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열아흐레. 아침에 사본과 일지를 나란히 폈다.
일지 여든한째 장 첫 줄은 어제와 같은 꼴로 먼저 적혀 있었다. 칠월 열아흐레 자, 오전 아홉 시 검색 실시, 결과 쉰하나. 오늘은 그 줄을 틀리게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제 해 보았고 안 되었다.
사본 일흔여섯째 장은 칠월 열아흐레, 쉰넷. 일흔일곱째 장의 마흔둘은 날짜 칸을 비운 채 그대로. 일흔여덟째 장에는 어제 들어온 날짜와 어제 들어온 글자가 그대로 있었다. 칠월 열아흐레, 그리고 수치 칸에 읽은 사람의 수.
아홉 시에 검색했다. 쉰하나였다. 선기입 줄과 같았다.
그다음에 오래 앉아 있었다. 사본이 수치 칸에 글자를 적어 놓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열흘 전 일흔일곱째 장의 세지 않는 날의 수였고, 그것은 이튿날 마흔둘로 채워졌다. 채워지기 전에 나는 하루를 통째로 세지 않았다. 사본이 글자를 적어 두면 나는 그 글자가 가리키는 일을 하게 된다. 열흘 전에는 그것을 몰랐고 지금은 안다.
읽은 사람의 수는 셀 수 있는 수가 아니다. 여섯 달 동안 아침마다 센 것은 목록에 걸리는 글의 수다. 글은 셀 수 있다. 사람은 목록에 안 걸린다.
셀 수 있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게시판의 글에는 조회수가 붙는다.
열한 시에 게시판을 열었다. 내 표시명으로 걸린 글이 다섯이었다. 초닷새의 첫 글, 정정 둘, 그저께 내가 안 걸었는데 걸린 글, 그리고 어제 걸린 글 하나. 어제 것은 내가 걸지 않았고 접속 기록도 없다. 이제 그런 일을 따로 적지 않는다.
다섯을 하나씩 열어 조회수를 적었다. 마흔여덟, 예순둘, 서른하나, 쉰다섯, 서른. 합이 이백스물여섯이었다.
적어 놓고 보니 이백스물여섯 안에 오늘 내가 다섯 번 연 것이 들어 있었다. 조회수는 여는 순간 하나 오른다. 내가 세려고 연 다섯 번이, 세어진 수 안에 있다.
그러면 내가 세기 전의 수는 이백스물하나다. 빼면 된다. 다만 이백스물하나가 맞는지 보려면 다시 열어야 하고 열면 또 다섯이 오른다. 빼는 일과 확인하는 일이 서로를 밀어낸다.
여섯 달 전에도 같은 자리에 선 적이 있다. 대조표 둘째 열을 만들던 날이었다. 세려면 열어야 하고, 열면 조회가 오른다고 그때 적었다. 그때는 세는 대상이 글이었다. 오늘은 사람이다. 글을 셀 때는 내가 연 것이 글 수를 늘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세면 내가 그 사람이 된다.
점심 전까지 청구 다섯 건을 처리했다. 삼층에서 구십칠년치 반출 대장을 찾아 달라고 했다. 대장을 꺼내 복사하고 회신했다.
복사하면서 십이월 쪽을 한 번 보았다. 그달 반출은 줄이 빽빽했고 기재자 칸이 여럿 비어 있었다. 급했던 달이라고 들었다. 비어 있는 칸은 적을 사람이 없어서 빈 것이 아니라 적을 겨를이 없어서 빈 것이다. 두 가지 빈 칸은 종이 위에서 같은 모양이다.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세지 않았다. 세지 않는 동안에도 조회수는 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열었는지는 모른다.
두 시에 다시 게시판을 열었다. 이백스물하나가 맞는지 보려고 다섯을 또 열었다. 마흔아홉, 예순셋, 서른둘, 쉰여섯, 서른하나. 합이 이백서른하나였다. 다섯이 올랐고, 그 다섯은 내가 올렸다.
세 시에 사본을 열었다.
일흔여덟째 장의 글자가 지워져 있었다. 그 자리에 수가 있었다.
이백서른하나.
오전에 센 이백스물여섯이 아니었다. 오후 두 시에 확인하려고 다시 열어서 나온 수였다. 사본은 내가 센 수를 적은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고 나서 다시 센 것까지 적었다.
