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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의 연도

The Years in the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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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스무사흘. 목록은 여전히 뒤집혀 있었다.

아침에 본사에서 회신이 왔다. 알려진 증상이고 구월 중에 고친 판을 내려보낸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그대로 쓰라고 했다. 정렬만 이상하고 자료가 없어진 것은 아니니 업무에 지장은 없다는 것이 회신의 요지였다.

지장이 없다는 말이 맞다. 목록이 어느 쪽부터 나오든 찾으려는 자료는 찾아진다. 열흘쯤 거꾸로 보면 된다.

아홉 시에 검색했다. 백쉰여섯이었다. 스무날에 백마흔일곱이었으니 사흘에 아홉이다. 하루 셋이다.

색인 일을 오늘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카드 칠천삼백사십 장이 남아 있고 기한이 십일월 말이다.

시작하기 전에 어디부터 할지를 정해야 했다. 지침은 두 자리를 네 자리로 고치라고만 되어 있다. 연도가 아예 안 적힌 자리는 지침에 없다. 없는 것은 두 자리도 아니고 네 자리도 아니다.

뒤집힌 목록에서 맨 앞 덩어리가 그 자리들이다. 빈 칸이 공공으로 읽혀 앞에 선다. 고치지 않으면 이월 뒤에도 계속 맨 앞에 있을 것이다. 지침에 없어도 이쪽부터 하는 것이 맞겠다고 보았다.

열 시에 맨 앞 덩어리를 뽑았다. 스물셋이었다.

스물셋 다 내가 정월 이후에 등록한 것들이다. 정월에 나는 인계받은 것이 없어서 목록부터 만들었고, 만들면서 연도를 모르는 것은 비워 두었다. 여덟 달 동안 채워 넣을 겨를이 없었다.

스물셋 중 넷이 상자 것이었다.

정월에 상자를 등록할 때 나는 그것을 한 건으로 넣었다. 프나코틱 문고 수습 자료 일괄.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몰랐고 등록 번호도 없었다. 그 뒤로 네 묶음을 따로 넣었다. 등대수, 측량기수, 전신수, 사서. 넷 다 연도 칸을 비웠다. 종이가 상해 있었고 표지에 해가 안 적혀 있었다.

여덟 달 동안 나는 그 넷을 여러 번 읽었다. 읽으면서 해를 알게 되었다. 등대수의 것은 삼십사년이다. 측량기수는 이십삼년, 사서는 이십사년, 전신수는 삼십칠년이다. 본문 안에 날짜가 적혀 있으므로 세고 있으면 나온다.

오늘 그것을 칸에 적으면 된다.

열한 시부터 넷을 하나씩 열었다. 등록하려면 표제와 수량과 연도가 있어야 하고 연도를 확인하려면 해당 장을 펴서 봐야 한다. 지난 여덟 달 동안 읽은 것이므로 어디쯤인지는 안다. 그래도 폈다. 기재하려면 확인해야 하고 확인하려면 열어야 한다.

넷을 다 열고 닫는 데 한 시간이 들었다.

기재 기록 넉 줄이 남았다. 지울 수 없는 자리다. 지난주에 시험으로 남긴 천구백년 세 줄 아래에 오늘 넉 줄이 붙었다.

점심을 먹고 와서 목록을 다시 뽑았다.

넷이 뒤로 갔다. 이십삼년이 이십년대 자리로 갔고 이십사년이 그 옆으로 갔고 삼십사년과 삼십칠년이 삼십년대 자리로 갔다. 뒤집힌 목록에서 오래된 것은 뒤다. 그러니 넷은 뒤에서부터 넷째 안쪽에 있다.

내가 한 일은 연도를 적은 것이고 적고 나니 넷이 맨 앞에서 맨 뒤로 갔다.

한참 그 화면을 보았다. 여덟 달 동안 이 방에서 가장 오랜 것은 저 넷이었다. 오늘 아침까지 저 넷은 목록 맨 앞에 있었다. 해를 안 적어 두었기 때문이다. 해를 적자 제자리로 갔고 제자리는 맨 뒤다.

제자리로 보낸 것이 잘한 일인지는 알겠는데, 잘한 일을 하고 나니 앞자리가 비었다는 것이 남았다.

