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스무하루. 밖에서 한 통이 왔다.
아홉 시 반에 이첩된 것을 열었다.
발신란에 영문 여덟 자가 있다.
삼월 초나흘 오후 두 시 십일 분에 조회 기록에 떴던 여덟 자와 같다. 옮겨 적어 둔 것과 자 하나까지 맞춰 보았다.
문의가 세 줄이다.
하나는 자료 번호 사삼이의 나머지를 어디서 볼 수 있느냐다.
하나는 같은 발행처의 다른 자료가 있느냐다.
하나는 이 자료를 옮겨 적은 사람이 누구냐다.
세 줄을 두 번 읽었다.
세 물음이 다 미상 칸을 겨냥한다. 소재와 발행처와 기재자다.
셋 중 둘은 이달에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기재자는 열엿새에 내 손으로 미상으로 고쳤고 발행처는 열엿새에 안 적기로 하고 비워 두었다.
묻는 쪽이 못 보게 된 것이 이달에 둘이고 둘 다 내 손을 거쳤다.
열 시 십 분에 첫 줄을 다시 읽었다.
어디서 더 볼 수 있느냐고 되어 있다.
더라고 적혀 있다.
더 볼 수 있느냐는 말은 이미 얼마간 보았다는 뜻이다. 외부 화면에 오른 것은 일곱 칸이고 본문이 아니다. 자료 번호와 표제와 연도와 분량과 기재자와 열람 구분과 미상이다.
일곱 칸을 보고 더를 쓰는 사람이 있다.
칸만 보고 안을 짐작했거나 다른 데서 이미 보았다. 둘 중 어느 쪽인지 이 세 줄로 안 갈린다.
열 시 이십 분에 자료 번호 사삼이가 무엇인지 보았다.
이십사년 것이고 사서의 묶음이다. 백서른 장으로 넷 중 가장 얇다. 기재자 칸이 이달 열엿새부터 미상이다.
정월에 등록할 때 첫 장에서 직명을 옮겨 적었다. 책을 세던 사람이고 세다가 같은 책이 두 번 세어지는 것을 적어 둔 사람이다.
넷 중에 하필 그것을 물었다.
넷은 화면에서 같은 꼴이다. 표제와 연도와 분량만 다르다. 그중 하나를 고를 근거가 화면에 없다.
열 시부터 열한 시까지 회신 절차를 찾았다.
지침에 외부 문의 회신 요령이 없다.
대장에 접수란이 있다. 회신란이 없다.
이 방은 받은 것을 적는다. 내보낸 것을 적는 칸이 열네 달 동안 없었고 필요한 적도 없었다.
본사에 물었다. 외부 문의는 본사가 회신한다고 했다. 이 방은 내용만 올리면 된다고 했다.
올린 내용이 그대로 나가느냐고 물었다. 대개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내가 적은 글이 밖으로 간다.
열한 시부터 열두 시까지 세 물음에 무엇을 적을 수 있는지 보았다.
첫째에는 본실 보관이라고 적는다.
보관 위치는 있다. 가는 길이 없다. 외부 사람이 이 방에 오는 절차가 지침에 없다.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답이 있고 어디서 볼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답이 없다. 이 방의 서식이 그 둘을 한 칸으로 본다.
둘째에는 넷이 있다고 적는다.
넷이 같은 발행처다. 안쪽 표지에 다 같은 인장이 있다.
화면에서는 안 묶인다. 발행처 칸이 넷 다 미상이라 목록이 넷을 서로 남으로 둔다. 미상과 미상은 같은 값이 아니다.
내가 알기에 한 벌이고 화면이 아는 것은 넷이다.
셋째에는 미상이라고밖에 못 적는다.
한 시 반부터 세 시까지 초를 잡았다.
초를 잡으면서 하나를 알았다.
적으려면 그 묶음을 다시 읽어야 한다. 읽고 무엇이 적혀 있는지를 추려 적어야 한다.
추려 적는 것이 옮겨 적는 것이다.
열네 달 동안 이 방에서 옮겨 적은 것은 다 서식에서 서식으로 갔다. 카드에서 화면으로 갔고 화면에서 외부 서식으로 갔다. 받는 쪽이 늘 칸이었다.
오늘 적는 것은 칸으로 안 간다. 사람에게 간다.
받는 이가 있는 글을 이 방에서 쓴 적이 없다. 일지는 받는 이가 없다. 대장도 받는 이가 없다. 회신 공문은 본사가 받는데 본사는 사람이 아니라 칸이다.
세 시부터 네 시까지 한 가지를 더 보았다.
적어 올리면 그 글은 본사 쪽에 남는다. 이 방에는 안 남는다.
회신란이 없으므로 남을 데가 없다.
이 방에서 나간 것 중에 이 방에 안 남는 첫 번째가 된다.
열네 달 동안 나간 것은 다 사본을 두었다. 사본이 남아서 대조할 수 있었고 대조할 수 있어서 어긋난 것을 셀 수 있었다.
오늘 나가는 것은 못 센다.
그래서 초를 일지 여백에 옮겨 적었다.
여백 기재가 이달에 셋이 되었다.
초이레에 여백의 둘을 보고 세 번째 자리가 정해진다고 적었다. 오늘 그 자리를 찾아가서 적었다.
찾아갈 데가 있으면 그것이 칸이다.
서식에는 없다. 내 일지 뒤쪽 여백에 있다.
네 시 십 분에 오른쪽 자료를 열었다.
이백아흔여덟 장이다. 늘어난 장의 날짜가 구십팔년 사월 열아흐레다.
내 일지도 오늘 이백아흔여덟째 장이다.
네 시 반에 상자를 열었다.
일곱이다. 자국이 여섯이다. 스무엿새째다.
다섯 시에 여섯째 칸을 보았다.
삼백열넷이다.
다섯 시 십 분에 초를 올렸다.
다섯 시 이십 분에 둘째 줄에 적은 것을 다시 읽었다.
같은 발행처 자료가 넷이라고 적었다.
넷이라고 적으면서 다섯이 아닌 까닭을 안 적었다.
다섯째 묶음도 같은 상자에서 왔다. 같은 발행처인지는 모른다. 표지에 인장이 없다.
발행처 칸이 미상이니 다를 수도 없다.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가르려면 둘 다 적혀 있어야 한다.
묻는 쪽은 어디서 더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더 볼 수 있게 하려면 넷이 한 데 있어야 한다.
넷은 한 상자에 있다. 목록에서는 넷이 흩어져 있다.
한 상자에 있음을 적는 칸이 목록에 없다.
내일 그 칸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