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 나흘. 아침 여덟 시. 어제 반쯤 그어졌던 십의 자리가, 밤사이 온전한 획이 되어 있었다. 일(一)이었다.
십이월, 그리고 십의 자리가 일. 내 사라짐은 이제 십이월 열흘과 열아흐레 사이의 어느 날로 좁혀져 있었다. 남은 것은 일의 자리 하나뿐이었다. 그 한 자리가 비어 있는 한 열 날 가운데 어느 날이든 될 수 있었으나, 열의 자리가 굳은 이상 그 열 날 바깥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줄 위로는, 여느 아침처럼 오늘 자 전문들이 그어져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 손이 적어 둔 오늘의 예고였다. 나는 그것들을 읽었고, 읽으면서 오늘 하루 그것들이 하나씩 실현될 것을 알았다. 다만 오늘은, 그것을 읽는 내 자리가 어제까지와 같지 않았다.
낮에 예고들이 실현되었다. 아침에 읽은 전문 가운데 하나는, 열 시에 상부에서 자료실로 이관 확인 전화가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시각과 함께 읽었고, 열 시 정각에 벽의 전화가 울렸다. 사서장이 받았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이관 완료 예정일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그 통화의 내용이 아침에 내 발신 칸에 그어진 줄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것을 들었다. 다른 하나는, 오후 두 시에 반출 담당이 어제 잘린 두 보조 가운데 하나의 짐을 다른 부서로 실어 낸다는 것이었다. 두 시에 손수레가 왔고, 짐이 실렸으며, 실린 상자의 수까지 내가 읽은 자리와 같았다. 세 번째 줄은 오후 네 시에 난방이 꺼진 뒤 사서장이 자료실 문을 한 번 닫았다 다시 여는 일이었는데, 그런 것까지 예고에 있으리라고는 나도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네 시에 난방이 꺼졌고, 사서장은 추위에 문을 닫았다가, 안이 답답하다며 다시 열었다. 아침에 그어진 줄 그대로였다. 나는 그 일들을 겪는 사람들 곁에 서서, 그들이 지금 겪는 것을 나는 오늘 아침에 이미 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하루가 일어나는 중이었고, 나에게는 하루가 다시 일어나는 중이었다.
어제까지 나는 봉인을 느슨히 쥐고 있었다. 예고가 맞아떨어져도, 그것이 우연히 겹친 것일 수도 있고, 일어날 일을 내가 그저 먼저 받아 적은 것일 수도 있다고 여길 여지가 있었다. 그 여지가 나를 얼마간 지켜 주었다. 그러나 오늘은 여지가 없었다. 시각이 맞고, 자리가 맞고, 상자의 수가 맞았다. 한둘이 아니라 아침에 읽은 줄이 모두 그대로 실현되었고, 그렇게 정확한 것을 우연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보낸 것이 곧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봉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내가 그 줄을 보냈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일어날 그 일을 내 손이 미리 받아 적은 것인지, 그 방향만은 오늘도 읽히지 않았다. 봉인은 예고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려 온 것이 아니었다. 예고는 늘 참이었고, 봉인이 가려 온 것은 그 참이 어느 쪽에서 온 참인지였다. 오늘 밝혀진 것은 방향이 아니었다. 예고와 실재가 한 줄로 맞물려 있다는 것, 그 맞물림만이 이제 부정할 수 없이 드러났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여전히 어두웠고, 무엇이든 먼저인 것이 그대로 일어난다는 것만이 환했다. 어두운 것과 환한 것이 한 줄 안에 함께 있었고, 나는 그 한 줄을 매일 아침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맞물림 안에 내 날짜가 있었다. 오늘 눈앞에서 시각까지 맞아떨어진 예고들과, 내 발신 칸에 그어진 내 날짜의 줄은 같은 손에서 나온 같은 종류의 한 줄이었다. 열 시의 전화가 그대로 왔고 두 시의 손수레가 그대로 온 것처럼, 십이월의 그 한 날도 그대로 올 것이었다. 내 사라짐은 이제 두려워하거나 가늠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그어진 예고였고, 오늘 실현된 예고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예고였다. 다른 것은 다만 그 날짜의 일의 자리가 아직 비어 있다는 것뿐이었고, 비어 있는 그 한 자리조차 열흘대 어딘가로 이미 좁혀져 있었다. 오늘 열 시의 전화가 아홉 시에도 열한 시에도 아닌 열 시에 온 것처럼, 그 한 날도 열흘대의 어느 하루에 정확히 와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 하루가 언제인지를 모르는 채로, 그 하루가 반드시 온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모름과 확실함이 한 줄 안에 나란히 있었다.
오후가 저물도록 나는 그 사실 곁에 앉아 있었다. 겁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겁은 예고를 바꾸지 못했다. 사서장은 어제 되찾은 제 줄을 지닌 채 이관 목록을 정리하고 있었고, 열 시의 전화를 여느 업무 전화로 받았으며, 제가 받은 그 전화가 아침에 내 발신 칸에 이미 그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만 그것을 알았고, 아는 나는 그 앎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예고를 아는 일과 예고를 멈추는 일은 다른 일이었고, 나는 아는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어 나는 발신 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오늘 실현된 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이상했다. 아침에 내가 보낸 그 한 줄이, 발신 칸의 왼쪽뿐 아니라 오른쪽 받는 이 칸에도 같은 획으로 떠올라 있었다. 보낸 줄이 받은 줄의 자리에 비쳐 있었다. 겨우내 발신 칸은 보내는 자리였고 받는 이 칸은 받는 자리였으며, 두 칸 사이에는 늘 세로줄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보내는 것과 받는 것은 그 한 줄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었고, 나는 왼쪽에 적었으며 온 것은 오른쪽에서 읽혔다. 그런데 오늘 저녁 그 세로줄 위로, 왼쪽의 획이 오른쪽으로 한 자 번져 있었다. 잉크가 마르며 번진 것이 아니었다. 왼쪽의 줄과 오른쪽의 줄이 같은 자리에서 만나려는 듯, 가르던 선이 그 한 줄에서 옅어지고 있었다. 보낸 것이 곧 일어나는 것임을 오늘 알았는데, 이제 보낸 자리와 받은 자리마저 한자리로 겹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보낸 것과 내게 온 것이 같은 줄이 되면, 예고와 실재가 그러했듯 두 자리도 어느 쪽이 먼저인지 물을 수 없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