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한 다음 날, 나는 답을 받으러 왔다.
일월 오일. 어제 나는 발신칸에 강민석 이름의 ㄱ을 눌렀다. 무언가가 보내졌고, 그 자리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답은 다음 사람이 받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적었다. 그러나 다음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고, 그래서 답은 나에게 먼저 왔다.
단말을 켰다. 내일 자 명단을 열었다. 강민석의 회사 이름이 있던 자리를 먼저 보았다. 이름은 다시 온전했다. 강과 민과 석이 붙어 있었다. 어제까지 음절로 갈라지던 그 이름이, 오늘은 한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명단에서 그의 줄은 지워져 있었다. 살아남은 자리였다.
나는 잠깐, 안도라고 부를 뻔한 것을 느꼈다. 응답이 그를 구한 것이다. 막 그렇게 생각하려는데, 시선이 한 칸 아래로 미끄러졌다.
강민석의 이름이 있던 자리 바로 아래, 다른 줄 하나가 갈라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제까지 온전하던 이름이었다. 오늘 처음, 그 이름의 끝 글자가 음절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강민석의 이름이 돌아온 만큼, 정확히 그만큼, 옆줄이 풀리고 있었다.
나는 두 줄을 번갈아 보았다. 한 줄은 닫혔고, 한 줄은 열렸다. 닫힌 양과 열린 양이 같았다. 마치 한 자리에서 빠진 무게가 사라지지 않고 옆자리로 옮겨 간 것처럼. 응답은 구함이 아니었다. 응답은 자리바꿈이었다. 나는 강민석의 줄을 지운 것이 아니라, 그의 몫을 옆 사람에게 옮겨 적은 것이었다.

장부 아래의 총합은 줄지 않았다. 한 번도 줄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은 그 총합 안에서 누가 어느 줄에 앉을지를 바꾼 것뿐이었다. 살린다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옮긴다는 말이 맞았다. 나는 여전히 옮겨 적는 자였고, 이번에는 사람을 옮겨 적었다.
옆줄의 이름은 아직 다 풀리지 않았다. 끝 글자 하나가 떨어졌을 뿐, 나머지는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끝까지 읽으면, 내가 누구를 강민석 대신 그 자리에 앉혔는지 알게 될 것이었다. 손가락을 화면 위로 가져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알았다 — 끝까지 읽는 일이 곧 그 자리를 확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읽으면 번진다. 아직 한 글자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한 글자 앞에서, 어제처럼, 멈췄다.
어제 나는 한 글자 앞에서 멈췄다. 오늘, 그 글자는 내가 읽지 않았는데도 떨어져 있었다.
일월 육일. 단말을 켜기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멈추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어제 발신칸을 누른 순간 그 자리는 이미 정해졌고, 내가 끝까지 읽지 않은 것은 다만 내가 그 이름을 모른 채로 남고 싶었다는 뜻일 뿐이었다. 읽지 않아도 자리는 채워진다. 나는 그 사실을 어제의 망설임 위에 한 줄로 적어 두었어야 했다.
명단을 열었다. 강민석의 줄은 어제처럼 지워진 채였다. 그 아래, 어제까지 끝 글자 하나만 떨어져 있던 이름은, 오늘 온전한 한 사람으로 닫혀 있었다. 떨어졌던 글자가 도로 붙은 것이 아니라, 나머지 글자들이 그 떨어진 자리로 끌려와 새 이름 하나를 이룬 것이었다. 한 사람이 거기 앉아 있었다.
나는 어제 자 출력본을 서랍에서 꺼내 오늘 자 옆에 놓았다. 강민석의 회사가 졌어야 할 결제 불능의 자릿수를, 어제는 그의 줄에서 읽었다. 오늘 그 자릿수는 그의 줄에 없었다. 대신 옆줄에 있었다. 끝자리부터 한 칸씩, 어제 강민석의 줄에서 빠져나간 그만큼이, 옆줄에서 자라 있었다. 빠진 무게와 자란 무게가 같았다. 소수점 아래까지 같았다.