두 시부터 남은 것을 봤다.

열아홉 중 열여섯은 쉬웠다. 회보는 표지에 해가 찍혀 있다. 한 시간에 다 넣었다. 넣으면서 열여섯 줄이 목록 뒤쪽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팔십년대 아흔년대 자리로 가서 다른 회보들 사이에 섞였다. 섞이고 나니 찾기가 도리어 나았다. 색인은 원래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셋이 남았다.

첫째는 전임자의 노트다. 회사 자료인지 개인 물품인지 정월에 판단이 안 서서 등록만 해 두고 비워 놓았다. 노트에 적힌 기간은 작년 육월부터 십이월 열엿새까지다. 구십팔년이라고 적으면 된다. 그런데 노트 뒤 빈 두 장이 있고 그 두 장은 아직 안 채워졌다. 끝나지 않은 것에 끝난 해를 적는 것이 맞는지 나는 정하지 못했다.

둘째는 상자 자체다. 프나코틱 문고 수습 자료 일괄. 안의 넷은 이십년대와 삼십년대인데 상자가 이 방에 온 것은 작년이다. 자료의 해를 적는 자리인지 자료가 온 해를 적는 자리인지 색인 서식에는 안 적혀 있다. 여덟 달 동안 나는 이 칸을 그래서 비워 두었다.

셋째는 인수인계 서류다.

정월에 내가 부임하면서 받은 것이다. 받았다기보다 책상에 있었다. 인계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인계자 칸이 비어 있고, 인계 일자 칸도 비어 있다. 서류가 완결되지 않았으므로 연도가 없다.

세 시에 그 셋을 놓고 앉아 있었다.

넷은 제자리로 보냈다. 저 셋은 제자리가 어디인지를 모른다. 모르는 까닭이 셋 다 다르다. 하나는 안 끝나서 모르고, 하나는 무엇의 해를 적는지 몰라서 모르고, 하나는 사람이 없어서 모른다.

네 시에 한 가지를 셈해 보았다.

이월이 지나면 이 방이 새로 등록하는 자료의 해는 이천이다. 이천은 두 자리로 공공이고 공공은 천구백이다. 천구백은 이십삼년보다 앞이다.

이월 뒤에 내가 등록하는 것은 전부 측량 일지보다 앞에 적힌다. 오늘 내가 뒤로 보낸 넷보다 앞이다. 고친 판이 구월에 내려온다고 했으니 목록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그래도 색인 쪽 두 자리를 다 못 고치면 같은 일이 그쪽에서 난다. 기한이 십일월 말인 까닭이 그것이다.

셈을 적어 두고 한 줄을 더 적었다. 오늘 내가 한 일은 오랜 것을 뒤로 보낸 일이고, 넉 달 뒤에 할 일은 새것이 그 앞에 서지 않게 막는 일이다. 둘이 같은 일인지 반대되는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네 시 반에 삼층 사람이 내려와 이월 이야기를 또 했다. 집에 초와 물을 사 뒀다고 했다. 십이월 삼십일일에 은행에서 돈을 다 빼 두라더라고도 했다. 나는 그러시라고 했다. 그가 우리 방은 뭘 준비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연도를 네 자리로 늘리고 있다고 했다. 그것뿐이냐고 묻기에 그것뿐이라고 했다.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오늘 넉 줄을 적어 넣은 일을 생각했다. 그것도 준비다. 준비란 오는 것에 맞춰 미리 자리를 고쳐 두는 일인데, 오늘 내가 고친 자리에서 제일 오랜 넷이 맨 뒤로 갔다.

다섯 시에 목록을 마지막으로 뽑았다.

맨 앞 덩어리에 셋이 남아 있었다. 노트와 상자와 서류다.

맨 위 줄은 인수인계 서류였다. 표제 칸에 전산 자료실 기록 담당 인수인계라고 되어 있고 인계자 칸이 비어 있고 인수자 칸에 내 넉 자리가 있다.

여덟 달 만에 이 방 목록의 첫 줄에 내 넉 자리가 왔다. 오늘 내가 적은 것은 넷의 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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