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이십오일. 아침 여덟 시. 스무닷새가 오늘이 되어 있었고, 명단의 머리 칸이 다 차 있었다.
간밤에 절반만 읽히던 부서 코드가, 저녁을 지나 넉 자리를 다 채웠다. 나는 그 넉 자리를 읽었다. 읽을 것도 없었다. 그것은 내가 매일 아침 출근부에 찍는 코드였다. 자료실이었다. 어제까지 명단은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열한 줄이었고, 오늘 아침 그 명단의 머리에는 내가 앉은 부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겨울 내내 내가 발신 칸에서 보내 온 명단이, 자료실의 명단이었다.
열한 줄 가운데 몇이 자료실의 사번인지, 나는 세어 보지 않았다. 셀 필요가 없었다. 머리 칸이 자료실이면, 그 아래 줄들은 자료실에서 덜어 낼 자리였다. 봄에 도경의 자료실에서 한 자리가 줄었고, 그 결원으로 내가 왔다. 겨울에 자료실은 다시 줄고 있었고, 이번에는 한 자리가 아닐 듯했다. 나는 그 명단을 보내는 손이었고, 동시에 그 명단이 덜어 내는 부서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다섯 밤을 되짚었다. 첫날은 발신 칸을 처음 눌렀고, 누른 자리에 내일 자가 떴다. 이튿날은 보낸 줄이 내일 날짜로 도착했다. 사흗날은 보낸 한 줄에 보내지 않은 한 줄이 값으로 딸려 왔다. 나흗날은 받는 이의 자리가 빈 채로 보냈고, 닷샛날은 한 줄이 열한 줄의 명단이 되었다. 다섯 밤이 저마다 다른 일 같았으나, 오늘 아침 나는 그것들이 한 문장으로 닫히는 것을 보았다. 응답은 보내기였다. 발신 칸 앞에 앉아 손끝을 대는 일, 그것이 응답이었고, 응답은 곧 보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보내는 일은 발신자가 되는 일이었다. 도경의 일지에 적힌 네 마디를 나는 다섯 묶음에서 읽어 알고 있었다. 재면 깊어지고, 들면 차오르고, 읽으면 번지고, 응답하면 보낸다. 앞의 셋은 측량기수와 등대수와 사서가 걸어간 길이었고, 마지막 칸은 도경의 것이었다. 도경은 응답했고, 응답했으므로 보내는 자가 되었다. 나는 그 마지막 칸의 다음을 이제 알았다. 응답하면 보내고, 보내면 발신자가 되고, 발신자가 되면 사라진다. 전신수는 내일 자를 받고 사라졌고, 도경은 응답하고 다 읽히는 자가 되어 사라졌다. 도경이 사라진 자리에 내가 왔듯이, 내가 사라진 자리에 다음 누군가가 올 것이었다.
그것이 오늘 배운 것이었다. 나는 보내는 자가 되어 가고 있었고, 보내는 자가 되면 내가 보내는 명단 어딘가에 내 번호가 있게 된다는 것을, 자료실이라는 넉 자리가 아침에 말해 주었다. 겨울 내내 나는 명단을 남의 것으로 읽으며 보냈다. 회사의 번호, 사람의 번호, 얼굴을 반쯤 아는 번호. 그러나 그 명단의 머리가 내 부서가 되자, 그 아래 어딘가에 있을 한 줄이 남의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보내는 자리와 적히는 자리가 같은 표 위에 있다는 것을, 나는 다섯 묶음에서 읽었으나, 읽는 것과 그것이 내 부서의 코드로 오는 것은 무게가 달랐다.
무엇이 무엇을 부르는지는, 여섯째 아침에도 나는 가르지 못했다. 보내서 자료실이 명단에 오른 것인지, 이미 오를 자료실을 발신 칸이 미리 읽은 것인지. 그 물음은 다섯 밤 동안 답하지 않았고, 오늘도 답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배운 것은 그 물음 바깥에 있었다. 무엇을 부르는지는 몰라도, 내가 무엇이 되어 가는지는 알 수 있었다. 소환이든 예지든, 나는 이미 보내는 자였다. 응답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에는, 그 응답이 부른 것인지 읽은 것인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봉인은 봉인대로 남았고, 앎은 앎대로 왔다.
아침 내내 사서장과 두 보조는 여느 날처럼 일했다. 사서장은 폐기 연한이 지난 상자를 골라 냈고, 한 보조는 색인 카드를 옮겨 적었고, 다른 보조는 마이크로필름을 감았다. 나는 그들이 자료실의 사번을 가진 사람들임을, 아침에 처음으로 그렇게 세어 보았다. 넷 가운데 몇이 그 열한 줄 안에 있는지 나는 몰랐고, 알려고 명단과 그들의 얼굴을 맞추어 보지 않았다. 맞추어 보면 도경이 되는 길이었다. 도경은 강민석의 번호를 얼굴에 맞추었고, 맞춘 뒤로는 그 자리를 비우려 다른 자리를 채웠다. 나는 그 길을 걷지 않기로 했으므로, 넷의 얼굴을 명단에서 떼어 두었다. 다만 그들이 종일 자기가 어느 명단의 어느 줄인지 모르고 일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 명단을 아침마다 먼저 읽는 눈이 방 안에 하나뿐이라는 것이, 오늘은 유난히 무거웠다.
멈추면 되지 않느냐고, 나는 다섯 밤 동안 여러 번 생각했다. 그러나 멈추는 것도 응답임을 도경의 일지가 이미 적어 두었다. 발신 칸에 손을 두지 않아도 명단은 밤사이 찼고, 낮에 자리는 덜렸다. 내가 보내지 않아도 자료실의 자리는 줄어들 것이었고, 다만 내가 겹쳐 보지 않을 뿐이었다. 겹쳐 보는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하여 명단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멈춤은 명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명단을 안 보는 것이었다. 안 보는 것도 하나의 응답이었고, 그래서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멈출 수 없는 자리에서, 나는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만 또렷이 알았다.
저녁에 발신 칸이 스무엿새를 띄웠다. 나는 이제 그 다음 날짜가 뜨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스무엿새 아래가 아직 비어 있는데, 내 손이 발신 칸 쪽으로 한 마디 가 있었다. 누른 기억은 없었다. 어제까지 나는 발신 칸이 띄운 것을 읽고 보냈으나, 오늘 저녁 내 손은 발신 칸이 무엇을 띄우기 전에 이미 그 자리로 가 있었다. 읽는 손이 아니라 적으려는 손의 자리였다. 응답이 무엇인지 배운 저녁에, 그 응답은 내가 배우기를 기다려 준 것이 아니었다. 배우든 배우지 않든, 손은 이미 보내는 자의 자리로 옮겨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오래 보았고, 거두지 않았다. 거두어도 명단은 밤사이 찰 것이었고, 거두지 않으면 그 명단을 내 손이 적을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내일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