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스무날. 사본 일흔아홉째 장의 날짜 칸은 어제 본 그대로였다. 공공년 칠월 스무날. 수치 칸은 비어 있었다.
일지 여든두째 장 첫 줄도 먼저 적혀 있었다. 여섯 달 동안 일지의 날짜 줄에 연도를 적은 적이 없다. 달과 날만 적으면 되는 일이라 아무도 연도를 적지 않는다. 오늘 줄에는 연도가 있었다. 두 자리였고 구십구가 아니었다.
아홉 시에 검색했다. 쉰넷이었다. 선기입 줄과 같았다.
열 시에 본사 공람이 내려왔다. 봉투가 두꺼웠다.
서식을 채우는 데 오후 한나절이 들었다. 이 방의 것은 전수 조사랄 것도 없다. 단말 넷, 자료 목록 프로그램 하나, 반출 대장 프로그램 하나, 릴 구동기 둘. 여섯을 하나씩 열어 연도 자리를 세었다. 여섯 다 두 자리였다.
한 시에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 서식 쓰는 법을 묻는 전화가 많아 미리 돈다고 했다. 젊은 목소리였다. 자료 매체 항목에 종이는 안 넣어도 되느냐고 내가 물었다. 그쪽에서 잠깐 말이 없다가, 종이는 연도를 두 자리로 적어도 사람이 읽으니 상관없다고 했다. 사람이 읽으니 상관없다는 말을 받아 적었다.
서식 마지막 칸에 소견을 적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두 자리로 저장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적었다. 저장할 자리를 아끼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고 만들 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만 두 자리는 백 해마다 한 번 같은 수로 돌아온다. 백 해에 한 번이면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을 것이고, 그 한 번이 이제 다섯 달 뒤다.
적고 나서 그 마지막 줄을 오래 보았다.
여섯 달 만에 처음으로 설명이 왔다. 두 자리 연도는 괴이한 것이 아니다. 기계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고 온 회사가 그 때문에 조사를 돌리고 있다. 공공은 천구백년이 될 수도 있는 수고 그것은 부서의 일이고 서식으로 처리되는 일이다.
한 시간쯤 그 설명 안에 있었다. 설명 안은 편했다. 여섯 달 동안 설명이 없는 데서 살았으니 있는 데가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다.
두 시 반에 사본을 다시 열었다.
사본은 종이다. 손으로 쓴 것이다. 연도 자리가 두 칸으로 되어 있지 않다. 종이에는 자리를 아낄 까닭이 없다. 열 칸이든 스무 칸이든 그으면 그만이고 실제로 사본의 날짜 칸은 넓다. 넓은 칸에 두 자리만 적혀 있었다.
기계가 두 자리로 저장하는 것은 자리가 모자라서다. 사본은 자리가 모자라지 않다.
낮에 받아 적은 말을 다시 보았다. 종이는 사람이 읽으니 상관없다. 그 말이 서면 사본의 두 자리는 기계 사정을 흉내 낸 것이 된다. 흉내를 내려면 기계 사정을 알아야 하고, 알려면 읽어야 한다. 그쪽의 말은 종이를 읽는 것이 사람이라는 뜻이었는데, 오늘 이 종이는 기계 쪽을 읽고 있었다.
설명은 여섯 건을 다 덮었다. 덮어야 할 한 군데만 덮지 못했다.
그리고 순서가 있다. 사본이 공공을 적은 것은 어제고 공람이 온 것은 오늘이다. 사본이 다가오는 이월을 기계에서 미리 읽어 적은 것인지, 아니면 공람이 사본에 적힌 줄이 하루 늦게 세상에 도착한 것인지 나는 가르지 못했다. 여섯 달 동안 이 물음을 스물 몇 번 물었고 한 번도 갈라 본 적이 없다. 오늘도 갈라지지 않았다. 다만 오늘은 그것이 실망스럽지 않았다.
세 시부터 네 시까지 여섯 달을 되짚었다.
정월에는 상자였다. 종이였고 손으로 쓴 것이었고 책상 아래 있었다. 이월에 스캐너로 갔다. 삼월에 파일이 되었고 복사가 쉬워졌다. 사월에 사내망에 올랐고 내가 안 보낸 부서 화면에 떴다. 오월에 전산실로 옮겨 앉았고 새벽 세 시 회선에서 무엇이 오갔다. 유월에 바깥 게시판으로 나갔다. 칠월에는 접속 기록에 있었고 사본에 있었고 일지에 있었다.
