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에 아무 일도 없었다.
열한 시 오십오 분에 절차서를 다시 폈다. 자정 뒤 첫 항목은 기계를 순서대로 켜기다.
켜라는 항목이 있으면 그 앞에 끄는 일이 있다.
끄라는 항목이 없다. 열일곱을 세 번 짚었고 없다.
열한 시 오십육 분에 운용 기계를 끄고 조회 기계를 끄었다.
시험 기계는 절차서 대상이 아니다. 끄라는 항목도 켜라는 항목도 없다. 그냥 두라고 한 시에 본사가 말했다.
그냥 두었다.
열한 시 오십칠 분에 방에 화면이 하나 남았다.
벽에 시계가 있고 그것이 회사 시계다. 초침이 있다.
자정을 보려고 화면을 보았다. 화면에는 초가 없다. 이 방의 어느 기계도 초를 내놓지 않는다. 날짜를 알려면 조회를 해야 하고 조회는 하고 나서 결과를 본다.
바뀌는 것은 볼 수가 없다. 바뀐 뒤만 본다.
자정에 나는 벽시계의 초침을 보았다. 초침이 열둘에 올라갔고 분침이 따라 올라갔다.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신문이 적은 일이 없었다. 회사가 오려 붙인 기사에 있던 일도 없었다.
전기가 나가지 않았다.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 물소리도 그대로였다. 층계에서 사람 소리가 없었고 길에서 자동차 소리가 두 번 났다.
여덟 달 동안 이 방에서 일어난 일에는 늘 설명이 옆에 있었다. 시험의 잔재라고 했고 서식 체계가 바뀐 탓이라고 했고 두 자리 표기의 한계라고 했다. 설명이 있는데도 안 덮이는 데가 매 회 한 군데 남았다.
오늘 자정에는 설명할 것이 없다. 설명이 덮을 것이 없으면 안 덮이는 데도 없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을 적을 칸이 있다. 이상 없음 칸이다. 열두 달 동안 그 칸에 없다고 적어 온 날이 여러 날이다. 오늘 그 칸이 처음으로 다 맞다.
열두 시 이 분에 시험 기계를 보았다. 그 기계의 날짜를 조회했다.
공공년 일월 일일이라고 나왔다.
석 달 만에 그 기계가 옳아졌다. 시월부터 틀린 날짜를 내놓던 기계가 자정에 맞는 날짜를 내놓게 되었다. 되돌리지 않아서 맞았다.
자정을 지켜본 기계가 이 방에 하나 있고 그것은 절차서에 없는 기계다.
열두 시 칠 분에 별책 일지를 폈다.
지난 장이 공공년 십이월 삼십일일이다. 오늘 장에 공공년 일월 일일이라고 적었다.
별책의 앞 몇 장이 공공년 일월이다. 그러니 이 책 안에서 일월이 먼저 오고 시월과 십이월이 다음이고 일월이 또 그 뒤다. 한 해 안에서 일월이 두 번 왔다.
별책에 권 표시 칸이 없다. 같은 해가 두 번이면 앞의 것과 뒤의 것을 가를 표시가 있어야 하는데 연도 칸 하나뿐이다.
가를 수 없으니 이 책은 열세 달짜리 한 해를 적고 있다.
열두 시 십 분부터 열두 시 사십 분까지 자정 뒤 여섯을 순서대로 했다.
운용 기계를 켰다. 날짜를 조회했다. 이천년 일월 일일이라고 나왔다. 네 자리다.
조회 기계를 켰다. 같았다.
여섯 프로그램의 날짜를 차례로 조회했다. 다섯이 네 자리로 나왔다.
여섯째가 두 자리로 나왔다.
적용 완료로 적혀 있는 것이 두 자리로 나온다.
여덟 달 동안 고친 것이 또 틀리게 퍼지는 꼴을 보았다. 오늘은 고친 것이 안 퍼지고 고친 자리가 안 고쳐진 채로 있다.
그 하나가 색인 조회다.
