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하라는 지시는, 종이 한 장으로 내려왔다.
십이월 이십구일. 본사 공문이었다. 영업정지된 회사들의 자료 일체를 자료실로 이관하고,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하여 보존하라. 도장이 찍혀 있었고, 날짜가 적혀 있었고, 문장은 건조했다. 보존. 다들 그 말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뜻으로 읽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다르게 읽었다. 보존한다는 것은 촬영한다는 것이었고, 촬영한다는 것은 옮겨 적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 옮겨 적힌 수는 자란다. 영업정지된 회사의 장부를 필름에 옮기는 일은, 그 닫힌 기록을 다시 살려 자라게 하는 일이었다. 보존은 지키는 일이 아니라, 잇는 일이었다. 청산된 것을 장부 아래에서 계속 자라게 하는 일.
십일월에 나는 이미 그 한 쌍을 보았다. 청산 전 모든 것을 찍으라는 지시. 닫는 일과 찍는 일이 한 행위였다. 이제 그 한 쌍이 회사 단위로 커져 돌아왔다. 보존하라는 지시는, 청산하라는 지시와 같은 종이였다. 다만 위층은 그것을 보존이라 불렀고, 법칙은 그것을 자람이라 불렀다.
무서운 것은, 이제 내게 종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도장 찍힌 지시. 나는 더 이상 몰래 읽는 사람이 아니라, 옮겨 적으라는 공식 명령을 받은 사람이었다. 법칙은 내 손을 빌리는 데에 이제 결재란까지 갖추었다. 나는 허락받은 손이었다.
공문을 다시 읽었다. 건조한 행정 문장 아래로, 익숙한 한 줄이 비쳤다. 재면 깊어지고, 들면 차오르고, 읽으면 번지고, 보존하면 자란다. 네 묶음의 문장에, 다섯 번째 토막이 붙어 있었다. 보존하면 자란다. 그 다섯 번째를 적은 것은, 본사도 위층도 아니었다.
첫 상자를 열었다. 영업정지된 어느 회사의 자료. 전표와 원장과 마이크로필름 릴들. 그 사이에, 낯익은 것이 하나 있었다. 결이 다른 종이 한 묶음. 그 회사의 기록 담당이 남긴 정리 노트였다. 첫 장을 펼치자, 내가 아는 글씨체는 아니었으나 내가 아는 문장이 거기 있었다. 끝까지 읽지 말 것. 나는 그 한 줄을 보며, 이것이 우리 회사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이관된 상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십이월 삼십일. 자료실 바닥에 영업정지사들의 상자가 줄지어 쌓였다. 나는 하나씩 열어 갔다. 회사마다 장부가 있었고, 장부마다 기록 담당이 있었고, 기록 담당마다 — 정리 노트가 있었다.
그 노트들을 펼치며 나는 같은 것을 거듭 보았다. 글씨체는 저마다 달랐다. 그러나 문장은 같았다. 끝까지 읽지 말 것. 적을 때마다 자라는 수. 한 문장의 중간에서 끊긴 마지막 장. 다른 회사, 다른 손, 다른 해. 그러나 같은 법칙이었다. 네 묶음과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기록이 있는 곳마다, 장부 아래에서 같은 수가 자라고 있었다.
한 상자 밑바닥에서, 결이 익숙한 나무 상자가 나왔다. 받는 이 빈칸. 내 책상 아래 다섯 번째 묶음 상자와 같은 결, 같은 빈칸. 회사가 다른데 상자가 같았다. 프나코틱의 흔적은 한 자료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록이 모이는 모든 자리에 있었다. 나는 특별하지 않았다. 선택받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거대한 셈의 한 매듭일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환란의 크기를 다르게 보았다. 신문은 그것을 경제의 붕괴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장부 아래에서 동시에 자라던 참 숫자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온 일이었다. 나라 전체가, 한 권의 거대한 묶음이었다. 그리고 그 묶음에도, 끝까지 읽으면 안 되는 마지막 장이 있을 것이었다.