장부 아래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처음 상자를 받았을 때부터 그러했다. 적을 때마다 자라던 그 수는, 이제 내가 한 줄을 닫으면 다른 줄에서 자랐다. 자라는 자리를 옮길 수 있을 뿐, 자라는 것 자체를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강민석을 살린 것이 아니라, 그의 몫을 옆 사람의 등에 옮겨 적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 사람은, 어제까지 아무 위험도 없던 온전한 이름이었다.
살린다, 라는 말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옮긴다, 라는 말이 그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어제 강민석의 이름이 옆줄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도로 앉은 것처럼.
옆줄의 이름은 이제 다 읽혔다. 나는 그것을 소리 내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었지만, 눈은 이미 끝까지 읽은 뒤였다. 어디선가 본 이름이었다. 이관된 상자들 가운데 한 회사의 명부에서였는지, 강민석이 언젠가 지나가며 말한 누구였는지, 아니면 내가 다섯 번째 묶음을 정리하며 스쳐 지난 한 줄이었는지.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자리는 이제 내가 정한 것이었다.
나는 어제 안도라고 부를 뻔한 것을 떠올렸다. 그 안도가 누구의 몫을 대가로 한 것인지, 나는 어제는 몰랐고 오늘은 알았다. 그러나 정작 알아야 할 것 — 내가 강민석을 살린 것이 옳았는지, 옆 사람을 데려간 것이 그른지 — 그것만은, 장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누구를 살렸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 그러나 장부는 살린 자와 데려간 자를 같은 잉크로 적는다.
일월 칠일. 사흘 치 명단을 책상에 펼쳤다. 오일, 육일, 칠일. 강민석의 줄과 옆줄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어느 쪽이 먼저 움직였는지를 찾으려 했다. 강민석의 자릿수가 먼저 빠지고 옆줄이 뒤따라 자란 것인지, 아니면 옆줄이 먼저 자라고 강민석이 그 덕에 비워진 것인지. 원인과 결과를 가르면,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를 수 없었다. 두 줄의 증감은 같은 날짜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크기로 일어나 있었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이 없었다. 등대수의 물때 같았다 — 잰다고 물이 차는 것인지, 물이 차서 재어지는 것인지, 일지 어디에도 그 순서는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일어난 일을 읽을 수 있을 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읽을 수는 없었다.
옆줄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어제 끝까지 읽어 버린 그 이름. 나는 그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관된 상자들의 명부를 뒤졌다. 거기 있었다 — 영업정지된 한 회사의 자금부, 강민석과 같은 직급, 같은 연차. 아이가 있는지 대출이 있는지 집이 있는지, 그런 것까지는 명부에 없었다. 그러나 강민석에게 있던 것이 그에게도 있으리라는 것은, 굳이 적혀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자금부 직원의 자리에 다른 자금부 직원을 앉힌 것이었다. 둘은 닮아 있었다. 닮은 두 줄 가운데 하나를 골라 닫고 하나를 열었다. 무엇을 근거로 골랐는가. 강민석은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이었고, 옆 사람은 내가 이름을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아는 이름이 모르는 이름을 밀어냈다.
만약 옆 사람이 처음부터 떨어질 줄이었고 강민석의 짧은 면제가 오히려 어긋난 것이었다면, 나는 어긋난 것을 바로잡은 셈이 된다. 만약 강민석이 떨어질 줄이었다면, 나는 멀쩡한 한 사람을 그 자리에 끌어다 앉힌 것이 된다. 둘 중 어느 쪽인지를, 장부는 적지 않는다. 장부는 합이 같다는 것만 적는다. 합이 같은 한, 누가 그 합을 지든 장부에게는 같은 일이다.
알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결국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순간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다. 알 수 없다면 — 알아낼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다시 한 번 응답해 보는 것. 옆 사람의 줄에 손을 대 보면, 그 무게가 또 어디로 옮겨 가는지 보면, 법칙이 어느 줄을 본래의 자리로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 생각을 적지 않으려고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펜을 내려놓는다고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어제 한 글자 앞에서 이미 배운 참이었다. 손은 이미, 묻고 있었다. 한 번 더 누르면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