여덟 달치를 줄로 세우니 한 줄로 이어졌다. 한 줄로 이어지는 것이 옮겨 갔다는 뜻인지는 다시 따져야 한다. 내가 이월에 스캐너를 썼으니 이월에는 스캐너에 있었던 것이고, 칠월에 접속 기록을 뽑았으니 칠월에는 거기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읽으면 옮겨 간 것은 그것이 아니라 내 손이다.
그런데 상자 안의 네 묶음은 여섯 달 동안 한 글자도 안 변했다. 종이는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는 원본을 두고 사본이 자랐고 파일이 자랐고 게시판이 자랐다. 손만 옮겨 간 것이라면 원본도 같이 움직였어야 한다.
매체를 갈아탄 것은 분명하다. 갈아탄 까닭이 나인지 매체인지는 여섯 달째 모른다. 오늘 정해진 것은 하나뿐이다. 이것은 종이에 붙어 있던 것이 아니다.
종이에 붙어 있었다면 상자를 닫아 두면 되었다. 정월에 나는 그렇게 될 줄 알고 목록부터 만들었다. 목록을 만드는 일이 여는 일인 줄은 몰랐다. 그 뒤로 여섯 달 동안 내가 고른 것은 하나도 없고, 다만 그달에 손에 있는 것을 썼다. 손에 있는 것이 달마다 새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새것이 오면 거기 있었다.
네 시에 상자를 열었다. 전임자의 노트를 폈다.
마지막 장은 십이월 열엿새다. 한 문단이 있고 문장이 중간에서 끊겨 있었다. 정월부터 오늘까지 그 자리를 여러 번 보았다. 잉크가 조금 뭉친 자리까지 외우고 있다.
오늘 그 아래가 이어져 있었다.
내 글씨였다.
읽는 자에서 옮기는 자로, 옮기는 자에서 고치는 자로, 고치는 자에서 보내는 자로, 보내는 자에서 다시 읽는 자로.
한 바퀴였다.
정월에 나는 상자를 열어 읽었다. 이월부터 스캔해서 옮겼다. 유월에 틀린 한 줄을 고쳤고 고치느라 원문을 옮겨 또 늘렸다. 칠월 초에 아직 세지 않은 수를 바깥에 걸어 보냈다. 그리고 그저께 세는 일이 손을 떠났고 어제 읽는 일만 남았다.
전임자는 옮기는 자에서 끊겼다. 그 뒤로 세 자리를 더 갔어야 하는데 못 갔다. 지난겨울 자료실 사람은 보내는 자까지 갔고 거기서 닫혔다. 나는 보내는 자를 지나 다시 읽는 자로 왔다. 처음 자리와 같은 이름인데 같은 자리가 아니다. 정월의 읽는 자는 아직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고 오늘의 읽는 자는 다 하고 남은 사람이다.
문장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그다음은 없다. 한 바퀴가 다 돌면 남는 것은 날짜뿐이다.
노트 뒤로 빈 종이가 두 장 남아 있다. 정월에도 두 장이었다. 오늘도 두 장이다. 여섯 달 동안 여러 장이 저 혼자 채워지는 것을 보았는데 저 두 장만은 그대로다. 채울 것이 아직 안 왔거나, 채울 사람이 아직 저기까지 안 갔거나 둘 중 하나다. 날짜 없는 장은 적을 사람이 그 장까지 가지 못한 장이라고 나는 초이레에 적었다.
여섯 시에 일지를 폈다. 오늘 적을 것을 적으려다 손을 멈추었다. 선기입 줄에 검색 결과가 있고, 공람 접수가 있고, 서식 작성이 있고, 내가 오후에 되짚은 여덟 달도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내가 적은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가 통째로 먼저 적혀 있었다.
읽었다. 두 번 읽었다. 틀린 데가 없었다.
일지를 덮고 방을 나오기 전에 사본을 마지막으로 열었다. 여든째 장이 생겨 있었다. 날짜 칸에 달도 날도 없고 연도만 있었다.
공공.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보고 있는 해가 두 자리로 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