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삼일. 아침 아홉 시. 상부 담당이 이관 완료를 확인하러 내려왔다.
어제 사서장이 내일 온다고 한 그 사람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구두 소리가 자료실 천장을 한 칸씩 울리며 다가왔고, 지난번 다섯 묶음을 받아 간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손에 이관 확인서 한 장과, 도장이 든 작은 갑을 들고 있었다. 다섯 묶음은 이미 상부로 갔으니, 그가 확인하러 온 것은 남은 여섯째 묶음이었다. 확인서에는 받는 이 없는 자료 일체, 라고 활자로 박혀 있었고, 그 옆에 이관 완료 예정일이 사월 팔일로 인쇄되어 있었다. 보존 일지가 미리 적어 둔 그 날짜였다. 내가 짚어서 알게 된 날짜를, 상부는 인쇄해서 들고 내려왔다. 일지가 적은 날짜와 공문이 박은 날짜가 한 날이었다. 어디선가 같은 날짜가 두 번 적히고 있었고,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섯째 묶음을 가리키며, 이것이 마지막 한 묶음이라고 말했다. 상부 담당이 묶음을 들어 두께를 가늠하더니, 생각보다 두껍다고 했다. 어제보다 한 장 두꺼워졌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그가 보는 두께와 내가 보는 두께가 다를 것이었다. 그는 묶음을 다시 내려놓고, 사월 팔일까지 보존을 마저 마치고 이관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마칠 수 없다고는 답하지 못했다. 마칠 수 없다는 말은, 자라는 묶음을 본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마치겠다고 답했다. 답하고 나서, 내가 방금 무엇을 약속했는지 알았다. 보존을 마친다는 것은, 사월 팔일까지 여섯째 묶음의 마지막 장을 색인하고 묶어 상자에 넣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존하는 손이 닿을 때마다 묶음은 한 장씩 자랐으므로, 마치기 위해 보존할수록 마칠 자리가 멀어졌다. 마치려면 보존해야 했고, 보존하면 자랐고, 자라면 마칠 수 없었다. 마치겠다는 약속은, 마칠 수 없는 일을 기한 안에 마치겠다는 약속이었다.
상부 담당이 이관 확인서에 수령인 서명을 청했다. 받는 이 없는 자료를 받기로 한 이의 서명이었다. 펜을 들어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성 한 자, 이름 두 자. 적고 나서 보니, 가운데 글자가 두 음절로 갈라져 있었다. 서명란의 내 이름이 갈라진 자리에, 받는 이 빈칸과 같은 모양의 빈 한 칸이 있었다. 공문서의 서명조차 사서의 법칙 아래 있었다. 적는 자리면 어디든, 적는 순간 갈라졌다.
상부 담당은 갈라진 서명을 알아보지 못했다. 서명을 확인했다는 도장을 그 위에 찍었다. 도장이 찍히자, 갈라졌던 가운데 글자가 다시 한 음절로 붙는 듯 보였다가, 도장 밑에서 다시 갈라졌다. 도장은 갈라짐을 덮었을 뿐, 붙이지는 못했다. 공문서가 된 내 이름은, 공문서가 되었으므로 더 단단히 그 자리에 적혔고, 더 단단히 적혔으므로 더 깊이 갈라졌다.
