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열엿새. 발행처 칸을 찾는 데 하루가 갔다.
아홉 시 십 분에 외부 화면을 열어 넷을 다 보았다.
어제는 하나를 보고 덮었다. 나머지 셋도 같았다.
칸이 일곱이고 여섯에 글자가 있다. 자료 번호와 표제와 연도가 있고 분량과 기재자와 열람 구분이 있다. 일곱째가 발행처다.
넷의 발행처는 프나코틱 문고다. 적을 데가 없어서 비웠다. 비운 칸이 화면에서 낱말이 되어 있다.
이 방에서 비운 칸은 여태 비어 있었다. 종료 여부 칸을 비우면 아무것도 안 나오고 연도 칸을 비우면 목록에서 영영이 된다. 영영은 값이다. 값은 칸 안에 있다.
오늘 비운 칸에서 나온 것은 값이 아니라 낱말이다.
열 시부터 열한 시까지 지침을 읽었다.
발행처 기재 요령이 제십이조다. 간행물에 표시된 그대로 적는다고 되어 있고 표시가 없으면 비운다고 되어 있다. 비우는 경우가 그 하나뿐이다.
프나코틱 문고는 표시가 있다. 네 묶음 안쪽 표지에 다 찍혀 있다. 표시된 그대로 적으면 프나코틱 문고다.
제십삼조가 그다음이다. 정기간행물이 폐간된 경우에 폐간 연도를 괄호에 넣어 적는다고 되어 있다.
폐간 칸이 있다. 폐업 칸이 없다.
나온 것이 끝난 경우를 적는 칸이 있고 내던 데가 끝난 경우를 적는 칸이 없다. 한참 그 둘이 왜 다른지를 보았다. 간행물은 세어지는 쪽이고 발행처는 세는 쪽이다. 세어지는 쪽이 끝나는 것은 서식이 세워 두었고 세는 쪽이 끝나는 것은 안 세워 두었다.
열한 시 이십 분에 본사에 전화했다.
담당자가 어느 칸이냐고 물었다. 발행처라고 했다. 표시가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했다. 그러면 적으면 된다고 했다.
폐업한 데라고 했다.
잠깐 조용했다.
적으면 현행 발행처 색인에 오른다고 했다. 색인은 현행만 싣는다고 했다. 폐업한 데를 현행으로 올릴 근거가 없으니 비워 두라고 했다.
비우면 화면에 미상으로 뜬다고 했다. 표시 규칙이고 이 방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끊고 나서 오늘 들은 말을 적어 보았다.
근거가 없다는 말을 두 번 들었다. 어제 다섯째 묶음을 뺄 때도 근거가 없었다. 그때는 근거가 없는데도 뺐고 오늘은 근거가 없어서 못 적는다.
같은 말이 어제는 하게 했고 오늘은 못 하게 했다. 어느 쪽이 서식이고 어느 쪽이 내가 정한 것인지 안 갈린다.
열두 시부터 열두 시 반까지 네 묶음의 안쪽 표지를 다시 보았다.
넷 다 같은 자리에 찍혀 있다. 아래쪽 가운데고 인쇄가 아니라 인장이다. 글자가 여섯이고 그 아래에 아무것도 없다. 연도가 없고 소재지가 없다.
찍힌 것은 그 데가 있었다는 사실만 적는다. 지금 있는지는 안 적는다. 칸이 묻는 것은 지금이다.
인장은 오십 해가 지나도 안 바뀐다. 바뀐 것은 찍은 쪽이다.
폐업이라고 적힌 것이 이 방에 있는지를 그때 찾아보았다.
없다.
카드에 없고 색인에 없고 일지에 없다. 네 묶음 어디에도 그 데가 끝났다는 말이 없다.
끝났다는 사실을 내가 어디서 알았는지 오늘 처음 찾아보았고 찾지 못했다. 지난 정월에 등록할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적지 않았다.
열두 시 사십 분에 삼층 사람이 내려왔다. 어제 물어보고 간 사람이다.
누가 보더냐고 물었다. 여섯째 칸을 열어 보이고 예순여덟이라고 했다. 그가 들여다보고 이게 다 사람이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그가 발행처 칸을 짚고 여기는 왜 비었느냐고 물었다. 없어진 데라고 했다. 그러면 없어졌다고 적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적는 칸이 없다고 했다.
그가 웃고 없으면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하고 올라갔다.
올라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말을 두 번 생각했다. 만드는 것은 이 방의 일이 아니다. 이 방은 있는 칸을 채운다. 열세 달 동안 그렇게 해 왔고 그 말이 오늘 처음으로 이상하게 들렸다.
한 시 십 분에 기재자 목록 회신이 왔다.
넷을 미상으로 고치라는 지시가 다시 왔고 이번에는 기한이 있다. 이월 말일까지다.
요령이 붙어 있다. 성명이 확인되지 않는 기재자는 미상으로 통일하고 동일 표기는 한 줄로 합친다고 되어 있다.
미상으로 고치는 칸이 있다. 합치는 요령도 있다.
오전에 없던 것이 오후에 있다. 오전에 없던 칸은 아는 것을 적는 칸이고 오후에 있는 칸은 모른다고 적는 칸이다.
두 시부터 세 시 반까지 목록을 고쳤다.
측량기수와 사서와 등대수와 전신수를 미상으로 고쳤다. 넷이 같은 표기가 되니 한 줄로 합쳐졌다.
여섯이 셋이 되었다.
첫 줄이 본인이고 둘째가 미상이고 셋째가 김도경이다. 정렬이 최종 기재일 순이라 미상 줄의 최종 기재일은 넷 중 가장 늦은 것으로 잡혔다. 삼십칠년이다.
이십삼년과 이십사년과 삼십사년이 목록에서 없어졌다. 자료는 그대로 넷이고 줄이 하나다.
세 시 사십 분에 열에 서 있던 것을 생각했다.
달포 전에 여섯이 한 열에 섰다. 오늘 그 열이 셋이다. 줄을 지웠는데 자료가 안 줄었으니 줄어든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는 칸이 줄었다. 그 둘을 이 목록이 안 가른다.
네 시에 오른쪽 자료를 열었다.
이백예순넉 장이다. 늘어난 장의 날짜가 구십팔년 삼월 열엿새다.
내 일지도 오늘 이백예순넉 장째다. 두 수가 같다. 열세 달 동안 나란히 왔고 오늘도 나란하다.
네 시 반에 외부 화면을 다시 열었다.
기재자 칸이 미상이다. 발행처 칸이 미상이다.
한 줄에 미상이 둘이다.
하나는 내가 오늘 오후에 적어 넣었다. 하나는 내가 안 적어서 화면이 적었다.
화면에서 둘이 같은 글자다. 굵기가 같고 자리가 나란하다. 보는 쪽에서 어느 것이 모르는 것이고 어느 것이 아는 것인지 가릴 데가 없다.
다섯 시 십 분에 여섯째 칸을 보았다.
일흔하나다. 아침에 예순셋이었다.
다섯 시 이십 분에 발행처 칸에 커서를 놓아 보았다.
열 자가 들어간다. 프나코틱 문고는 여섯 자다.
적지 않았다. 적을 근거가 없다.
근거가 없는데 나는 안다.
아는 것을 적는 칸이 이 서식에 없다는 사실을 오늘 하루 걸려 확인했다. 없다는 것 하나를 확인하는 데 하루가 들었다.
내일도 그 칸은 없다. 비어 있는 채로 미상이라고 떠 있을 것이다.
미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