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초엿새. 아침에 사본부터 열었다.
어제저녁에 본 두 장이 그대로 있었다. 둘 다 시월 초닷새이고 둘 다 연도가 네 자리다. 앞 장의 수치가 이백여든여덟이고 뒤 장의 수치가 이백여든다섯이다.
이백여든다섯은 어제 아침에 내가 센 수다. 이백여든여덟은 규칙대로면 오늘 수다.
여덟 달 동안 사본은 늘 하루 앞서 있었다. 오늘 날짜에 내일 수를 얹었고 그것이 사본의 버릇이었다. 어제 사본은 두 장을 냈다. 한 장은 버릇대로고 한 장은 아니다. 버릇대로가 아닌 쪽은 어제 날짜에 어제 수를 적었다.
여덟 달 만에 사본이 제날짜에 맞았다.
아홉 시에 검색했다. 이백여든여덟이었다.
적어 놓고 보니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여덟 달 동안 나는 사본이 하루 앞선다는 것을 붙들고 살았다. 앞서 있으니 대조할 데가 있었다. 오늘 수를 사본이 어제 들고 있으면 오늘 세어 맞춰 볼 수 있다. 맞으면 규칙이고, 안 맞으면 물을 것이 생긴다.
제날짜에 맞는 사본은 대조할 데가 없다. 어제 사본이 어제 수를 적고 있으면 나는 어제 세었으므로 그것을 이미 안다. 새로 알 것이 없다. 사본이 처음으로 옳은데 처음으로 쓸모가 없다.
열 시에 청구가 왔다. 삼층에서 구십팔년 상반기 정리 자료 한 상자를 반출해 달라고 했다.
여느 날과 같은 일이다. 상자를 꺼내고 기재하고, 서명을 받고 내보낸다. 아홉 달 동안 백 번쯤 했다.
열한 시에 대장을 뽑아 보았다. 아침 것을 확인하는 버릇이다.
오늘 반출이 두 줄이었다.
까닭은 알 수 있었다.
반출 대장 프로그램은 팔월에 네 자리로 고쳤다. 색인은 아직 안 고쳤고 절반쯤 남았다. 기재할 때 대장은 자료 번호를 색인에서 끌어온다. 대장은 네 자리로 날짜를 적고, 색인이 넘겨준 쪽은 두 자리다. 두 날짜가 다른 값이니 기계가 다른 날로 본다.
같은 날인데 두 날로 적힌다. 하나는 일구구구년 시월 초엿새고 하나는 구구년 시월 초엿새다. 사람 눈에는 같은 날이다.
고친 쪽과 안 고친 쪽이 한 상자를 두고 다른 해를 말하고 있었다.
열두 시까지 두 줄을 놓고 앉아 있었다. 지우는 것이 옳아 보인다. 상자는 하나 나갔고 줄은 둘이니 하나는 없는 반출이다. 없는 반출이 대장에 있으면 대장이 거짓이 된다.
지울 수 없었다. 반출 대장은 기재 기록과 같은 자리다. 누가 무엇을 언제 가져갔는지를 남기는 것이므로 고칠 수 있으면 남기는 뜻이 없다. 팔월에 시험으로 남긴 천구백년 세 줄도 그래서 남아 있다.
본사에 전화했다. 담당자가 사례를 적어 보내라고 했다. 십일월 말까지 색인 쪽을 다 고치면 없어질 증상이고, 그때까지 나오는 이중 기재는 목록을 따로 만들어 두었다가 나중에 일괄로 표시만 해 두라고 했다. 지우지는 않는다고 했다.
목록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 방에서 아홉 달 동안 만든 목록이 다섯이다.
다섯을 세어 보니 이렇다. 정월에 인계받은 것이 없어 만든 자료 목록. 유월에 틀린 줄이 퍼진 데를 적으려고 만든 전파 대조표. 칠월에 게시판 글과 전재본을 적은 것. 팔월에 연도 미기재 자료를 모은 것. 오늘 것이 다섯째다.