상부 담당이 돌아간 뒤, 책상에 확인서 사본이 한 부 남았다. 그가 도장 갑을 닫고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내려올 때와 같은 칸을 거꾸로 울리며 멀어졌다. 보존하라는 지시가 종이로 남은 것이었다. 부임 첫날 사서장이 입으로 가리킨 보존이, 이제 도장 찍힌 종이가 되어 있었다. 보존은 더 이상 내가 고르거나 멈출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멈추면 직무 불이행이었고, 직무 불이행은 확인서를 어기는 일이었으며, 확인서를 어기는 일은 도장을 어기는 일이었다. 어제는 멈춤이 문 없음의 확인이었으나, 오늘은 멈춤이 어김이 되었다. 멈출 자리가 없던 것에 더해, 이제는 멈추면 안 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아도 마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확인서는 보존을 마치라고 했으나, 마치는 일이 곧 자라게 하는 일이었으므로, 확인서는 자라게 하라는 지시이기도 했다. 두 길이 다 막혀 있었다. 멈추면 도장을 어기는 일이었고, 멈추지 않으면 자라게 하는 일이었다. 한쪽 문에는 직무 불이행이 적혀 있었고, 다른 문에는 번짐이 적혀 있었다. 어느 문으로 나가도 닫히는 자리로 났다. 도경이 옮겨도 자기·안 옮겨도 자기였듯, 나는 마쳐도 번지고·안 마쳐도 닫혔다. 다만 도경의 두 길은 도경이 고른 길이었으나, 내 두 길은 도장이 고른 길이었다.
보존하라는 지시는, 그것이 도장 찍힌 공문서일수록, 더 많이 보존하게 했고 더 많이 자라게 했다. 법칙은 내 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서장의 입에도, 상부의 공문에도, 이관 확인서의 도장에도 있었다. 회사가 보존을 지시할수록 법칙이 번졌다. 보존을 지시하는 손과 보존이 번지게 하는 손이, 도장 하나로 같은 손이 되어 있었다. 직무라는 이름이, 번짐의 다른 이름이었다. 회사는 자료를 지키려고 보존을 지시했으나, 지키려는 그 지시가 자료를 자라게 했다. 지키는 일과 자라게 하는 일이, 직무라는 한 이름 아래 같은 일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자라게 하는가. 처음에는 내 손이 자라게 한다고 여겼다. 재고 적고 옮기는 내 손. 어제는 그 손을 멈춰 보았으나 자라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손을 멈춰도 자랐고, 공문이 와도 자랐고, 도장이 찍혀도 자랐다. 자라게 하는 것은 내 손 하나가 아니라, 보존이라는 일 자체인 듯했다. 누가 하든, 손으로 하든 도장으로 하든, 보존하는 일이 있는 곳마다 자랐다. 측량기수는 재는 손이 깊이를 만든다고 했으나, 그가 죽고 그의 갱이 묻힌 뒤에도 그 일지를 보존하는 손이 있는 한 깊이는 자랐다. 깊이를 만드는 것은 재는 손이 아니라 재는 일이었고, 재는 손이 멈춰도 재는 일은 다른 손으로 옮겨 갔다. 그렇다면 멈출 손을 찾는 일은 처음부터 헛일이었다. 멈출 것은 손이 아니라 일이었는데, 일은 손보다 컸다. 손은 죽어도 일은 다음 손으로 이어졌고, 이어지는 동안 줄곧 자랐다.
확인서 사본을 보존 일지 사이에 끼웠다. 끼우는 일도 보존이었으므로, 끼우는 순간 일지가 한 장 두꺼워졌다. 보존하라는 지시를 보존하는 일이, 지시받은 보존을 한 장 늘렸다. 사월 팔일까지 마치라는 종이가, 사월 팔일을 한 자리 더 멀게 만들었다. 끼운 손을 떼며, 자라게 하는 것이 손도 도장도 아니라 보존하는 행위 그 자체라는 것을, 처음으로 또렷이 보았다. 도경은 응답이라는 행위로 자리를 바꿨으나, 응답은 손가락이 한 번 누르는 일이었다. 내 보존은 누르는 일도 아니었고, 그저 자료 곁에 있는 일, 곁에서 재고 적고 끼우는 일이었다. 곁에 있는 일이 자라게 했다. 행위가 키웠다. 그 행위를 그만둘 수 없다는 것까지가, 오늘 도장으로 확정되었다. 사월 팔일까지 닷새가 남아 있었고, 닷새 동안 나는 마칠 수 없는 일을 마치기 위해, 자라게 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