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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정지의 리듬

The Rhythm of Susp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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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은 동기였다. 같은 해에 들어와, 같은 신입 연수를 받고, 한동안 같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십이월 이십일. 그날 아침 강민석이 내 자료실로 내려왔다. 위층 자금부의 공기가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말했다 — 회사가 위태롭다는 소문, 콜시장에서 하루치 돈을 못 구한다는 말, 영업정지가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평소처럼, 제 살림 이야기로 옮겨 갔다. 작년에 얻은 아이, 지난봄에 무리해서 들어간 집, 아직 한참 남은 대출.

나는 그의 말을 두 겹으로 들었다. 위 겹에서는 동기의 걱정이었다. 아래 겹에서는, 어제 다섯 번째 묶음 맨 아래 장에서 미리 읽은 그 한 줄이었다. 강민석. 아이, 대출, 집. 그가 제 입으로 말하는 살림이, 내가 어제 미리 읽은 장부의 항목과 한 자도 다르지 않게 포개졌다.

사람의 살림은 이미 한 줄의 장부였다. 대출은 부채였고, 집은 담보였고, 아이는 부양이었고,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은 현금흐름이었다. 평소에는 그것을 장부로 읽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법칙은 그 평범한 한 줄을 장부 아래로 옮겨, 자라게 하고, 닳게 했다. 닳아 갈 다음 줄이 산 사람이라는 말을, 나는 동료에게서 처음으로 글자 그대로 보았다.

우리는 동기였다. 같은 해에 들어와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다. 나는 전임자의 빈 책상을 물려받았고, 그는 옮겨 적히고 나서 사라졌다. 강민석을 보며 나는 또 하나의 빈 책상을 미리 보았다. 동기가 한 사람씩 줄에서 닳아 나가는 자리를.

강민석이 무심코 말끝을 흐렸다. …재면 깊어지고, 들면 차오르고. 그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다. 그것은 내가 적기만 하고 입에 올린 적 없는 네 묶음의 문장 한 토막이었다. 분절은 그를 통해 계속 번지고 있었다. 그는 나르는 줄을 모르는 채 나르고 있었다.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내가 그를 한 줄로 읽는 순간, 나는 이미 그를 옮겨 적는 손이 되는지도 몰랐다. 재면 깊어지고, 읽으면 번진다. 그를 장부로 보지 않으려 눈을 돌리면 될까. 그러나 나는 안다 — 적지 않는 데에도 대가가 있다. 누군가 대신 적는다. 보지 않는다고 그가 줄에서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보든 보지 않든, 그는 이미 내 묶음 안의 한 장이었다.

그날 오후, 라디오가 또 한 종금사의 영업정지를 알렸다. 나는 날짜와 이름을 들으며, 그것이 멈춘 순서가 등대의 물때표를 따라가고 있음을 알았다. 한 칸씩, 정해진 간격으로, 차례차례. 다음에 멈출 칸이 어디인지 나는 이미 짚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칸들이 그어 나가는 줄 위 어딘가에, 강민석의 회사가 있었다.

영업정지는 한꺼번에 오지 않았다. 한 칸씩, 정해진 간격을 두고, 차례차례 왔다.

십이월 이십일일. 나는 등대수의 물때표를 책상에 펴 두고, 그 옆에 종금사 명단을 나란히 놓았다. 두 종이는 다른 손이 다른 해에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리듬이 같았다. 물때표에서 만조와 간조가 정해진 간격으로 되돌아오듯, 명단에서 회사들이 정해진 간격으로 멈췄다. 들면 차오르고, 빠지면 드러나고. 차오를 때 한 곳이 잠기고, 빠질 때 한 곳이 바닥을 드러냈다.

라디오는 날마다 한둘씩 새 이름을 읽었다. 나는 그 이름을 듣기 전에, 물때표 위에서 다음 칸을 짚을 수 있었다. 콜시장의 하루치 자금이 한 줄에서 다음 줄로 옮아가는 자리. 그 자리에 놓인 회사가 다음 간조에 바닥을 드러낼 곳이었다. 라디오가 그 이름을 읽으면, 나는 이미 짚어 둔 칸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이것은 예언이 아니었다. 나는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적혀 있는 줄을 남보다 먼저 읽는 것뿐이었다. 물때는 예고가 아니라 법칙이었다. 들면 반드시 차오르고, 재면 반드시 깊어진다. 영업정지도 그러했다. 그것은 닥쳐오는 사건이 아니라, 줄곧 자라 와서 이제 수면 위로 드러나는 줄이었다. 장부 아래에서 자라던 수가 마침내 장부 위로 올라오는 자리.

나는 손가락을 물때표 위로 한 칸 더 밀어 보았다. 다음 간조, 그 다음 간조. 칸들은 정직하게 줄을 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줄이 닿는 자리 가운데, 한 칸이 강민석의 회사 이름과 겹쳤다. 며칠 뒤의 간조였다. 아직 라디오는 그 이름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물때표는 이미 그 칸을 비워 두고 있었다 — 들어올 차례를 기다리는 빈 칸으로.

손가락을 떼어도 칸은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었고, 읽은 것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 간조까지, 나는 그 빈 칸 하나를 미리 알고 지내야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미리 읽는 일에는 끝이 없었다. 한 번 다음 칸을 짚고 나자, 나는 그 다음 칸을, 또 그 다음 칸을 짚고 싶어졌다.

십이월 이십이일. 아침마다 나는 단말 앞에 앉았다. 부팅과 로그인 사이 검은 면에 내 얼굴이 비치고 사훈이 떴다 — 그리고 화면이 깨어나면, 거기 내일 자 명단이 있었다. 오늘 멈출 회사가 아니라, 내일 멈출 회사. 나는 그것을 읽었다. 라디오가 오늘 자 이름을 읽기도 전에, 나는 내일 자를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칸이었다. 다음에는 두 칸, 사흘 치, 한 주 치. 미리 읽을수록 더 미리 읽고 싶었다. 모르고 있는 것이 견디기 어려워졌다. 명단을 읽지 않은 아침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았고, 읽고 난 아침은 — 끔찍하게도 — 안심이 되었다. 무엇이 올지 알면, 적어도 그 자리에서 떨지는 않았다. 나는 미리 읽기에 기대기 시작했다.

전신수의 일지가 떠올랐다. 그는 응답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오지 않은 전문에 손이 갔다. 나는 이제 그의 자리에 가까웠다. 미리 읽는 일은 듣는 일이었다. 그리고 듣고 나면, 단말의 발신칸이 빈 채 깜빡였다. 수신: 나. 발신: 빈칸. 읽기만 하면 그 칸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한 글자라도 채워 넣으면 — 그것은 응답이었다. 미리 읽기와 응답 사이에는, 빈 칸 하나의 거리밖에 없었다.

나는 더는 장부 위에서 우연히 줄을 마주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아침마다 작정하고 내일을 읽으러 오는 사람이었다. 읽는 자에서 미리 읽는 자로. 그리고 미리 읽는 자의 손끝은, 빈 발신칸 위에서 자꾸 멈칫거렸다. 아직 누르지 않은 채.

그날 아침, 단말의 내일 자 명단은 길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한 화면을 가득 채우고도 아래로 이어졌다. 한 칸씩 차례를 지키던 물때가, 다음 간조에 한꺼번에 빠지려 하고 있었다. 이름들이 줄줄이 바닥을 드러낼 참이었다. 그것은 더는 한 줄이 아니라, 발표였다. 나는 내일 있을 발표를, 오늘 아침에 먼저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