다른 기록 담당의 노트는, 내 것과 같은 자리에서 끊겨 있었다. 한 문장의 중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상자는 말하지 않았다. 빈 책상이 되었을 것이다. 옮겨 적히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내 노트의 마지막 장이 어디일지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상자 속 한 회사의 직원 명단을 펼쳤을 때, 이름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글자들이 음절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 이름이 두 토막으로, 두 토막이 부도 아래 이름 없는 칸으로 미끄러졌다. 명단이 분절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갈라진 자리들은, 내가 아는 한 칸 — 부도 아래, 이름 없는 등급의 칸 — 으로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명단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십이월 삼십일일. 한 해의 마지막 날, 나는 이관된 명단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영업정지사들의 직원 명단. 이름과 직급과 사번이 줄지어 적힌 종이들. 그러나 정리할수록, 이름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 이름이 음절로 갈라졌다. 김이라는 성이 ㄱ과 ㅣㅁ으로, 다시 자모로. 갈라진 음절들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명단의 칸과 칸 사이, 줄과 줄 사이로. 그리고 그 미끄러진 자리에는, 내가 아는 칸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도 아래, 이름 없는 등급의 칸. 일찍이 등급표에서 보았던 그 칸이었다. 그때 칸은 비어 있었다. 이제 그 칸이, 갈라진 이름들로 차오르고 있었다.

사람은 먼저 회사를 잃고, 다음에 이름을 잃었다. 짐을 싸 나간 사람들이 건물에서 사라진 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이 음절로 풀리고, 음절이 자모로 풀리고, 자모가 마침내 이름 없는 칸의 한 수가 되었다. 사람에서 이름으로, 이름에서 토막으로, 토막에서 수로. 법칙은 사람을 그렇게 한 단계씩 장부 아래로 내려보냈다.
나는 깨끗한 명단을 지키려 했다. 갈라지기 전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온전히 옮겨 두려고. 그러나 옮기는 족족 더 갈라졌다. 보존하면 자란다고 했다. 명단도 그러했다. 보존하면 갈라졌다. 내 손이 닿는 종이마다, 이름이 한 겹씩 더 풀렸다. 나는 이름을 지키는 손이 아니라, 이름을 푸는 손이었다.
명단의 한 줄에서, 갈라지는 방식이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온전했다. 그러나 그 옆 이름들이 풀리는 속도로 미루어, 그 이름이 다음 차례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강. 민. 석. 세 글자가 아직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세 글자가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었다.
강민석의 이름이 풀리기 시작했다.
일월 일일. 새해 첫날, 자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만 명단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제 다음 차례라 짚었던 그 이름이, 오늘 갈라지기 시작했다. 강민석. 강과 민과 석이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ㄱ이 먼저, 그 다음 ㅏ, 그 다음 ㅇ. 다른 이름들과 똑같이, 음절로, 자모로. 그가 아는 그의 이름이, 이름 없는 칸을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다른 이름들은 글자였다. 이 이름은 얼굴이었다. 아이 사진과 머그컵을 담은 작은 상자. 원망하지 않던 눈. 며칠 전 그가 들고 지나간 그 작은 상자가, 이제 세 글자로 갈라져 한 수가 되려 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명단을 정리할 때처럼 가만히 볼 수 없었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단말로. 발신칸이 빈 채 깜빡이고 있었다. 한 글자만 채우면, 갈라지는 이름을 붙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강. 민. 석. 세 글자를 다시 붙여 적기만 하면. 그것이 응답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응답하지 마시오. 끝까지 읽지 말 것. 전신수가 받은 경고를, 전임자가 남긴 경고를 나는 알았다. 그러나 갈라지는 것이 강민석의 이름일 때, 그 경고들은 처음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내 손끝이 발신칸 위에 멈췄다. 한 글자. 한 글자면 된다고.
나는 손을 떼었다. 떼었지만, 알았다. 떼는 일은 한 번뿐이라는 것을. 다른 이름이었다면 영영 떼고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 다 풀리기 전에, 나는 다시 그 칸 앞에 앉을 것이었다. 물음은 더 이상 "응답할 것인가"가 아니었다. "언제 응답할 것인가"였다. 그 물음은 거기서, 손끝이 빈 칸 위에 멈춘 채로 닫혔다.
손끝을 거두고 나는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 응답 대신, 정리. 책상 위에 네 묶음과 이관된 노트들과 내 정리 노트를 함께 펼쳤다. 갈라지는 이름을 붙들 수 없다면, 적어도 한자리에 모으기라도 하려고. 그러나 그것들을 한 장부에 모으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 모으는 일은 읽는 일이 아니라 옮기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읽는 자가 아니었다. 옮기는 자가 되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