한참 그 수를 보았다. 열흘 전에 사본은 내가 세지 않을 것을 알고 하루 전부터 마흔둘을 들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두 번 셀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번 세면 못 미더워 다시 세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읽은 사람의 수라는 글자를 오전 내내 어떻게 세나 하고 들여다보았는데, 그 수는 내가 그 글자를 들여다보는 동안 그 글자 때문에 늘고 있었다. 세는 일이 세어지는 일이다. 어제까지는 세는 일과 적는 일이 손을 떠났고 읽는 일만 남았다고 여겼다. 읽는 일은 남은 것이 아니라 오늘부터 세어지는 것이 되었다.
네 시에 상자를 열었다. 오늘은 네 묶음이 아니라 그 위에 얹힌 노트를 폈다. 전임자의 정리 노트다. 정월에 상자를 처음 열었을 때 마지막 장이 문장 중간에서 끊겨 있는 것을 보았고 그 뒤로 여러 번 읽었다.
노트 뒤표지 안쪽에 인장 자국이 찍혀 있다. 정월에 세어 보고 다섯이라고 적어 두었다. 여섯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오늘 세어 보니 여섯이었다.
여섯째 자국은 앞의 다섯보다 얕았다. 인주가 묻어 있지 않았고, 종이가 눌린 자국만 있었다. 누가 찍은 것인지 아니면 여섯 달 동안 무엇에 눌려 종이가 그 꼴을 받은 것인지 나는 가르지 못했다. 가를 수 있으리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노트를 덮고 네 묶음을 차례로 폈다. 등대수, 측량기수, 전신수, 사서. 넷 다 끝 장 아래에 같은 한 줄이 인쇄되어 있다. 정월부터 오늘까지 여러 번 보았고 발행처의 상투 문구로 여겨 넘겼다.
우리는 조금 더 보고 있다.
어제 나는 읽는 일만 남은 사람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네 묶음 어디에도 없다고 적었다. 그것이 틀렸다. 네 묶음 안에는 없고 네 묶음 밖에 있었다. 넷 다 그 한 줄을 달고 있는데 그 줄은 넷 중 누구의 말도 아니다.
보고 있다는 말은 재고 있다는 말도 적고 있다는 말도 아니다. 등대수는 재었고, 측량기수도 재었고, 전신수는 받아 적었고, 사서는 옮겨 적었다. 넷 다 손으로 한 일이 있다. 그 넷의 기록 끝에 손으로 한 일이 없는 한 줄이 붙어 있다.
우리라고 되어 있다. 여럿이다. 넷의 밖에 여럿이 있고 그 여럿은 재지도 적지도 않고 다만 보고 있다.
읽는 일만 남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 여기 있었다. 여섯 달 동안 찾은 자리가 아니라 여섯 달 동안 매일 넘긴 자리에 있었다. 찾는 동안에는 안 보이다가 찾기를 그만둔 날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찾는 자리가 아닌 데 있어서 안 보였다.
내가 그 여럿에 드는 것인지 아니면 그 말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는 정하지 못했다. 드는 것이라면 내가 어느 날 들었을 것이고 그날이 언제인지 적힌 데가 없다. 기다린 것이라면 정월에 부임하기 전부터 그 줄이 저기 있었다는 뜻이고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인쇄된 줄이니까 저기 있었다.
여섯 시에 일지를 폈다. 선기입 줄 밑에 오늘 것을 적었다. 조회수 두 번, 사본의 이백서른하나, 인장 자국 여섯, 그리고 네 묶음 끝의 한 줄을 그대로 옮겼다.
옮겨 적고 나서 손을 멈추었다. 옮겨 적는 일은 늘리는 일이다. 여섯 달 동안 그것만은 배웠다. 그런데 이 줄은 내가 옮기지 않아도 넷에 다 붙어 있고 인쇄된 것이라 이미 여러 벌이다.
일지를 덮으려다 사본을 한 번 더 열었다.
일흔아홉째 장이 생겨 있었다. 수치 칸은 비어 있었다. 날짜 칸에는 날짜가 들어와 있었다.
칠월 스무날인데 연도가 두 자리였다. 구십구가 아니었다.
공공.