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아흐레. 오늘도 점검하라는 날이다.
여덟째 달 내내 그랬다. 무슨 날이 오기 전에 점검표가 내려오고 그날 점검을 하고 아무 일도 없으면 이상 없음에 표시해서 올린다. 오늘 것은 구구구구 때문이다. 아홉이 넉 자리로 들어가면 옛 프로그램이 그것을 자료 끝 표시로 읽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구월 아흐레를 구구공구로 적으면 그 자리가 안 된다는데, 우리 방 프로그램 중에 날짜를 그렇게 적는 것은 없다.
없다고 적어 올리는 데도 점검은 해야 한다. 여섯 건을 하나씩 열어 날짜 쓰는 법을 확인하고 표에 표시했다.
아홉 시에 검색부터 했다. 이백일곱이었다. 팔월 스무사흘에 백쉰여섯이었으니 열이레에 쉰하나다. 하루 셋이다.
목록 수정판은 사흘 전에 왔고 설치했다. 정렬이 돌아왔다. 오랜 것이 앞이고 새것이 뒤다. 열이레 동안 거꾸로 보다가 바로 보니 오히려 한 박자 늦었다.
수정판을 깔고 처음 목록을 뽑았을 때 맨 앞 세 줄이 이십삼년 이십사년 삼십사년이었다. 내가 팔월에 해를 적어 넣은 넷이다. 뒤로 갔던 것이 앞으로 왔다. 정렬 하나로 맨 앞과 맨 뒤가 바뀌는 것을 열이레 사이에 두 번 보았다.
점검을 마치고 열한 시에 조회 화면을 열었다.
조회 화면은 목록과 다르다. 목록은 등록된 것을 차례로 늘어놓고 조회는 최근에 손댄 것을 먼저 보여 준다. 여덟 달 동안 이 화면 첫 줄은 대개 내가 어제 만진 자료였다.
오늘 첫 줄이 낯설었다.
구십칠년 종합자료실 반출 대장. 등록 번호가 있고 등록 연도가 일구구칠이다.
내가 등록한 것이 아니다.
구십칠년 반출 대장이라면 지난 칠월에 삼층에서 찾아 달라고 해서 꺼내 준 적이 있다. 그것은 종이 대장이고, 서고에 있다. 종이 대장에는 등록 번호가 없고 색인에도 안 걸린다. 색인 카드에도 없다. 카드 서랍을 두 번 훑었다.
등록 번호가 있다는 것은 누가 이 번호를 붙여서 넣었다는 뜻이다. 번호 체계는 작년에 바뀌었고 지금 번호는 여덟 자리다. 화면의 번호도 여덟 자리다.
구십칠년에는 여덟 자리 번호가 없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두 가지 경우를 생각했다. 누가 구십칠년 대장을 근래에 새로 등록하면서 등록 연도만 그때 것으로 적었을 수 있다. 그러면 번호는 요즘 것이고, 연도는 옛것이니 화면과 맞는다. 다만 이 방에 등록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다.
다른 하나는 번호가 저절로 붙은 경우다. 팔월 아흐레에 색인에 없던 자리 셋이 값을 달고 생겨난 일이 있다. 그때 셋은 아무것도 안 가리켰다. 오늘 것은 가리키는 데가 있다.
한 시 반에 자료를 열어 보았다.
열렸다. 표지 화면에 대장 표제와 기간이 있고 그 아래 기재 칸이 있었다. 기간은 구십칠년 십일월부터 십이월까지다.
기재자 칸에 이름이 있었다.
김도경이라고 되어 있었다.
여덟 달 동안 이 방에서 사람 이름을 본 적이 없다. 서식에는 다 넉 자리 코드가 들어간다. 반출도 코드고 청구도 코드고, 인수인계 서류의 인수자 칸에도 내 넉 자리가 있다. 이름은 전화로 듣거나 복도에서 부르는 데 쓰고 종이에는 안 쓴다.
