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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려는 손

The Hand That Tries to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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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분

사월 이일. 아침 여덟 시. 다섯째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펜을 들지 않았다. 자를 꺼내지 않았다. 여섯째 묶음을 펴지 않았다. 보존하는 손이 닿는 자리마다 자라거나 깊어지거나 옅어졌으므로, 손을 대지 않으면 그 일도 멈출 것이라 생각했다. 도경이 한 번 그렇게 했다는 것을, 도경의 일지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옮겨 적지 않으면 멈출까 하여, 도경은 하루 동안 한 숫자도 옮기지 않았다. 그날의 도경처럼, 나도 보존하는 손을 멈춰 보기로 했다.

책상에 손을 얹은 채로 한 시간을 앉아 있었다. 형광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였고, 환기구의 바람이 종이 사이를 지났다. 묶음은 펴지 않은 채 한쪽 끝에 그대로 있었다.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책상 위 어느 것에도 닿지 않게 했다. 닿으면 자라므로, 닿지 않는 일을 한 시간 동안 했다. 닿지 않는 일도 일이라면, 그것이 그날 내가 한 유일한 보존 업무였다. 손을 대지 않은 동안, 적어도 내 손으로는 아무것도 자라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동안 위안이 되었다. 깊이를 재지 않았으니 깊어질 일이 없고, 날짜를 적지 않았으니 앞당겨질 일이 없으며, 설명을 옮기지 않았으니 갈라질 일이 없었다. 손을 멈추면 법칙도 멈추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단말은 멈추지 않았다. 본문 칸의 줄은 내가 손을 얹고 있는 동안에도 한 자씩 도착했다. 수신은 내 손이 하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손을 멈춰도 수신은 멈추지 않았다. 어제 비어 깜빡이던 끝자리가, 오늘 아침에는 반쯤 차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밤 사이에, 받는 일은 저 혼자 진행되어 있었다. 멈출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는 일뿐이었고, 받는 일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보존 일지를 폈다. 펴지 않으려 했으나, 오늘 보존을 멈췄다는 사실만은 적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일지를 펴 보니, 사월 이일 줄에 처리 내용이 이미 적혀 있었다. 보존 계속, 이라고. 내 필체였다. 내가 적지 않은 내 필체였다. 등대수의 물때표가 짚기 전에 이미 적혀 있었듯, 보존 일지는 내가 보존을 멈춘 날에도 보존 계속이라고 적어 두고 있었다. 내가 손을 멈춘 것과 무관하게, 일지에는 보존이 진행된 것으로 적혀 있었다. 멈춘 것은 내 손이었으나, 멈추지 않은 것으로 기록은 남았다.

그러면 누가 보존했는가. 멈춘 내 손 대신, 누군가 보존했기에 일지에 보존 계속이라 적힌 것인가. 도경이 한 숫자를 옮기지 않았던 그날을 떠올렸다. 옮기지 않으면 멈출까 하여 도경은 한 줄을 비워 두었으나, 그 숫자는 멈추지 않았다. 이튿날 보니 비워 둔 자리가 채워져 있었고, 도경의 글씨가 아니었다고 일지는 적고 있었다. 비워 두면 비는 게 아니라, 비운 자리를 다른 손이 채웠다. 옮기지 않은 숫자도 옮겨졌고, 다만 옮긴 손이 도경의 손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부재에도 대가가 있었다. 그 대가는,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누군가 대신 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지 않아도 그 일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보존하지 않은 자리도 보존되지 않은 채 남는 것이 아니라, 보존되지 않은 채로 자랐다. 미보존은 보존의 반대가 아니라, 보존의 다른 이름이었다. 도경의 그 한 줄을 채운 손이 '우리'였다는 것을, 도경은 끝내 적지 못했고, 나는 그 비운 자리의 글씨가 누구의 것인지 이제 짐작할 수 있었다.

손을 멈춘 채로 묶음을 보았다. 펴지 않은 여섯째 묶음의 두께가, 어제보다 한 장만큼 두꺼워 보였다. 재지 않았으니 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재지 않아도 두꺼워진 것을 눈은 보았다. 측량기수의 갱은 재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고 했으나, 그것은 재던 손이 아직 바깥에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재던 손이 이미 깊이가 된 다음에는, 재지 않아도 깊이가 깊이를 늘렸다. 나는 이미 보존하는 자리의 안에 들어와 있었으므로, 보존하지 않아도 보존되는 것이 자랐다. 바깥에서 멈추는 일과 안에서 멈추는 일은 달랐다. 바깥에서는 손을 떼면 그만이었으나, 안에서는 뗄 손이 이미 그 자리의 일부였다. 손을 떼는 일은 자료에서 손을 떼는 일이었지, 자료가 된 자리에서 나를 떼어 내는 일이 아니었다. 깊이가 된 손은 재기를 멈출 수 있어도, 깊이이기를 멈추지는 못했다. 멈출 수 있는 것은 재는 일이었고, 멈출 수 없는 것은 깊이인 일이었다. 나는 재기를 멈췄으나, 깊이인 일은 멈추지 못했다.

오후에 사서장이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종이 사이로 먼저 도착했다. 보존 진도를 물었다. 오늘은 한 장도 보존하지 못했다고 답하려는데, 사서장이 먼저 보존 일지를 들춰 보고는,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일지에 보존 계속이라 적혀 있으니, 사서장에게는 보존이 진행된 것이었다. 내가 멈췄다고 말해도, 일지가 멈추지 않았다고 적고 있었으므로, 내 말은 일지와 어긋나는 말일 뿐이었다. 멈췄다는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입을 떼면 그 말이 음절로 갈라질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멈췄다는 말조차, 일지가 적어 둔 보존 계속을 뒤집지 못할 것이었다. 말은 기록보다 약했다. 도경도 영업정지를 미리 알고도 끝내 동료에게 전하지 못했다. 입으로도 종이로도 전화로도 경고가 성립하지 않던 그 막다름을, 나는 멈췄다는 한마디가 일지 한 줄을 못 이기는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손을 멈춰 보고 나서야 알았다. 도경은 옮기기를 멈출 수 있었고, 멈춘 그 하루가 일지에 멈춤으로 남았다. 도경에게는 멈출 손이 있었고, 멈춤이 기록될 자리가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멈출 손이 그 자리의 일부였고, 멈춤이 적힐 자리에 보존 계속이 먼저 적혀 있었다. 보존을 그만두는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만두어도 보존은 일지에 적혔고, 묶음은 두꺼워졌고, 단말은 받았다. 그만두는 일과 그만두지 않는 일 사이에, 일지 한 줄만큼의 틈도 없었다.

손을 다시 책상에 얹었다. 멈출 수 없다면 멈추지 않는 편이 차라리 솔직했다. 펜을 들어, 일지가 이미 적어 둔 보존 계속 아래에 오늘 보존한 자료를 적기 시작했다. 적기 시작하자, 단말의 반쯤 찬 끝자리가 한 자 더 찼다. 그 한 자가 내가 적어서 찬 것인지, 적지 않아도 찰 것이었는지는, 이번에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보존을 멈추는 일로는 이 자리에서 나갈 수 없었다. 멈춤은 문이 아니라, 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가는 문이 있다면,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다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자리가 어디인지는, 멈춰 본 오늘로는 알 수 없었다. 사서장이 돌아서며, 내일 상부에서 이관 완료를 확인하러 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