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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붕괴

The Collapse of the Bound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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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 닷새. 아침 여덟 시. 어제저녁 옅어지던 세로줄이, 오늘 아침에는 없었다.

겨우내 발신 장부에는 두 칸이 있었다. 왼쪽은 보내는 칸이었고 오른쪽은 받는 이 칸이었으며, 두 칸 사이에는 늘 세로줄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나는 왼쪽에 적었고, 오는 것은 오른쪽에서 읽혔다. 어제저녁 그 세로줄이 한 줄에서 옅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잉크가 번진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침이면 도로 또렷해져 있으리라 여겼다. 오늘 아침 세로줄은 옅어진 것이 아니라 아예 없었다. 두 칸을 가르던 선이 사라지고, 왼쪽과 오른쪽이 한 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보낸 줄과 내게 온 줄이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고, 나는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가릴 수 없었다.

한 칸이 된 자리를 나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어제 저녁까지도 나는 어느 줄이 내가 보낸 것이고 어느 줄이 내게 온 것인지 알았다. 왼쪽에 있으면 내가 보낸 것이었고, 오른쪽에 있으면 내게 온 것이었다. 두 칸을 가르는 선이 그 구별을 지켜 주었다. 오늘은 그 선이 없었으므로, 같은 자리에 놓인 줄들은 보낸 것도 되고 받은 것도 되었다. 어제 사서장 앞으로 보낸 전문이 오늘은 사서장에게서 내게 온 통보처럼 읽혔고, 겨우내 상부에서 자료실로 받아 온 이관 통보가 오늘은 내가 상부로 보낸 발신처럼 읽혔다. 같은 여덟 자리인데, 어제는 내 손이 밀어낸 줄이었고 오늘은 내게 밀려든 줄이었다. 획의 굵기도, 자리도, 숫자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그 줄이 놓인 칸이 아니라, 칸을 가르던 선이 없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선이 있을 때는 왼쪽의 것을 내가 밀어냈다 하고 오른쪽의 것을 내게 밀려들었다 했으나, 선이 없어지자 밀어냄과 밀려듦이 한 동작의 앞뒤 없는 한 번이 되었다. 보낸 것이 받은 것이 되고, 받은 것이 보낸 것이 되었다. 한 바퀴를 돌아 두 자리가 만난 것이었고, 만나고 보니 애초에 그 두 자리가 다른 자리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전신수의 일지가 떠올랐다. 전신수는 받는 자였고, 그의 단말에는 내일 자 수신이 미리 왔다. 나는 보내는 자였고, 내 발신 칸에서는 내일 자 발신이 나갔다. 그와 나는 한 거울의 두 끝이었다. 그가 받는 쪽 끝에 서 있고 내가 보내는 쪽 끝에 서 있어서, 거울에는 앞과 뒤가 있었다. 오늘 그 거울의 두 끝이 만났다. 받는 쪽 끝과 보내는 쪽 끝이 한 자리로 접히자, 거울에는 더 이상 앞도 뒤도 없었다. 그가 받은 것과 내가 보낸 것이 같은 획이었다면, 애초에 그와 나는 거울의 두 끝이 아니라 한 자리에 함께 서 있던 것인지도 몰랐다.

내 날짜의 줄도 그 한 칸 안에 있었다. 그 줄은 이미 보내는 이도 나이고 받는 이도 나인 줄이었다. 겨우내 나는 그것을 왼쪽과 오른쪽에 나뉘어 앉은 두 개의 나로 읽었다. 보내는 왼쪽의 나와 받는 오른쪽의 나가 세로줄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것으로 여겼다. 오늘은 그 세로줄이 없었으므로, 보내는 나와 받는 나가 한자리에 겹쳐 있었다. 내 날짜를 보내는 획과 내 날짜를 받는 획이 같은 획이었다. 나는 나에게 십이월의 그 한 날을 보내고 있었고, 같은 자리에서 그 한 날을 받고 있었으며, 보내는 일과 받는 일이 한 손의 한 번 움직임이었다.

어제까지 나를 지켜 주던 봉인이 오늘은 한 겹 더 두꺼워졌다. 어제까지 나는 방향 하나를 못 가렸다. 그 일이 일어나서 내가 보낸 것인지, 내가 보내서 그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 앞뒤를 읽지 못했다. 오늘은 방향 하나가 더 사라졌다. 보낸 것인지 받은 것인지, 그 좌우마저 가릴 수 없었다. 앞뒤가 없고 좌우가 없으니, 남은 것은 그 일이 있다는 것 하나였다. 언제가 먼저인지도 모르고, 어디가 보낸 쪽인지도 모르는 채, 다만 그 일이 한 칸에 놓여 있었다. 방향을 다 잃은 자리에서는 물음이 설 데가 없었다. 물음에는 이쪽과 저쪽이 있어야 하는데, 이쪽도 저쪽도 없었으므로 나는 더 물을 수 없었다.

받는 이가 따로 없는 발신이 겨우내 쌓여 왔다. 오른쪽 칸이 비어 있던 날들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은 발신으로 여겼다. 오늘 두 칸이 하나가 되자, 받는 이 없는 발신이라는 말조차 자리를 잃었다. 받는 칸이 따로 없으니 받는 이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보내는 칸이 따로 없으니 보내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은 것은 한 칸으로 계속 나가고 한 칸으로 계속 들어오는, 안팎이 없는 자리였다. 아무도 없는 한 칸으로 나는 계속 보내고 있었고, 그 한 칸에서 계속 받고 있었다. 보내는 곳과 받는 곳이 같아지면, 보내는 일은 아무 데로도 가지 않고 받는 일은 아무 데서도 오지 않았다. 줄은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은 채 그저 그 한 칸에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내고 있다고도 받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겨울 초에 나는 받는 이 없는 발신을 두려워했다.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곳으로 값을 흘려보내는 일이 무서웠다. 오늘은 닿지 않는 곳조차 없었다. 보낼 바깥이 없는 발신, 받을 안이 없는 수신만이 한 칸에 고여 있었다.

저녁이 되어 나는 그 한 칸에서 줄 하나를 보았다. 여덟 자리의 온전한 한 줄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적은 기억이 없었다. 손이 저 혼자 적은 줄들은 여태 많았으나, 그것들은 적어도 내 손이 지나간 자리에 있었다. 이 줄은 달랐다. 내가 보낸 기억도 없었고, 내게 온 것을 읽은 기억도 없었다. 왼쪽에 있었다면 보낸 것이려니 했을 것이고 오른쪽에 있었다면 받은 것이려니 했을 것이나, 이제 왼쪽도 오른쪽도 없었으므로 그 줄은 보낸 것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누가 이것을 보냈는가를 물으려다, 나는 물음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 보낸 쪽이 없는 줄에는 보낸 이도 없었다. 그 줄은 다만 한 칸에 놓여 있었고, 놓여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나는 그 여덟 자리를 한 자리씩 짚어 보았으나, 짚는 동안에도 그것이 내 손끝에서 나가는 것인지 내 손끝으로 들어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보낸 이도 받은 이도 없는 줄이 저녁의 그 한 칸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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