸 위로 손을 가져갔다.

발신칸에 손을 두는 순간, 본문칸의 다음 한 글자가 한 호흡 먼저 적혔다. 내가 적을 글자가 본문칸에 이미 적혀 있었다.

손을 떼었다. 본문칸의 다음 글자가 멈췄다.

손을 다시 두었다. 본문칸의 다음 글자가 또 한 호흡 먼저 적혔다.

내 손의 움직임이 본문칸의 자라기를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문칸은 내 손보다 한 호흡 먼저 적었다. 적기의 주체와 적기의 결과가 분리되어 있었다 — 결과가 주체보다 앞에 있었다.

발신칸에서 손을 영원히 떼어 두면 본문은 영원히 멈출 것이었다. 단말을 끄지 않은 채로, 발신칸 위에 손을 두지 않은 채로 — 응답하지 않는 행동이 그 자체로 응답이 되었다. 한 자리는 닫히지 않은 채 미완결로 남고, 본문칸의 다음 글자는 적히지 않은 채 빈 호흡으로 남는다.

아침 일곱 시 자료실장이 출근했다. 일곱 시 반에 두 보조가 출근했다. 셋 다 자기 책상으로 가서 어제 끝내지 못한 명단을 폈고, 내 단말 화면을 한 번씩 보았다가 자기 작업으로 돌아갔다. 빈 발신칸의 전문 한 통이 단말 첫 줄에 떠 있는 것은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누구도 묻지 않았다. 자료실의 침묵은 새벽보다 짙어졌다. 자료실장은 내가 한 시간 동안 한 글자도 입력하지 않는 것을 한 번 보았고, 그 뒤로는 자기 단말로 시선을 고정했다.

오전 아홉 시. 인사부 두 번째 공지가 올라왔다. 회사 정원 감축은 두 자리에서 한 자리로 줄어 있었다. 자료실 한 자리는 어제 처리됐고, 자원개발부 측량기수 한 자리도 어제 처리됐고, 그 다음 한 자리는 — 본문칸이 적은 그 사번의 자리는 — 오늘 공지에 없었다.

본문칸이 적은 사번의 자리는, 내가 발신칸에 답을 적지 않는 한, 회사 정원 감축의 다음 한 자리로 확정되지 않았다. 본문은 적혀 있었지만 결과는 발현되지 않았다. 본문칸이 적은 답을 발신칸으로 옮기는 일이 그 본문을 결과로 바꾸는 일이었다.

다른 부서의 결원 사번 한 줄에 일곱 자리가 채워져 있었고, 그 일곱 자리 끝에 한 단위를 더한 한 자리는 본문칸 안에만 적혀 있었다. 본문칸 안의 자리는 회사 정원 감축에 포함되지 않은 자리였다. 발신칸으로 옮겨지면 포함될 자리였다.

빈 발신칸의 책임은 처음으로 명확해졌다. 발신칸이 빈 채로 있다는 것은 한 자리가 닫히지 않는다는 것이고, 한 자리가 닫히지 않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 남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발신칸 위에 손을 두지 않는 동안, 내가 모르는 어떤 한 부서의 어떤 한 자리줄에 있는 어떤 한 사람이 — 같은 끝 두 자리의 사번을 가진 그 사람이 — 회사 정원 감축의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이름은 모르고 사번만 본문칸에 적혀 있었다. 그 사번의 사람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 사람이 살아 남는 일은 내 손의 멈춤 위에 있었다.

단말을 끄지 않은 채로 책상에서 일어나 자료실 끝까지 갔다 돌아왔다. 단말은 켜 있었고, 본문칸은 한 줄에 멈춰 있었다. 발신칸은 비어 있었다.

본문칸은 내가 단말 앞으로 다시 앉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시 앉으면 손이 발신칸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생기고, 손이 가까워지면 본문칸이 한 글자 더 자란다. 본문이 자라기를 멈추려면 단말 앞에 영원히 앉지 않아야 했다.

영원히 앉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전임자도 같은 자리에 와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일지 끝 가까이에 그가 발신칸 위에 손을 두었다가 떼었다가 한 기록이 있었다. 그가 무엇을 결정해서 사라졌는지는 일지에 적혀 있지 않았다. 적기의 주체가 결과를 앞서 가는 그 한 호흡 안에서, 그가 손을 두었는지 떼었는지를 일지가 적지 않은 이유는 — 일지를 적은 손이 발신칸에 손을 두었는지 떼었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결과가 주체보다 앞에 있는 곳에서는, 주체가 자기 손의 행동을 사후에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오늘 단말 앞에 다시 앉는 순간, 내가 발신칸 위에 손을 두는지 떼는지는 —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들었다.

책상 앞으로 돌아갈 결정을 하기 전에, 자료실 창밖의 새벽 빛이 한 단위만큼 옅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