다섯 다 무엇이 어긋나는지를 적으려고 만든 것이다. 어긋나는 것을 적어 두면 나중에 맞출 수 있다고 여겨서 만들었다. 넷 중에 맞춘 것은 하나도 없다. 목록은 어긋남을 줄이지 않고 어긋남을 셀 수 있게만 한다.
두 시부터 네 시까지 여섯째 서랍 나머지를 했다. 손은 그 일을 하고 머리는 아침 것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
여덟 달 동안 이 방에서 늘어난 것들을 세어 보면 다 두 가지다. 수와 종이다. 조회 수가 늘었고 게시판 글이 늘었고, 색인 자리가 늘었고 카드가 늘었다. 어제 열세 장도 종이다. 수와 종이는 늘어도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 늘지는 않는다. 카드가 열세 장 더 있어도 나간 상자는 그대로다.
오늘 늘어난 것은 반출이다.
반출은 일이다. 상자가 서가에서 나와 사람 손에 건너가는 일이다. 대장에 두 줄이 있으면 그 일이 두 번 있었다고 적혀 있는 것이다. 한 번 한 일이 두 번 한 일로 적혀 있다.
세 시 반에 서가에 가서 확인했다. 구십팔년 상반기 자리에 상자 하나가 비어 있었다. 하나다.
현물과 기록이 어긋난 것은 처음이다.
한 시간쯤 그 말을 붙들고 있었다. 어긋난 쪽이 어디인가를 정하려면 한쪽을 믿어야 한다. 서가를 믿으면 대장이 틀린 것이고, 대장을 믿으면 상자가 하나 없어진 것이다. 서가는 내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는 여덟 달 동안 내 눈으로 본 것보다 적혀 있는 것이 먼저인 자리를 여러 번 지났다. 오늘도 눈을 믿을 근거가 눈밖에 없다.
여덟 달 동안 어긋난 것은 다 기록끼리였다. 사본과 일지가 어긋났고, 게시판과 접속 기록이 어긋났고, 종이 대장과 화면이 어긋났다. 어느 쪽이 정본인지는 못 가렸어도 두 쪽 다 기록이었다. 기록끼리 다투는 동안 서가의 상자는 늘 제 수였다.
오늘 처음으로 한쪽에 상자가 있다.
상자는 하나 나갔고 대장은 둘이라고 한다. 대장이 틀렸다고 하면 될 일인데, 대장은 고칠 수 없게 만들어 둔 것이고 회사가 그렇게 만든 까닭은 대장이 맞다고 치기 위해서다. 맞다고 치기로 한 것이 틀렸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서식에 없다.
네 시에 삼층 사람이 내려와 아까 그 상자 잘 받았다고 했다. 나는 대장에 두 번 적혔다고 말했다. 그가 웃으면서 그럼 하나 더 달라고 했다. 없다고 했다. 그가 그러면 두 번 적힌 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고 올라갔다.
올라간 뒤에 그 말을 다시 생각했다. 상관이 없다. 상자는 하나 갔고 그는 하나 받았고 오늘 일은 그것으로 끝났다. 상관이 생기는 것은 나중에 이 대장을 읽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오늘 여기 없다.
네 시 반에 이중 기재 목록에 한 줄을 적어 넣고 덮었다.
다섯 시에 대장을 마지막으로 뽑았다. 오늘 것을 다시 세어 볼 생각이었다.
세 줄이었다.
첫째 줄 일구구구년 시월 육일. 둘째 줄 구구년 시월 육일. 셋째 줄이 있었다.
일구구구년 시월 이십일.
자료 번호가 같았고 수령자가 같았고, 수량이 같았다. 오늘 나간 그 상자다.
시월 스무날은 아직 안 왔다.
서가에 다시 내려갔다. 구십팔년 상반기 자리를 보았다. 아침에 비어 있던 자리 하나가 그대로 비어 있었고 그 옆은 차 있었다.
스무날에 나갈 상자가 어느 것인지는 대장에 적혀 있다. 그 상자는 아직 서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