여덟 달 만에 처음으로 종이가 아니라 화면에서 이름을 봤다.
세 글자를 한참 보았다. 아는 사람이 아니다. 삼층에도 없고 사층에도 없다. 합병 전 사람이라면 인사 조회에 안 나온다. 그쪽 명부는 정리할 때 대부분 폐기됐다고 들었다.
이름을 보고 처음 한 일이 인사 조회를 두드려 본 것이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나는 저 이름이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여섯 달 동안 이 방에서 생긴 것들은 다 수였다. 수는 늘거나 줄고, 사람은 어디에 있거나 없다. 어디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것이 여덟 달 만에 처음 나왔다.
물어볼 데가 없다는 것이 그다음이었다.
두 시 반에 본문을 열어 보려 했다. 표지 화면만 뜨고, 본문이 안 떴다. 자료가 없다는 표시도 아니고 권한이 없다는 표시도 아니었다. 그냥 그다음 화면이 안 왔다.
세 번 해 보고 그만두었다. 여섯 달 동안 이 방에서 안 되는 일을 세 번 해 보고 그만두는 버릇이 들었다. 네 번째부터는 되게 하려는 일이 되고, 되게 하려고 하면 손이 든다. 손이 들면 늘어난다.
다만 오늘은 그만두고 나서 한동안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다음 화면이 안 오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없는 것이면 없다고 뜬다. 오늘 것은 뜨지도 않았고 안 뜨지도 않았다. 기다리는 표시가 계속 돌았다.
세 시에 서고에 내려가 종이 대장을 다시 꺼냈다. 칠월에 복사해 준 그것이다. 십일월과 십이월 쪽을 폈다.
기재자 칸이 비어 있었다. 칠월에 본 그대로다. 그달 반출은 줄이 빽빽하고 기재자 칸이 여럿 비었고 급했던 달이라고 들었다고 나는 그때 적어 두었다.
종이는 비어 있고 화면에는 이름이 있다.
정본이 어느 쪽인가를 적어 놓고 보니 이 물음이 처음이 아니다.
여섯 달 동안 사본과 일지가 어긋날 때마다 나는 어느 쪽이 먼저인지를 물었다. 한 번도 답이 안 나왔다. 오늘 것은 조금 다르다. 앞의 것들은 종이가 앞서고 화면이 따라오는 꼴이었는데, 오늘은 화면에 있는 것이 종이에 없다. 종이가 비어 있는 자리를 화면이 채우고 있다.
빈 칸은 두 가지라고 칠월에 적었다. 적을 사람이 없어서 빈 칸과 적을 겨를이 없어서 빈 칸이다. 종이 위에서 둘은 같은 모양이다. 오늘 화면은 그 칸에 사람을 하나 넣었다. 넣고 나니 저 칸은 겨를이 없어서 빈 칸이었던 것이 된다.
누가 채웠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네 시에 삼층 사람이 내려와 오늘 별일 없었느냐고 물었다. 신문에 오늘이 고비라고 났다고 했다. 별일 없었다고 했다. 그가 그러면 십이월도 이럴 것 같다고 하고 올라갔다.
오늘 같은 날이 여러 번 지나가면 사람들은 십이월도 이럴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무서워하기로 정한 날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일이 되풀이되면, 무서워하는 일 자체가 옅어진다. 옅어진 뒤에 오는 날은 아무도 안 보는 날이다. 이 방에서 여덟 달 동안 일어난 일은 하나같이 아무도 안 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시 반에 팔월 아흐레에 생겨났던 색인 자리 셋을 다시 열어 보았다. 한 달 동안 안 봤다. 구칠, 구칠, 구팔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때는 연도만 있고 아무것도 안 가리키는 자리였다.
셋 다 기재자 칸이 생겨 있었다.
앞의 둘에 김도경이라고 되어 있었다.
셋째 칸에는 이름이 없었다. 넉 자리 코드가 있었다.
내 넉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