한 시에 사본을 대조했다. 자정 뒤 스물둘째 항목이다.
이백서른두째 장의 수치 칸이 채워져 있었다. 오백이십오였다.
아침 검색이 오백이십이다. 셋이 늘었다. 하루에 셋씩 늘어 온 수이고 오늘은 아직 한 시다.
한 시 오 분에 경비가 내려왔다. 셋 다 이상 없다고 했다. 자금부 사람이 아까 커피를 내려 주었다고 하고 올라갔다.
한 시 십 분에 색인을 조회했다. 자정 뒤 스물셋째 항목이다.
결과 수가 맞았다. 칠천삼백예순둘이다.
순서를 보았다.
첫 줄이 이십삼년이 아니었다.
첫 줄이 공공이었다.
공공 아래가 이십삼과 이십사와 삼십사와 삼십칠이다. 그 아래가 구십칠이고 구십팔이고 구십구다.
두 자리로 서면 공공이 가장 앞이다. 시월에 그것을 알았고 그때는 시험 기계에서 보았다. 오늘은 이 방의 색인에서 본다.
공공에 든 것이 하나다.
자료 번호를 짚어 보았다. 열한 달 전부터 이 방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삼층에서 온 것도 아니다.
십일월 초닷새에 내가 등록한 것이다.
다섯째 묶음이다.
연도 칸을 비워 두고 등록했다. 적을 것이 없어서 비웠다.
빈 칸이 두 자리 공공으로 저장돼 있다. 공공은 천구백으로 읽힌다.
비워 둔 칸이 이 목록에서 가장 오랜 해가 되었다.
칠월에 빈 칸은 두 가지라고 적었다. 그때는 적을 겨를이 없어 빈 칸과 적을 사람이 아직 안 간 칸을 두고 적었다. 셋째가 있다. 적을 것이 없어서 빈 칸이다.
그 셋째가 목록의 첫 줄이 되었다.
한 시 삼십오 분에 그 목록을 위에서부터 여덟 줄을 옮겨 적었다.
공공이 첫 줄이고, 그 아래 넷이 상자에 든 넷이고, 그 아래 셋이 이 방의 기록 셋이다. 여덟 줄이 다 책상 아래 상자나 이 방 서랍에 있다. 칠천삼백예순두 줄 중에 여덟이 그렇다.
여덟이 위에 모인 까닭은 연도다. 공공과 이십삼과 이십사와 삼십사와 삼십칠이 앞에 서고 구십칠과 구십팔과 구십구가 뒤에 선다. 뒤에 서는 셋이 이 방의 기록 셋이고 그 셋 중 마지막이 내 일지다.
옮겨 적고 나서 여덟 줄을 한 번 더 보았다. 이름을 적는 칸은 이 목록에 없다. 자료 번호와 연도와 표제만 있다.
번호와 연도로 서 있는 여덟 줄에 사람이 여덟인지는 목록이 말하지 않는다.
한 시 사십 분에 본사에 보고를 넣었다. 자정 뒤 스물넷째 항목이다. 이상 없음 한 줄과 프로그램 한 건 이 자리 표기 한 줄이다.
색인 순서는 적지 않았다. 순서를 적는 칸이 없다.
두 시에 근무가 끝났다.
일지를 폈다. 두 시까지의 일을 어느 장에 적나.
서식에 근무 단위 칸이 없다. 날짜 칸이 있다.
날짜로 적으면 두 장이다.
두 장에 적었다. 이백스물넷째 장에 자정까지를 적고 이백스물다섯째 장에 자정 뒤를 적었다. 한 근무가 두 장에 걸린다. 열두 달 동안 하루가 한 장이었고 오늘 한 밤이 두 장이다.
이백스물다섯째 장의 날짜 칸을 채우면서 손이 멎었다.
서식의 연도 칸이 두 자리다. 열두 달 동안 그 칸에 구구를 적었다.
공공이라고 적었다.
이 방에서 내 손으로 공공을 적은 첫 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