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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구백년

Nineteen Hund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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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스무날. 장비 쪽 자리는 지난주에 다 고쳤다.

단말 넷과 릴 구동기 둘과 반출 대장 프로그램까지 여든여섯 자리다. 고치는 데 나흘 걸렸다. 고친 자리는 다시 늘지 않았다. 늘어나는 것은 색인 쪽뿐이고 색인은 아직 손대지 않았다.

아홉 시에 검색했다. 백마흔일곱이었다. 팔월 아흐레에 백열넷이었으니 열하루에 서른셋이다. 하루 셋이다.

지침에 시험을 하라고 되어 있다. 고쳐 놓고 안 해 보면 고쳤는지 모른다는 것이 지침의 취지다. 맞는 말이다.

시험용으로 사번 단말을 골랐다. 넷 중 제일 오래된 것이고 평소에 잘 안 쓴다. 회선을 뽑고, 시계를 이천년 일월 일일 영시로 맞췄다.

십 분이면 되는 일이었다.

정렬이 뒤집혔다.

까닭은 알 수 있다. 네 자리로 고친 것은 저장하는 자리이고 정렬은 저장된 값을 견주는 일이다. 고친 자리에 이천이 들어가고, 안 고친 자리에 두 자리가 남아 있으면 견줄 때 둘이 섞인다. 섞인 것을 기계가 두 자리로 맞춰 읽으면 이천이 공공이 되고 공공은 어느 수보다 작다.

작은 것이 앞에 선다. 그래서 가장 새 자료가 가장 앞이다.

화면을 한참 보았다. 자료 목록이 거꾸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면 오랜 것이 뒤로 가고 새것이 앞으로 갔을 뿐인데, 그건 그냥 내림차순이다. 오늘 화면은 그게 아니었다. 이천년 자료와 천구백년 자료가 같은 값이라 한 덩어리로 맨 앞에 있고, 그 뒤로 이십년대부터 구십년대까지가 차례로 섰다.

새것과 아주 오랜 것이 한 칸에 들었다. 그 사이의 일흔 해가 그 뒤에 줄을 섰다.

이 방에 천구백년 자료는 없다. 제일 오랜 것이 이십년대다. 그러니 맨 앞 덩어리에 실제로 든 것은 이천년 것뿐이어야 하는데, 이천년 것도 아직 없다. 오늘은 구십구년 팔월이다. 맨 앞 덩어리는 비어 있어야 맞다.

비어 있지 않았다. 스물몇 줄이 있었다. 훑어보니 다 내가 정월 이후에 등록한 것들이다. 등록 연도 칸이 비어 있는 자료들이었다. 빈 칸도 두 자리로 견주면 공공이 된다. 없는 것과 이천년과 천구백년이 한 값이다.

열한 시에 시계를 되돌렸다.

되돌리고 나서 조회를 해 보니 정렬이 원래대로였다. 십 분이면 되는 일이 한 시간 걸렸고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점심 먹고 와서 기재 기록을 뽑아 보았다. 시험 중에 조회와 기재를 다 해 보라고 지침에 되어 있었으므로 기재도 했다. 시험 기재를 세 건 넣었고 끝나고 지웠다.

지운 세 건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기재 기록은 지워도 남는다. 그 기록에 붙은 시각이 문제였다.

천구백년 일월 일일 영시 십일 분. 천구백년 일월 일일 영시 십삼 분. 천구백년 일월 일일 영시 십육 분.

고칠 수 없는 자리에 천구백년이 셋 들어갔다.

기재 기록은 회사가 고치지 못하게 만들어 둔 것이다. 누가 언제 무엇을 넣고 뺐는지를 남기는 자리이므로 고칠 수 있으면 남기는 뜻이 없다. 고칠 수 없게 만들어 둔 덕에 오늘 시험이 남긴 세 줄은 앞으로도 그대로 있다. 이 방의 기재 기록 맨 앞에 천구백년 세 줄이 서 있게 되었다.

여섯 달 동안 나는 보기만 하려고 여러 번 애썼다. 세기만 하고 안 늘리려고 했고, 읽기만 하고 안 보태려고 했다. 오늘은 회사가 시험해 보라고 했고 시험은 보는 일이다. 다만 이월을 보려면 이월을 만들어야 한다. 만들지 않고 보는 방법이 없다.

그것이 오늘 배운 것이다. 어떤 것은 보는 일과 하는 일이 같다.

여섯 달 동안 나는 그 말을 여러 꼴로 만났다. 세려면 열어야 하고 열면 오른다. 고치려면 옮겨 적어야 하고 옮겨 적으면 는다. 오늘은 시험하려면 만들어야 하고 만들면 남는다. 셋이 같은 말인데 오늘 것만 회사 지침에 적혀 있다. 지침에 적힌 대로 해서 남는 자국은 누구 것인지를 나는 팔월 이틀부터 물어 오고 있고 아직 못 정했다.

두 시부터 네 시까지 원복 확인을 했다. 여섯 건을 하나씩 열어, 시각과 정렬을 보았다. 사번 단말은 괜찮았다. 일번 이번 삼번도 괜찮았다. 릴 구동기 둘도 괜찮았다.

목록 프로그램을 열었을 때 정렬이 뒤집혀 있었다.

목록 프로그램은 본사 것이고 사번 단말에서 돌린 적이 없다. 오늘 시험은 회선을 뽑고 했다. 뽑은 기계에서 한 일이 뽑지 않은 기계에 갈 길이 없다.

세 번 확인했다. 회선 분리는 시험 전에 했고 시험 뒤에 다시 붙였다. 붙인 뒤에 사번 단말에서 목록을 연 적은 없다. 그런데 목록이 뒤집혀 있다.

네 시 반에 삼층에 전화해서 삼층 단말의 목록도 뒤집혔는지 물었다. 잠깐 보더니 자료 목록이 원래 새것부터 나오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그가 다시 보더니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다섯 시에 본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가 자리에 없었다. 요즘 그쪽은 종일 전화를 받는다고 들었다. 신문마다 이월 이야기고 관공서가 점검표를 돌리고 은행이 창구에 안내문을 붙였다. 무서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도 뚜렷할 텐데, 실제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다 멎는 쪽이다. 멎지 않고 도리어 옮겨 가는 쪽을 말하는 데는 아직 못 보았다.

전화를 끊고 앉아서 오늘 한 일을 순서대로 적어 보았다. 열 시에 시계를 옮겼다. 열 시 십일 분에 기재했다. 열한 시에 시계를 되돌렸다. 두 시부터 원복을 확인했다. 네 시에 목록이 뒤집힌 것을 보았다.

한 기계에서 십 분 동안 이월을 만들었고, 그것이 회선 없이 다른 기계로 갔다. 여섯 달 동안 이 방에서 무엇이 이렇게 갔는지 나는 다 알고 있다. 사본으로 갔고 게시판으로 갔고, 접속 기록으로 갔다. 그때마다 갈 길이 없었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앞의 것들은 다 내가 안 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오늘 것은 내가 한 일이 옮겨 간 것이다.

여섯 시에 목록을 마지막으로 열었다. 뒤집힌 채였다.

맨 위 줄을 보았다. 자료 번호와 이름이 있었다. 등록 연도 칸은 비어 있었다.

이름은 프나코틱 문고 수습 자료 일괄이었다. 정월에 내가 등록한 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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